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불꽃이 된 노동자오도엽 글·이상규 그림/한겨레아이들·1만원
전태일-불꽃이 된 노동자오도엽 글·이상규 그림/한겨레아이들·1만원

오늘은 2010년 11월13일이다. 정확하게 40년 전 오늘, 불꽃처럼 강렬했던 사건이 있었음을 기억하는가. 전태일이라는 청년 노동자가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을 시도했던 대사건. 그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기 직전 세 마디의 ‘공개유언’을 남기고 산화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한국 노동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그의 죽음은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가슴에 불꽃이 되어 활활 타고 있다.

죽음의 순간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일까. 그의 삶은 철저히 죽음의 순간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전태일을 제대로 알려면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료들을 사랑하고, 불의에 맞서 저항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던 전태일은 그의 삶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청계천 평화시장 옷 공장은 전태일과 동료들의 일터였다. 전태일은 ‘시다’ 시절, 하루 14시간 일하고 1500원 월급을 받았다. 일당으로 치면 50원. 당시 커피 한잔 값이었다. 10대 초반의 어린 ‘시다’들은 창문도 환풍기도 없는 곳에서 ‘먼지밥’을 먹으며 밤늦도록 일했다. ‘타이밍’이라는 잠 안 오는 약까지 강제로 먹었다. 쉬는 날은 한 달에 달랑 이틀뿐. 그들은 “팔다리가 펴지지 않고, 살을 꼬집어도 감각이 없고, 눈만 멀뚱멀뚱하게 뜬 산송장”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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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던 전태일은 시다에서 재단사 자리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이쯤되면 자신은 먹고사는 걱정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터였다. 하지만 그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애초에 재단사가 된 것도 어린 ‘시다’들 처우 개선을 위해서였으니까. 그는 사장에게 끝없이 ‘직원복지’를 역설했고 ‘인간적인 처우’를 요구했다. 자신이 직접 ‘모범공장’을 차리기 위해 눈을 팔려고 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이라는 존재를 알고부터 그의 결심은 더 단단해졌다. “하루 8시간을 넘겨 일을 할 수 없고, 청소년은 7시간 이상 일해선 안 되며, 일주일에 하루 이상 쉬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그가 원하는 건 근로기준법이 지켜지는 세상, 단지 그뿐이었다. 그러나 ‘윗선’의 부당압력에 좌절했고, 근로감독을 손놓은 노동청의 직무유기에 절망했다. 그가 선택할 방법은 단 한가지밖에 없었다. 그리고 1970년 11월13일 망설임 없이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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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오도엽은 “초등학교 5학년 딸 겨리에게 쓴 편지를 바탕으로 친구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한권의 책을 엮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40년이 흘렀어도 밑바닥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며, 우리가 누리는 행복에 가려 미처 보지 못한 아픈 이웃이 없는지 돌아보자고 어린이들에게 권한다. 딸 겨리는 “지지리도 가난해 거지처럼 산 것이 뭐가 아름답다는 거냐”고 아빠에게 반문하지만 아빠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인간이 지녀야 할 도리를 지켜낸 것이 아름답다”고 대답한다.

공장주들의 부당한 학대에 찍소리 못하고 살았다고 전태일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다. “서로 사랑하라”고 외치던 ‘다른 바보’도, 불의와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던 ‘또 다른 바보’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을 진짜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염치없고 불공정한 세상을 살다 보니 ‘성스러운 바보’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초등 4학년 이상.

고유리 기자 yurik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