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그룹 아일릿이 데뷔 앨범 타이틀곡 ‘마그네틱’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빌리프랩 제공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그룹 아일릿이 데뷔 앨범 타이틀곡 ‘마그네틱’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빌리프랩 제공

아이돌 산업은 흔히 ‘유사연애’를 기반으로 한다고 이야기됩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에는 기본적으로 연애 비슷한 감정이 스며 있는데,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해 팬덤에 유사연애의 효능감을 주는 등 케이팝 산업이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죠. 오디션 프로그램의 도입 등으로 산업이 더욱 고도화되면서부터는 유사연애가 아닌 ‘유사육아’라는 개념까지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아이돌 가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팬덤의 마음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과도 비슷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주로 이성애적 관계에, 또 거기에 뿌리내린 혈연관계에 쓰는 데 익숙해져 왔습니다. 누군가에게 매혹되는 일은 주로 이성애적인 결합으로 풀이하고, 나이 어린 누군가를 아끼고 돌보는 일은 대개 혈연관계를 전제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초과해버리는 다채로운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서까지 저 오래되고 낡은 가족관계에 뿌리를 둔 딱지를 붙이는 데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요?

“사랑으로 팬심과 덕질을 평가하지 말고, 오히려 팬심과 덕질을 통해 사랑을 다시 이해해보자. (…) 덕질이 불완전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불충분한 덕질일 수도 있다.” 케이팝 아이돌 ‘논란’을 통해 공론장을 새롭게 바라본 책 ‘망설이는 사랑’(오월의봄)에서 봤던, 인상 깊은 말을 다시 한번 더듬어 봅니다. 이미 주어진 관계의 형태가 있어서 거기서 일정한 모양의 사랑이 빚어지는 게 아니라, 언젠가 어디서엔가 나도 모르게 이미 시작되어 버린 사랑이 비로소 관계의 형태를 만들어 나갑니다. ‘역할극’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