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열렸던 ‘짜장면 100주년 기념축제’에 간 적 있다. 차이나타운에 한번도 못 가본 탓에 생긴 호기심도 있었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짜장면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짜장면의 생일이라는데 안 가볼 도리가 있나. 결국 차이나타운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참 줄을 서는 악전고투 끝에 겨우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짜장면을 사랑하지 않는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될까. 하루에 600만그릇이 팔린다니 우리나라 인구 8명당 1명꼴이다. 오늘도 내가 아는 여러 사람이 짜장면을 비벼서 후루룩거리며 먹었을 터이다. 하지만 정작 짜장면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집에서 파니 중국 음식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일까.
<맛있는 짜장면의 역사>는 짜장면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정리한 초등학생용 책이다. 우선 짜장면의 유래를 살펴보면, “중국 산둥성에서 먹던 ‘작장면’(중국 발음으로 짜지앙미엔)이 한국에 건너와서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한 것”이라고 한다. 작장면은 첨면장이라는 중국의 된장(콩과 밀가루를 섞어 단맛이 난다)을 볶아서 찬물에 헹군 면에 끼얹어 먹던 음식이다. 홍수와 정치불안으로 살길이 막막해진 산둥 사람들이 20세기 초 일자리를 찾아 대거 인천으로 들어오면서 한국에 도입됐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정부의 차별정책으로 먹고살 길이 없어진 화교들이 중국집을 열고 한국인 입맛에 맞춰 만드는 방식을 바꾸다 보니 현재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공산화한 중국과 국교가 단절돼 첨면장을 수입해올 수가 없어 한국에서 만든 춘장을 쓰게 된 것도 맛과 색깔이 변한 결정적인 계기였단다. 2006년 문화관광부가 짜장면을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100가지 문화 상징’으로 정한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니까 짜장면은 중국에서 왔지만 한국의 음식이 된 셈이다.
이렇게 짜장면이 한국에 들어온 과정에만도 한국과 중국의 근·현대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1960~1970년대 최고의 외식음식이던 짜장면이 피자와 햄버거에 밀려 ‘한 끼 때우는’ 음식이 됐다거나 짜장면과 같이 먹는 단무지는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등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통해 경제와 문화에까지도 관심이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훌륭한 한편의 미시문화풍속사라 할 수 있다. 하림각 남상해 회장이나 번개 배달로 유명한 김대중씨의 인터뷰 등도 실려 눈길을 끈다.
뭐든지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법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짜장면이 못 견디게 먹고 싶어질 것이라는 것을 장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그림 산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