이영경 그림/나한기획·1만8000원
이영경 그림/나한기획·1만8000원

자존감 없어 위축된 아이를
우산에 빗댄 예술·심리 동화
손으로 감정표현한 그림 신선

한국 그림책의 발전상은 눈부시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거의 해마다 라가치상이나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목록에 올라가고, 세계 3대 그림책 상 중 하나라는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 비엔날레(BIB) 그랑프리 수상작도 내놓았다. 상을 받는 일뿐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는 일에서도 그렇다. 최근 3년 사이 저작권이 수출된 도서 중 거의 절반이 아동 도서이고, 그중 상당한 몫이 그림책이다. 그림책이 글 못 읽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쉽게 전달해주거나 글을 가르치는 매체 정도로만 여겨지던 때가 불과 20여년 전이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우리 그림책 발전상의 요인에는 기본적으로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등장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 이외의 촉매제 중 하나는 아마도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넓혀가려는 기획력일 것이다. 그림책이란 영역은 글과 그림의 결합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예술 장르로서뿐만 아니라, 아이들 발달 단계에 맞춰 인지력·사고력·사회성·감성·언어 능력 등을 키워주는 교육의 장으로서도 팽창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서 안정과 심리 치료를 위해 그림책을 이용하는 흐름도 활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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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우산'
'깜장 우산'

<깜장 우산>도 그런 기획선상에서 나온 그림책이다. ‘예술과 심리 동화’라는 시리즈 이름은 이 그림책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아이들의 흔들리고 위축되고 분열되는 마음을 알아주고 그것을 달래면서 극복하는 방법을, 예술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하여 깜장 우산이 자아존중감이 없는 아이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비가 내린 뒤면 무지개가 뜨는 마을에 일곱 색깔 우산을 만들어 파는 할아버지가 있다. 다른 우산들은 저마다 예쁜 색깔을 뽐내며 사람들에게 선택받아 나가지만 깜장 우산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깜장 우산도 “난 주인을 선택할 용기가 나지 않아. 까만색은 전혀 예쁜 색이 아니잖아”라며 슬퍼한다. 그러다 슬픔이 분노로 바뀌어 깜장 우산은 물감을 모두 감춰버리는데, 할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색깔이 다 네 속에 담겨 있다”고 위로하고, 다른 우산들도 무시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갑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이 든 깜장 우산은 이제 활짝 웃을 수 있다.

추상화 같은 면 분할이나 번지기 기법 등을 사용하고, 텍스트가 전개하는 우산들의 사연을 손의 모습으로만 표현하는 그림은 상당한 실험 정신을 보여준다. 깜장 우산은 당혹감·위축감·슬픔·외로움·분노·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에 시달리다 위로받고 기뻐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이젠 정말 괜찮아”라면서 자기 긍정의 단계로 올라서는데, 그 과정이 글 텍스트에서는 명료하게 드러나지만 이 실험적인 그림 텍스트에서는 의도적으로 숨겨진다. 그 드러남과 숨겨짐을 연결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대입해 적용해 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주제, 무지개라는 꽤 고전적이고 관습적인 소재와 글, 그리고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그림이 어우러진 이 그림책은 독자들에게서 무지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반응을 이끌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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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정/작가·중앙대 강의교수

그림 나한기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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