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지대
매킨더의 지정학과 지리의 결정력
해퍼드 존 매킨더 지음, 임정관·최용환 옮김 l 글항아리 l 1만8000원

해퍼드 존 매킨더(1861~1947)는 현대 지정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영국의 지리학자다. 매킨더의 지정학적 사유가 응집된 대표작은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인 1919년에 출간한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이다. 이 저작에서 매킨더는 자신의 지정학적 상상력의 핵심을 이루는 ‘심장지대’(Heartland)라는 개념을 상세히 설명하고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적 지정학을 장대한 시야로 펼쳐 보였다. 이번에 한국어로 출간된 <심장지대>는 매킨더의 이 대표작을 제1부로 삼고, 이 저작의 원형을 이루는 1904년 영국 왕립지리학회 강연문 ‘지리학으로 본 역사의 추축’과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 국제관계 잡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지정학의 세계와 평화의 길’을 묶어 제2부로 삼아 번역한 책이다. 매킨더 지정학의 형성과 발전을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갈등으로 지정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때에 현대 지정학의 원형을 살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 지정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영국 지리학자 해퍼드 존 매킨더. 위키미디어 코먼스
현대 지정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영국 지리학자 해퍼드 존 매킨더. 위키미디어 코먼스

매킨더가 심장지대라고 부르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먼저 ‘세계도’(World-Island)라는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매킨더는 15세기 말~16세기 초 콜럼버스-마젤란의 지구 항로 발견 이후 400년 사이에 인류의 인식 속에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 지도가 들어섰다는 데서 시작한다. 이 세계 지도를 놓고 보면 유라시아가 하나의 거대한 대륙임이 확연히 들어온다. 매킨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프리카도 유라시아와 연결된 초거대 대륙의 일부를 이룬다고 말한다. 이런 시야에서 보면 지중해는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 내부의 작은 바다이고,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은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의 아래로 길게 뻗은 거대한 곶의 끝머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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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매킨더는 지리적 상상력의 날개를 한 번 더 펼친다. 흔히 5대양이라고 부르는 바다는 지구 전체를 둘러싼 하나의 커다란 대양이고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은 이 대양 위에 떠 있는 아주 큰 섬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이해된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을 가리켜 매킨더는 ‘세계도’라고 부른다. 또 그렇게 보면 이 세계도, 곧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 바깥의 남북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이 큰 섬 옆에 붙은 상대적으로 작은 섬일 뿐이다. 영국과 일본이 섬나라이듯이 남북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도 섬나라라는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초 인구 규모로 보면, 북아메리카든 남아메리카든 영국·일본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 ‘세계도’, 곧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 한복판에 펼쳐진 광대한 땅이 매킨더가 ‘심장지대’라고 부르는 곳이다. 심장지대는 시베리아 삼림지대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 그리고 흑해 북부 대평원을 아우른다. 이 광대한 지역은 북쪽으로는 북극해로 막혀 있고 남쪽으로는 히말라야-힌두쿠시 산맥과 드넓은 사막 지대로 막혀 있다. 이 지역에 뚫린 곳이 있다면 동유럽으로 난 대평원뿐이다. 매킨더가 이 지역을 ‘심장지대’라고 부르는 것은 이 유라시아 복판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세계사의 판도가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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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더의 ‘심장지대’ 이론을 세계 지도로 표현한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매킨더의 ‘심장지대’ 이론을 세계 지도로 표현한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눈여겨볼 것은 매킨더가 서 있는 곳이 서유럽, 더 좁히면 영국이라는 사실이다. 심장지대가 그토록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거대한 땅이 동유럽과 맞닿아 있고 동유럽은 다시 서유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매킨더의 지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5세기 훈족의 유럽 침입이다. 몽골 초원에서 일어난 훈족은 동유럽을 뚫고 들어와 서유럽을 휩쓸며 이 지역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동유럽이 관문이었던 셈이다. 이 역사적 경험을 염두에 두고 매킨더는 말한다.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대를 호령하고,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도를 호령하며, 세계도를 지배하는 자는 전 세계를 호령할 것이다.”

이런 지리적 상상력을 발동할 때 매킨더가 마음에 품는 또 하나의 구도가 ‘해양 세력 대 대륙 세력’이다. 지난 5000여 년의 역사를 관통해서 보면, ‘대륙 세력이 바다를 지배하느냐, 아니면 해양 세력이 육지를 에워싸느냐’로 역사의 판도가 정해졌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역사의 초기에는 대체로 대륙 세력이 대세를 장악했다. 고대 그리스를 보면 북쪽에서 내려온 종족이 그리스 본토에 자리를 잡은 뒤 에게해를 지배함으로써 패권을 잡았다. 로마도 이탈리아 본토를 거점으로 삼아 지중해를 복속해 내해로 만들었다. 그리스든 로마든 대륙 세력이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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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더가 꼽는 해양 세력의 대표자는 대영제국이다. 영국은 바다를 통해 대륙을 에워쌈으로써 세계를 손아귀에 쥐었다. 영국의 뒤를 이어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는 것이 미국이다. 반면에 독일과 러시아는 전형적인 대륙 세력이다. 유럽사는 이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경쟁과 충돌의 역사였다. 매킨더가 심장지대에 주목하는 것도 독일이라는 대륙 세력이 심장지대를 차지해 배후에 자원과 식량의 든든한 기지를 둠으로써 해양 세력을 제압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은 매킨더가 1904년의 왕립지리학회 강연문에서 일본의 예를 들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일본이 중국을 장악하고 러시아까지 쓰러뜨린다면 ‘세계 자유를 위협하는 황화(yellow peril)’가 현실이 되리라는 것이다. 매킨더의 관심은 해양이 됐든 대륙이 됐든 모든 위협적인 힘을 다스려 세계 평화를 이룰 국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다.

매킨더의 저작은 100여 년 전에 쓰인 것이어서 오늘의 상황에서 보면 어긋나는 대목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매킨더의 지정학 통찰은 이후 전략가들의 지정학적 탐구와 행동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국제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도 유라시아대륙을 조망하면서 미국 패권을 지킬 지정학적 전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킨더 저작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만하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도 매킨더에게서 영감을 얻었음이 분명하다. 나아가 매킨더가 거론한 일본을 중국으로 바꿔보면, 오늘날 ‘인도-태평양 전략’을 짜는 미국의 전략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