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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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능력주의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l 창비 l 2만원

2020년 전후는 ‘능력주의’(Meritocracy, 메리토크라시)라는 신조어가 영국에서 등장(<능력주의의 발흥>, 마이클 영, 1958년)한 지 60여년 만에 가장 폭발적인 갈등태로 피어난 때로 기억될 것이다. 무대는 한국이다. 더디게나마 사위는 코로나 역병과 달리, ‘능력주의 팬데믹’은 아주 더 오랫동안 이 사회를 포위하리라.

지난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발단이 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지역균형선발이 사단이 된 지방 공공의대 설립안 논란, 앞서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 등은 능력주의가 세계적 화두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례적 공정’ 현상으로, 여전히 답을 구하지 못한 채 던진 질문으로만 선연하다. 가령 성적이 ‘실력’인가, 시험 성적의 유통기한은 얼마인가, 1등 또는 ‘능력자’는 ‘적임자’를 뜻하는가, 성취란 무엇인가, 대의가 보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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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에 대한 이 갈등 사례들은 정책집행 단위의 우둔한 행정이나 소통의 문제를 넘어선다. 예의 점잖은 ‘공리’가 한국의 특수사정으로 사나워진 신세대 ‘공정’ 앞에 멱살 잡힌 꼴이다. 그사이 당초 ‘경쟁 세계’ 바깥에 있던 김용균이 죽었고, 더 앞서 구의역 김군이 죽었으며, 입 없는 더 많은 자들이 죽음의 번호표를 뽑고 있다.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진단한 책들은 적지 않았다. <엘리트 세습>(대니얼 마코비츠, 2020년 11월, 세종서적),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2020년 12월, 와이즈베리),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2021년 9월, 이데아)…. 근래 <한겨레>가 북섹션 표지나 교양부문 머리기사로 다룬 책들만 이러하다. 학계나 시민사회계 집단지성은 더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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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능력주의는 실로 건재하다, 아니 더 건장해 보인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추종이 여전하지 않다면 현재의 보수정부가 능력주의를 설사 내면화할지언정 인사원칙으로까지 천명하는 일은 어려웠을 법하다. 역대 어느 정부도 속내와 무관히 통합보다 경쟁, 쟁투를 앞세운 적은 없질 않은가.

사회학자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의 신간 <시험능력주의>가 그의 말마따나 “약간 식상한 담론”의 계보를 잇지만 이는 또한 성찰과 변화 없이 무뎌지고 마는 세태적 위기를 에두른다. 시험능력주의는 “성적 ‘순위를 매기는 시험’이 학력이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 지표라고 보는 능력주의”를 이른다. 이를 통해 차별화되는 지위·보상의 분배가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인식은 하버드대 샌델 교수가 보기엔 ‘착각’일지 몰라도, 세대 당사자들에겐 진리인 형국이다. 원리는 간단하여 힘이 세다. 시험은 두 단계로 사회를 제어한다. 수능시험이 1차 선별, 주요 입사시험이 2차 선별로 작동하되, 소수의 합격자(능력자)와 대다수의 탈락자(무능력자)를 구분 짓고 결과에 자복시키는 이데올로기이자 엄연한 지배질서라는 게 지은이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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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차 선별은 양가적이다. 2차 선별까지 좌우하는 ‘누적효과’가 크기에 교육이 입시수단으로 전락해 고용이 불안정하고 값싼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한 전쟁을 학교에서부터 치르게 한다. 동시에 2차 선별로부터 무력화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아 “자기가 속한 집단이 모두 차지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즉 지위 상실의 불안을 야기하고 급기야 그 밖의 무리를 차별하고 배척하게 한다.

무능한 자신을 ‘알아’ 책망하므로 이데올로기는 경제적이고, 무능한 타인을 ‘알라!’ 혐오하므로 질서는 삼엄하다.

그간 ‘모두가 패자가 되는 함정’으로서의 능력주의 담론을 넘어, 지은이가 한국식 능력주의가 착근된 배경을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노동의 소외에서 찾고, 대안 역시 교육과 노동의 중층적 유관성을 통찰하는 데서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다. 구술하자면 “앞에선 과도할 정도로 엘리트층에서 시험능력주의의 원리가 작동하고 부추기며, 뒷면에서는 사람들이 그들(시험능력자)을 지지하고 선호하는 메커니즘이 있는데 그건 결국 (배경에) 노동배제가 있기 때문”(김동춘, 5월31일 출간 기자간담회)이다.

5월3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자신의 새 책 &lt;시험능력주의&gt;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창비 제공
5월3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자신의 새 책 <시험능력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창비 제공

시험이 공정의 유일한 기제로 신격화되기까지, 기득권의 지위·능력 세습과 이로 인한 여타 평가 절차의 부재 및 사회불신이 강력하게 작동해 왔다. 시험의 보편적 본질, 시험능력주의가 프랑스-일본-한국 사회로 이식되는 경로, 그러면서도 외환위기 신자유주의로 ‘괴물’이 된 한국적 특수성 등을 사회학자로서 고찰하며, 시험능력주의가 초래한 잔혹한 10년사를 총체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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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대안은 교육 너머로부터 온전해진다. 첫 번째, 단계적 실적주의 강화, 평가의 다양화와 패자 부활 제도화, 대학서열 구조 완화, 수도권 집중 해소 등의 제도개혁으로 1차 선별의 누적효과를 줄이고 ‘병목’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전문·관료집단의 지위 독점 해소, 임금 불평등 극복, 노동권 확대 등의 구조개혁으로 저류의 오랜 ‘노동배제’를 불식해야 한다. 모두 지극히 난망한 과제다. 그러고도 지은이에겐 가치 개혁이 남는다. 물질주의 가치관 극복과 함께, 당대 도도한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성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사회 전반의 몸부림 말이다.

능력주의를 기조로 삼은 새 정부엔 “공염불이,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면서도, 지은이가 거듭 능력주의를 몰아세우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그 어떤 정부보다 교육문제에 무관심했다”는 그의 절망은 진보적 참여사회학자로서 ‘공정 사회’ 너머 도래해야 할 ‘정의 사회’를 포기하지 않은 대가일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