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
한디디 지음 l 빨간소금 l 1만7000원
예술과 공통장
창조도시 전략 대 커먼즈로서의 예술
권범철 지음 l 갈무리 l 2만5000원
‘커먼즈란 무엇인가’는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지금처럼 사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살 수는 없을까?’ 하고 질문하는 책이다. 사적 소유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포획되지 않고 함께 나누고 함께 살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커먼즈’(commons)로 개념화해 소개하고 ‘세계 짓기’의 새로운 방법론으로서 ‘커먼즈 운동’을 제안한다.
저자 한디디씨는 커먼즈 연구자로 서울·도쿄·베이징 등 동아시아의 다양한 도시 운동 현장에 참여해온 현장연구자이다. 이 책은 그의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지만 난해하지 않다. 일반 독자들이 커먼즈가 무엇인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입말체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자는 우선 한글로 ‘공유지’ ‘공유제’ ‘공동자원’이라고 쓰지 않고 왜 영어 단어 커먼의 복수형 커먼즈로 썼는지부터 설명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커먼즈의 핵심은 무엇인가를 함께 섞고 나누는 활동 그 자체다.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나눠 갖자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누리는 자원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한글로 표현하면 자원으로 한정해서 이해하거나 뭔가를 똑같이 분배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 더 명확한 전달을 위해 커먼즈라고 쓴다는 것.
그렇다면 커먼즈의 구체적인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한국 최초의 의료협동조합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이하 난협)을 커먼즈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1976년에 만들어진 난협은 의료복지가 전무했던 시절 도시빈민 여성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동네 한 여자가 원인 모를 병을 앓기 시작하더니 같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한달에 한번 국수라도 먹으면서 사는 얘기나 하자”고 계를 조성해 자주 모였던 여성 15명은 아픈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방송국에도 가고 노동청도 찾았다. 아픈 여성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돌아가면서 그 집 아이들 빨래도 해주고 도시락도 쌌다. 일련의 일들을 계기로 이들은 “병원비가 비싼데, 우리는 아프면 죽을 수밖에 없구나”라는 것을 자각하고 의료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한다. 조합비를 모으고 그렇게 모인 출자금은 목돈이 필요한 사람들의 치료비로 사용했다. 저자는 “장시간의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난협의 조직과 운영에 자신의 시간과 활동을 기꺼이 나누었고 이것이 커먼즈의 핵심”이라며 “커먼즈에서 일이란 임금으로 환산되는 활동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의해 나눔으로써 모두를 위한 사용가치를 만드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내 가족만을 돌보겠다”고 울타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돌봄 네트워크를 만들어 개방해 서로를 돌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활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듣다보면 커먼즈가 새롭거나 낯선 개념은 아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농사일을 할 때 마을 단위로 만들었던 두레가 커먼즈이고, 지식과 정보를 생산할 때 누구든 참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과 정보를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웹기반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도 커먼즈인 셈이다.
저자는 ‘난협’ 외에도 ‘빈집’ ‘빈고’ 등의 실험이나 ‘경의선 공유지 활동’ 등 국내 커먼즈 사례를 소개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커먼즈 운동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빈집’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가난한 젊은이들이 각자의 보증금을 모으고 가능한 대출을 받아 최대한 괜찮은 전셋집을 빌려 보증금이 있건 없건 누구나 함께 사는 공간으로 만든 실험이었고, ‘빈고’는 ‘자본을 위한 저축을 거부’하고 ‘공동체와 상호부조하고 공유지를 누리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목표로 하는 금융 커먼즈이다. ‘경의선 공유지 활동’은 도시화 과정에서 쫓겨난 철거민을 비롯해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들이 모여 국가 소유의 땅마저 이윤 중심으로 개발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 공간을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커머닝’을 시도한 사례다.
커먼즈를 이해할 때 ‘다시 공동체적 관계를 만들자’라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자본주의는 개인과 공동체를 특수한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스스로를 ‘독립적 개인’이자 ‘상품의 소유자’로 인식하도록 만드는데, 구호를 외치는 방식으로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극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삶을 활성화하는 연결의 방식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익숙한 패러다임을 해체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이다’라거나 ‘내 시간과 에너지=돈’이라는 패러다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 책은 그것 또한 하나의 믿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커먼즈 담론을 소개하면서 근대화 과정과 자본주의 심화 과정에서 커먼즈가 어떻게 해체됐고, 우리가 무엇을 복원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커먼즈란 무엇인가’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도시사회학 연구자 권범철의 ‘예술과 공통장’ 역시 커먼즈에 관련된 책이라 함께 읽어보면 좋다. 이 책은 예술 영역에서 ‘공통장’(commons를 공통장으로 옮겼다) 운동이 어떻게 구성됐는지와, 공통장 운동이 처한 복합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임금을 받지 않으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임금 노동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예술가들을 위한 제도적 환경이 전무하다보니,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도시 공통장’을 만들었다. 책은 예술가들의 공통장 사례로 문래동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커머닝한 문래예술공단(예술가들의 네트워크)이나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로 상징되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그러나 이런 공통장들이 정부나 지자체의 ‘창조 도시’ 전략에 흡수될 때 예술가들의 활동이 왜곡되거나 본래 ‘공통장’의 의미를 상실할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지적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