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해가 저문다. 빛은 사라지고 사방이 어둠에 싸인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자기 땅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이 야만의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고, 전직 대통령들이 죽음으로 시대의 질곡을 증언했다. 그러는 중에도 사람들은 자기 앞에 작은 등불 하나씩 켜들고 길을 찾았다. 책이 빛이었고 책이 길이었다. 출판인들은 정신을 깨우고 마음을 데우는 책을 만들어 독자들의 길찾기를 도왔다. 이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해준 책들을 골라 국내서 10권, 번역서 10권으로 추려보았다. 특히 국내서의 경우 개성 있고 뜻깊은 책들이 많아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겨레> ‘책과 생각’에 리뷰를 쓰는 과학책 번역가 김명남씨, 도서평론가 이권우씨,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 ‘올해의 책’ 선정에 함께했으며, <한겨레> 책·지성팀 한승동·최재봉·허미경·고명섭·이세영 기자가 참여했다.

한승동 허미경 고명섭 이세영 기자 sdhan@hani.co.kr

■ 상상력의 담장 너머 마주친 눈길
〈노무현
〈노무현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7000원

송찬호의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그가 고향 보은의 들과 산을 거닐며 만난 자연물들로 충만하다. 들꽃과 별, 오이 넝쿨과 두꺼비, 그리고 달팽이와 고양이가 함께 사는 송찬호 시의 세계는 동화적이라 할 천진한 상상력으로 감싸인다.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큰 호수”(<채송화> 부분) 이 시집을 읽기 위해서는 쪼그려 앉아서 시선을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작고 여린 소인국의 주민들을 제대로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눈물 주고 떠난 자, 노무현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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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인터뷰〉
마지막 인터뷰〉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1만3000원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압도하는 인터뷰의 미덕은 한 가지다. 화자가 하고 싶은 말보다 대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쓴 이 책은 2007년 가을, 퇴임을 반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을 사흘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책이 전해주는 노무현의 이야기는 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대통령은 왜 되려고 했는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이라크 파병처럼 논란이 불가피한 선택을 왜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솔직한 고백부터, 그가 생각하는 역사는 무엇이고, 권력과 민주주의는 또 무엇인지 등 철학과 사상의 영역까지 두루 걸쳐 있다.

■ 도올의 눈으로 본 ‘공자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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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한글 역주 1·2·3〉
〈논어 한글 역주 1·2·3〉
〈논어 한글 역주 1·2·3〉김용옥 지음/통나무·각 권 2만6000원

제대로 된 고전 번역을 학자의 임무로 강조했던 도올 김용옥 전 세명대 석좌교수가 자신의 지론을 실천에 옮겼다. 중국 고경 13경을 완역하겠다고 선언하고 그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세 권으로 이루어진 <논어 한글 역주>다. 지은이는 이 역주서에 이어 <효경 한글 역주> <대학·학기 한글 역주>를 차례로 펴냈다. 특히 <논어 한글 역주>는 <논어>를 배태한 중화 문명의 위상을 세계 문명사적 시야에서 개관한 뒤 <논어>를 둘러싼 주요한 해석의 역사를 포괄하고, 그 자신의 관점이 깊게 새겨진 번역문을 배치했다. 자신감 넘치는 언어로 빚어낸 역작이다.

■ 경계할 것은 ‘현대판 사대주의’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이삼성 지음/한길사·1권 3만원, 2권 3만3000원

중국이 강대해지면 과연 한반도가 위험할까?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항간에 유포된 ‘그렇다’는 단답이야말로 위험하다고 얘기한다. 광범한 사료를 섭렵해 그는 역사에 기록된 이민족의 대규모 한반도 침탈들은 중국이 강성했던 중화체제 안정기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화체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발생했으며, 침략의 주체도 중국이 아니라 약체화한 중화체제에 도전한 몽골, 거란, 여진 등 북방민족들임을 논증한다. 아울러 망국의 위험은 강대한 중원이 아니라 그런 중원에 맹목적으로 기대려는 지배계급의 사대주의적 소중화 의식에서 비롯된다는 걸 실증한다. 미국의 현대판 중화체제가 지배하는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함의가 있는 담론이다.

■ 지역주의에 가린 ‘기득권의 위장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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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현실〉
〈만들어진 현실〉
〈만들어진 현실〉박상훈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영호남 지역주의가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상식’은 허구다. 지역주의가 망국병인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가 망국병이다’라고 외치는 것이야말로 망국병이다. 우리 사회엔 그렇게 외쳐온 정치세력이 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래야 자신들만의 특권적 이익을 키우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현실>은 호남 차별과 영호남 간 지역갈등에 관한 속설을 뒤집고, 불균등한 성장과 차별적인 인재 등용으로 조성된 지역 간 편견과 불만을 증폭시켜 지역주의로 발굴하고 증폭시켜 이용한 것은 개발독재와 한 배를 탄 특정 정치세력이었음을 논증한다. 지역주의야말로 기득권 세력의 위장극을 숨겨준 알리바이 담론이었다.

