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
장영란 지음 | 사계절(2021)

난해한 철학책을 읽기 전에 상세한 해설서를 먼저 읽는 데는 거부감이 없다. 문학은 예외다. 무언가 고갱이를 잃어버리는 짓 같아 교양인일수록 저어한다. 하지만, 미리 해설서를 읽어두고 작품을 읽는 게 훨씬 좋은 때가 있으니, ‘일리아스’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장영란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는 ‘일리아스’라는 고봉을 오르고자 하는 이들, 혹은 오르다 중도에 포기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맞춤한 해설서다. 그리스 철학과 신화 연구에서 호가 난 지은이가 쓴 책이라 더욱 믿을 만하다.

‘일리아스’는 크게 보면 세 대목으로 나뉜다. 첫째 대목은 아킬레우스의 분노, 둘째 대목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과 아킬레우스의 참전, 셋째 대목은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의 화해이다. 이러다 보니, 독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일리아스’라 하면 트로이 전쟁 전체를 다룬 서사시로 아는 일이 잦으니까 말이다. 기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막바지 9년째 어느 날부터 약 50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노래했다. 1권에서만 대략 20일이 지난다. 실제로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의 치열한 전투를 복원한 대목은 나흘에 불과하다. 특히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트로이가 몰락하는 장면으로 매조지는 게 아니라, 트로이의 위대한 영웅 헥토르의 죽음과 장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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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에 대한 예상이 빗나가고, 노래의 속뜻을 알기 어려우니 지은이의 해설은 빛을 발휘한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노래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를 불멸의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의지가 작동한 셈이다. 특별히 어떤 무구를 두고 길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면 대체로 대규모 전투가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리스 비극에도 종종 나오는 장면으로 죽은 자나 그의 무덤에 머리카락을 잘라 바치는데, 이는 영웅제의에나 나오지 흔한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신체와 영혼의 탁월성은 분리되지 않았고, 아름답다 혹은 훌륭하다는 뜻의 칼로스(Kalos)는 일차적으로 외적 아름다움을 가리킨다고 한다.

영웅들이 일대일로 결투할 때 덜 비싸고 덜 가치 있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 승리한다. 자신의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영역에서는 승리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에서는 패배한다. 궁수로 이름난 영웅이 창을 잡고 나서면 전투에서 진다고 보면 된다. 신분과 지위를 떠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것이 능력과 일치한다고 보아서였다. 밤이 되면 전투가 끝나는데 이는 자연의 질서가 바뀌는 것을 신의 의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야간에 기습하고, 말 등에 직접 타는 장면이 나오는 10권은 후대에 끼어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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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의 주제는 세 가지 열쇠말로 정리할 수 있으니, 수치심, 불멸, 오만이다. 공동체에서 명예를 잃는 것이 수치스러워 영웅적 행위에 나서고 그 결과 불멸의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명성에 취하여 오만을 부리다 처절하게 몰락하게 된다. 이를 경계하라고 시인은 총 24권 15693행에 이르는 대서사시를 남겼다. 변함없는 삶의 지혜이건만, 내남없이 이 덫에 걸려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 인간이란!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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