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버즈
전춘화 지음 l 호밀밭(2023)
생각지 못한 임신에 당황한 경희는 앞날이 막막하다. 설상가상 산부인과 초음파 검사를 통해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희는 순식간에 두 배가 되어버린 육아와 경제 부담,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 등으로 마음이 무겁다. 여기까지는 최근 한국 사회 기혼여성의 일반적인 고민이 담긴 흔한 장면이다. 그러나 경희가 며칠에 한 번씩 대림동에서 사온 야버즈를 들고 회사 옥상에 올라가 ‘현란한’ 솜씨로 고기를 뜯는 대목부터 풍경은 갑자기 낯설어진다. 야버즈는 오리목에 붙은 고기로 중국에서는 널리 알려진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름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생경한 음식이다.
조선족 작가 전춘화의 소설집 ‘야버즈’에는 기원과 언어가 같아 무척 가까우면서 역사적 단절과 함께 낯설어진, ‘동포’이면서 동시에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조선족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남들보다 늦게 한국행을 선택한 조선족 중년 여성 오봉선은 간병인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깊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간병 대상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무시하지 못해 손해를 보기도 하는 인물이다. 돈을 벌러 고향을 떠나왔으니 한 푼이라도 실속있게 챙기는 게 중요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따르려고 해도 오봉선은 자신을 고용한 한국인들의 딱한 사정이 먼저 눈에 들어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렇게 전춘화가 그려내는 조선족은 축구 경기에서 중국과 한국이 붙으면 어느 쪽을 응원하느냐는 짓궂은 질문이나 “조선족들은 진짜 칼을 들고 다녀? 대낮에도 싸우면 칼로 막 찍어?”와 같은 편견 가득하고 무례한 질문을 무시로 받지만, 무엇보다 ‘지금 이곳’의 삶이 가장 중요함을 아는 사람들답게 꿋꿋이, 가끔은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각자의 생활을 꾸려나간다.
‘야버즈’와 ‘블링블링 오 여사’가 한국에 정착 중인 청년 여성과 중년 여성의 삶을 현장감 있게 그려냈다면, ‘낮과 밤’은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와 우울증으로 매사에 의욕을 잃은 중국의 친구 ‘영해’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 보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영해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위안을 구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서서히 대화를 발생시키고 나아가 스스로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낮과 밤이 이항으로 대립하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 포개지며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섭리이듯이 ‘낮과 밤’의 대화는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이해와 대화로 확대될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오리목에 붙은 그 작은 살코기를 취하려면 혀를 부지런히 움직여 뼈만 밖으로 뱉어내고 고기를 훑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야버즈가 낯선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애써가며 먹을 가치가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야버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은 사람이다. 그것은 가깝고도 낯설어 오히려 적응이 어려운 한국에 살러 온 조선족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야버즈의 낯섦보다는 그것을 선택한 사람의 ‘마음’에 주목하는 것이 대화와 이해로 나아가는 첫걸음일 수도 있겠다. 여기 그 마음이 가득 담긴 책 한 권이 있다.
이주혜 소설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