■ 돈에 팔아치운 ‘생각의 주인’ 찾기


〈생각의 좌표-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생각의 좌표-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생각의 좌표-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2002년 20여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홍세화씨. 이후 7년 반 동안 그는 조국의 내부자이자 이방인으로 살았다. 조국은 다시 등질 수 없는 고향이지만, 그 고향은 삭막하고 살벌하고 비인간적이다. 돈이 주인이 된 세상이다. 그는 분노보다는, 슬픔보다는, 한없는 쓸쓸함을 느낀다. 그 쓸쓸함 속에서 쓴 <생각의 좌표>는 이 거친 땅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살기를 권하는 책이다. 내 생각은 내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지배하는 자들이 심어준 것일지 모른다. 그런 성찰을 해 보자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사람에 대한 희망,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무엇에 기댈 수 있겠는가.

■ 들추고 들춰도 후회없을 이름 ‘엄마’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창비·1만원

2008년 11월에 출간된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해를 넘겨 2009년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순문학으로는 최단 기간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는 이 책 덕분에 한동안 맹위를 떨치던 일본 소설 바람도 주춤해지는 듯싶었다(물론 <1Q84>라는 예외가 없지는 않다). 자신을 억누르고 희생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란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 그려진 어머니상이 보수적이며 심지어 퇴행적이기까지 하다는 일부의 지적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저 100만이 넘는 독자들에게 절절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 연암에게 배우는 ‘딴죽의 기술’


〈열하일기 1·2·3〉
〈열하일기 1·2·3〉
〈열하일기 1·2·3〉 박지원 지음·김혈조 옮김/돌베개·각 권 2만8000원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조선 사절단에 끼어 6개월간 청나라를 여행하고 기록한 기행문이다. 조선이 세계를 향해 눈을 뜨고 신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외쳤던 230년 전 지식인 연암의 이용후생 사상과 박물지적 박학이 녹아든 저작이다. 돌베개판 <열하일기>는 한문학자 김혈조 교수가 새 번역으로 완역 출간한 것이다. 기왕에 나와 있는 번역본들의 오류를 꼼꼼히 바로잡았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역작이다. 원작 <열하일기>의 오·탈자도 바로잡았다. 그는 지금 <열하일기>를 읽는 의미는 정치사회 격변기 지식인의 역할을 외쳤던 연암의 문제의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 유통기한 지난 종교…썩어도 삼킬건가


〈종교전쟁〉
〈종교전쟁〉
〈종교전쟁〉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 지음/사이언스북스·2만2000원

종교의 유통기한은 이제 끝났다고 주장하는 과학철학자. 현대과학의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성서적 문자주의 못지않게 우주적 문자주의도 배격하는 진화론적 유신론자. 과학의 이데올로기화를 경계하는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자. 두 명의 신학자와 한 명의 과학자가 종교의 존재 근거·이유를 놓고 벌인 한판의 치열한 논전. 이들은 모두 한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두 명은 창조과학의 열혈신도였다. 이들이 어떻게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을 사이비로 단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 또는 과학적 유신론자, 불가지론자로 바뀌어갔는지, 그리고 왜 한국 보수기독교를 한목소리로 준열하게 질타하는지, 올해 한국 독서계를 달군 화두의 하나였다.

■ 아물지 않는 상처 ‘용산’을 위하여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작가선언6·9 지음/실천문학사·1만6000원

이 시대 작가들이 용산참사에 바치는 헌정문집이다. 2009년 1월20일 용산4가 철거민 ‘살인’ 진압 사건이 터졌을 때, 작가들은 한국사회 대표적 참극의 하나로 기록될 이 사건 앞에서 문학의 무기력함에 절망했다. “용산은 오늘 한국사회의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상처다.”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 등 자발적으로 모인 문인 192명은 지난 6월 ‘6·9 작가선언’을 발표했다. 작가들의 연대 모임 ‘작가선언 6·9’의 탄생이다. 그들은 7월부터 용산참사 현장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계속했으며, 인터넷을 통해 릴레이 기고를 이어갔다. 헌정문집은 시와 산문, 그림, 판화, 사진 등 릴레이 기고 작품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책의 수익금은 용산참사 추도기금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