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과 닭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배수아 옮김 l 봄날의책(2019)

한 여자가 아침에 부엌에서 달걀을 본다. 그러나 단편 ‘달걀과 닭’의 화자는 달걀을 응시하는 순간 인간은 달걀을 볼 수 없음을 깨닫는다. 보자마자 달걀은 이미 달걀에 대한 기억에 불과하므로. 달걀은 시대를 멀찌감치 앞서가므로 항상 달아나는 존재, 그러므로 하나의 달걀이란 일시적으로는 늘 혁명이다. 달걀은 희다는 명칭을 피하기 위해 닭의 내부에서 산다. 닭은 달걀이 시대를 가로지르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것은 어머니의 존재 이유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이 소설을 제대로 읽고 있다.

단편 ‘사랑’의 주인공 아나는 만족스러운 가정을 꾸리는 유능한 주부, 이른바 ‘가정의 천사’다. 예술에 대한 막연한 욕망은 하루하루를 아름답고 충만하게 꾸미겠다는 노력 속에서 쇠퇴한 지 오래다. 어느 날 아나는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 안에서 차창 밖의 맹인을 목격한다. 맹인은 어둠 속에서 껌을 씹고 있다. 고통 없이, 두 눈을 뜬 채로. 전차가 다시 출발하느라 덜컹이는 순간 장바구니가 아나의 무릎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나는 비명을 지른다. 세계는 다시금 불편해지고 수년간의 세월이 무너진다. 껌을 씹고 있던 한 눈먼 남자가 세계를 어두운 탐욕으로 몰아넣었다. 아나의 심장은 광폭한 자비심으로 터질 듯했다. 그날 오후 아나는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곳의 보타닉가든에 들어선다. 야생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아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지옥의 공포를 느낀다. 역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제대로 리스펙토르의 세계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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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외인부대’의 화자는 남편과 아들들로 이루어진 가정의 주부이자 작가로 집안에 나타난 병아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약하고 귀여운 병아리는 가족들의 연민을 자아내고 화자는 막내아들에 의해 ‘병아리 엄마’로 지정된다. 연약한 것을 향한 사랑을 품으면 누구나 ‘엄마됨’의 늪에 빠져야 한다는 듯이. 그때 화자의 이웃 소녀 오펠리아가 찾아온다. 화자의 병아리를 탐내는 오펠리아는 질투와 욕망으로 괴로워하고 마침내 병아리를 감싸 안게 된 오펠리아는 ‘고문당하는 사랑’을 보여준다. 병아리를 쓰다듬는 순간 오펠리아는 ‘엄마’다. 오펠리아가 떠난 후 화자는 병아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오, 너무 겁내지 말아라! 종종 우리는 사랑 때문에 죽이기도 하는 법이니까”라는 혼잣말로 병아리가 아닌 오펠리아를 위로한다. ‘엄마됨’의 덫에서 벗어난 오펠리아는 자라나 집을 떠났고 ‘자신의 부족이 사막에서 기다리던 힌두 공주’가 된다.

<달걀과 닭>을 읽는 일은 리스펙토르가 마법의 주문처럼 풀어놓은 수많은 상황에 빠져 기꺼이 허우적거리는 일과 같다. 작가는 난해하고 심오한 이야기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해의 불능이라는 좌절감을 안겨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육체를 관통하는 사랑과 연민이 왜 스스로를 옭아매는 ‘여성됨’의 덫이 되어야 하는지 음울하고도 조용히 웅변한다. 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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