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서가는 2021년 7월에 문을 연 철학 전문서점이다. 을지로 청계상가 3층 보행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문가에게도 가볍지 않고 애호가에게도 무겁지 않은 서점’을 지향한다. 현재 동서양의 철학고전과 해설서, 인문·예술·과학 분야의 교양서와 신간 등 3000여종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서점에서는 매달 커뮤니티 활동 또한 운영 중이다. 저자 및 역자와의 대화를 위한 북토크 ‘소요서담’, 페미니즘 독서모임 ‘소요당24’, 출간 6개월 이내 신간을 읽는 ‘금요 신간 읽기 모임’이 대표적이다.
소요서가가 위치한 을지로 청계상가 주위로는 현재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금속 및 기계 공업사, 인쇄·자재·유통·제조 관련 업체들은 이주를 완료했거나 준비중이다. 산업화 초기 시절 을지로는 세운, 청계, 진양으로 이어지는 상가군 건물을 중심으로 서울 도심의 배후지 역할을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각 구역이 정비계획안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
아직 철거가 시작되지 않은 골목 사이에는 여전히 식당들이 성황 중이다. 과거에는 일대 업체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다면 이제는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들 눈에 을지로는 ‘도심 속 변두리’처럼 이국적이고, 인스타그램 사진을 위해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을지로의 밤은 또 부드러워서 골목 사이로 몸을 숨기기가 쉽다. 그래서 꼭 젊은층이 아니더라도 어떤 기대가 필요한 사람, 은밀한 꿈을 꾸고 싶은 이들은 후미진 골목으로 모여 자기만의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을지로의 이런 풍경은 베냐민이 그려낸 19세기 파리를 환기시킨다. 베냐민은 한때 자본주의가 가장 빛나던 곳에서 낡고 버려진 공간으로 전락한 파사주를 들여다본다. 그곳에서 베냐민은 어떤 병폐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 잠재된 희망을 보려고 했다. 세운/청계상가가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파사주라면, 을지로에 자리 잡은 소요서가는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둘러보면서 기억하려고 한다. 모두가 소요할 수 있는 곳에서, 어떤 희망을 떠올리면서.
그 일환으로 소요서가는 동명의 출판사와 아카데미소요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 소요서가는 철학과 예술 분야 출판에 주력하는데, 2023년 10월 첫 번째 책 ‘소크라테스’를 출간했고, 11월에는 두 번째 책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을 출간했다. 다음 책으로는 ‘궁정인 갈릴레오’와 ‘카프카’를 준비하고 있다. 아카데미소요 역시 철학과 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오는 3월에는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과학’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도서출판 길)를 주제로 김덕영 교수의 강의가 예정되어 있다.
소요서가는 철학이 특정인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철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철학이 ‘생각에 대한 생각’이자 ‘비판’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사고와 실천 그리고 공동체 생활의 토대가 되는 ‘지적 문화’가 되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 소요서가는 동시대를 향한 문제의식을 출판사를 통해 제작하고, 아카데미에서 유통하며, 서점에서 공유하는 자체 순환 구조를 통해, 철학을 좋아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싶다.
글·사진 윤상원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