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중요한 거짓말
실비아 파버 지음·박지훈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1만9800원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는 무서운 병이다. 치료약이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HIV)에 감염되면 영락없이 죽는 병’으로 받아들여진다. 두려움은 국경도, 이념도, 종교도 초월한다. 이 천형을 마주한 세계는 모처럼 하나가 된다. 지난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다. 실질적이며 폭력적인 이 위협 앞에서 개인들이 쓸 수 있는 저항수단은 한 두가지다. 알아서 병에 걸리지 않거나, 걸렸다면 약을 먹고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
<아주 중요한 거짓말>은 이런 무력한 상황에 던지는 폭발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우리가 믿는 게 모두 진실일까요? 뭔가 잘못됐다고 의심해본 적은 없나요? 지은이는 20여년 동안 ‘에이즈 사태’를 추적했다. 그리고 그 기간에 “뒤로 숨은 수많은 의학적 조작 의혹”을 찾아냈고, “그것에 기생하고 부추기며 공포를 파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실체”를 고발했다. 책은 그 결과물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책은 온갖 탄압과 방해 속에서도 에이즈의 진실을 좇는 많은 지식인들의 양심선언이기도 하다.
종양 연구로 이름난 피터 듀스버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교수는 에이치아이브이가 에이즈 질병을 직접 유발한다고 볼 수 있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레트로바이러스(유전물질이 아르엔에이로 구성돼 있는 바이러스)는 세포를 파괴하지 않는데, 이 바이러스의 일종인 에이치아이브이만 유독 백혈구를 파괴한다는 주장은 가설일 뿐이며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이즈 검사는 항원인 에이치아이브이를 직접 찾는 검사가 아니다. 양성, 음성 여부를 가리려면 혈청에서 항원을 분리해 내야 하는데, 이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에이치아이브이 존재조차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검사는 대신 임의로 추정하는 특정 항체를 찾아내는 작업으로 이뤄진다. 이렇다 보니 양성, 음성이 뒤바뀌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다른 레트로바이러스 때문에 양성 판정으로 둔갑되기도 한다. 개인은 사회적·인격적 사형선고인 그 판정 하나로 너무 많은 걸 잃는다.
현재 시판되는 대부분의 치료약은 증세 완화제일 뿐이다. 그러나 약의 작용은 폭력적이다. 몸을 심하게 훼손한다. 다국적기업들이 내놓은 약은 거의 아프리카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의 결과물이다. “공장에서 조금만 들이마셔도 당장 병원으로 가라는 경고문이 붙은 화공약품을 날마다 열 배 이상 처방하기도 했다.”
고열, 구토, 피부 발진 등 에이즈 의심 증상은 이질, 말라리아 등 다른 질병들과 증세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 바탕에서 아프리카 많은 나라의 에이즈 환자 통계는 부풀려진다. 위기를 부풀리는 제약회사들과 국제 사회의 원조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에이즈 유사 질병의 상당수는 영양 부족, 위생 불량 등에서 오는 ‘사회적 질병’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제약회사들은 에이치아이브이에 기반한 에이즈 연구 학자들과 단체에 매년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쓴다.” 에이즈 산업은 그렇게 유지된다.
그러나 책이 던지는 질문과 답을 우리가 감당해내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인류가 에이즈란 병과 싸워온 것이 30년이고, 그 투쟁의 결과물이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고 우린 여전히 믿는다. 옮긴이는 책 말미에 쇼펜하우어의 말을 옮겼다. “모든 진실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조롱, 둘째는 거센 반발, 셋째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상식과 편견에 맞선 싸움은 그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늘 위태롭고 외롭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