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엮음 l 오월의봄 l 1만3800원
‘관계 빈곤’에서 빠져나와 서로에게 ‘집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다. “의지하고 지지하는 관계로부터 단절”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큰 고통일 수 있으며, 행여 그 범위가 넓어지기라도 하면 사회는 예상치 못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재우, 동하, 최강, 가람, 디오, 오김, 백퍀, 킴 등은 편견으로 인한 단절과 불안, 공포에 맞서 용감하게 공동주거 공간 건축에 나선 이들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일련의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우리가’ ‘당신들’의 이웃임을 세상에 활짝 드러내 동네를 “총천연색의 다양성”으로 물들이기로 작정한 “야심 찬 사회적 기획”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결과물은 2016년 완공한 148㎡(45평) 크기의 5층짜리 건물 ‘망원동 무지개집’.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는 이들 15명의 퀴어가 실험에 나선 공동주택 건축의 의미와 그 지난했던 집짓기의 수고스러움과, 마침내 성공해 영위하고 있는 매일과 향후 함께하려는 일들에 대한 담백하고 수수한 기록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성소수자라고는 자신과 커밍아웃한 홍석천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퀴어들 사이의 농담은 현재도 진행형인 이들의 고립감이 얼마나 치 떨리는 두려움이었는지를 잘 드러낸다.
이성애자 중심 사회에서 끊임없이 ‘부캐’를 만들어 내야 했던 이들의 절박함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망원동 무지개집’ 주인들은 마침내 퀴어로서의 고립감을 공동주택이라는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친밀감과 연대감으로 형질 변화시켜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했다. 책을 엮은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이들의 실험이 이성애자들에게도 매우 요긴한 ‘확장 언어’이자 삶의 기술임을 짚어준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