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의사인 셰이머스 오마호니는 <병든 의료>에서 “치료받아야 할 것은 환자가 아니라 현대 의료 그 자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현직 의사인 셰이머스 오마호니는 <병든 의료>에서 “치료받아야 할 것은 환자가 아니라 현대 의료 그 자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병든 의료: 현장 의사에게 듣는 현대 의학의 자화상
셰이머스 오마호니 지음, 권호장 옮김 l 사월의책 l 1만8000원

9988234. 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아누웠다가 죽자는 뜻이란다. 동서를 막론하고 옛날부터 일부 사람들이 꿔온 꿈이다. 193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50년간 ‘의학의 황금시대’를 지나 출산에서 죽음까지 모든 삶의 과정이 의료산업화한 요즘 그리 못할 바도 아닌 듯하다. <병든 의료> 지은이는 그게 바로 병이라고 말한다.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인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지은이는 의대생 시절 이반 일리치(1926~2002)를 영웅 삼았다. 토론회에 연사로 온 또 다른 일리치 숭배자와 교내 술집에서 신나게 떠든 기억이 생생하다. 일리치는 문제작 <의료의 한계>(1975)에서 의료제도가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위협이 되고 있다고 썼다. 병원(또는 의사)이 병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평생 환자로 만들었다는 주장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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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의료>(2019)는 <요즘 우리가 죽는 방식>(2016) <육체관리부: 현대 병원에서의 삶과 죽음>(2021)과 함께 지은이의 ‘현대 의료 3부작’. 사실상 이반 일리치에 바치는 헌정판이다. 그의 영웅이 주장한 바를 지면 곳곳에서 재설파하고 자신의 실수와 의료 현장의 오류를 까발림으로써 이를 뒷받침한다. 건강을 위한 제도가 제도를 위한 제도로 바뀌어 의사와 환자를 노예화하고 있다는 것. 의료계에는 배신자인 셈인데 신랄하고 정직하고 우아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일리치의 후광 때문이지 싶다. 아니면 투덜이 지은이한테 “지금 우리 문제는 다 사람들이 너무 오래 살아서 생긴 것이거든”이라고 훅 치고 들어온 노모의 혜안.

이반 일리치로부터 40년이 넘게 지난 뒤에 썼는데도 기본 뼈대가 그대로임은 책의 원제 ‘의료는 치유될 수 있을까’(Can Medicine be Cured?)의 답이 그다지 밝지 않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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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예시한 의료산업복합체의 가짜 질병 만들기. 지은이가 목격한 만큼 가짜 질병인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이 탄생하는 과정은 섬찟하다. 셀리악병이 아닌데도 글루텐(빵을 쫄깃하게 만드는 단백질 성분)을 섭취할 경우 설사, 체중감소, 빈혈, 성장장애 등 유사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되는 병증을 말한다. 셀리악병은 네덜란드 소아과의사 빌렘 카렐 딕케(1905~1962)가 발견한 병으로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들한테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홍거빈터르’라 부르는 겨울기근 때 빵 대신 쌀이나 감자가루로 죽을 쒀 먹인 아동들의 증상이 호전되는 것에 주목하며 글루텐이 원인임을 밝혀냈다. 지은이가 1980년대 셀리악병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비교적 잘 알려진 병이었다. 2000년대 들어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게 없어질 즈음 등장한 것이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이다.

과민성대장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을 스트레스보다는 글루텐 과민증으로 설명해주기를 선호했다. 2011년 2월 전세계 셀리악병 연구자들이 모여 그 증상에 대한 명칭과 분류에 대한 합의를 모색하는 회의를 열었다. 후원은 ‘글루텐프리’ 식품회사 닥터셰어였다. 2014년 10월 30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합의문을 도출함으로써 새로운 병이 정식으로 만들어졌다. 지은이는 이 회의를 325년에 열린 제1차 니케아공의회에 비유했다. 하지만 전문가 합의는 근거의 위계서열 가운데 낮은 서열로, ‘술집에서 들은 엉터리 정보’ 바로 위에 위치한다. 미국인 ‘기업가적’ 의사가 쓴 베스트셀러가 그 병을 대중화했다. 수백만 환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 명확한 진단을 받게 된 심신성 증상자들한테 혜택이 돌아갔다. 무엇보다 글루텐프리 식품회사에 떼돈을 안겨주었다. 요즘 소비자들은 글루텐프리뿐 아니라 락토스프리, 유제품프리, 너트프리, 소야프리 식품을 선택할 수 있다. 글루텐프리 샴푸를 사거나 글루텐프리 휴가를 갈 수도 있다. 영국의 ‘무함유’ 식품시장은 연매출 7억4천만파운드(약 10억달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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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설명하는 ‘병든 의료’는 암 시장에서 무척 활발하다. 노령층에서 흔히 발견되는 암에 대한 연구는 거대 비즈니스이며 이해 당사자가 많다. 1971년부터 2012년까지 40여년 동안 5000억달러가 암 연구에 들어갔는데, 암으로 사망한 미국인 모두에게 1인당 2만달러씩 지급할 수 있는 규모다. 대부분의 노력은 암세포의 생물학적 특성을 기술하는 데 돌아갔을 뿐 암을 저지하거나 치료하는 데는 썩 미치지 못했다. 지은이는 암 치료에서 진전을 이루었다는 발표는 수천명을 희생시켜 겨우 몇 백미터 땅을 확보한 1차 세계대전 참호전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병증은 많다. 자신의 승진, 병원의 성가를 높이기 위해 쓰는 학술논문. 국가가 대부분의 연구를 지원하고 연구의 질을 체크하는 사람들의 급여를 지불하고, 출판된 생산품 대부분을 구입하는 ‘무적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해당 약물의 상업성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임상실험. 젊은 단일질환자한테서 나온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처방이 만성질환이 여럿인 노인한테 내려지는 현실. 심각한 부작용과 엄청난 재정 낭비를 부르는 다중 처방. 예컨대 고혈압약이 발목부종을 부르고, 이를 위해 이뇨제를 쓰고, 이는 칼슘 부족을 부르고, 이를 위해 칼슘제제를 쓰고, 이는 구역질을 부르고, 이를 위해 항구토제를 쓰는 식이다.

35년간 의료 현장을 지킨 지은이가 직간접 체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의 삶, 예술, 사랑은 생로병사라는 불변의 진리에 기반한다. 생로병사는 싸움 대상이 아니다. 싸운다 해도 이길 수 없을뿐더러 이겨서도 안 된다. 의학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어디서나 좀 더 견딜 만한 조건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짧게 줄이면 ‘고통 완화’다!

임종업 <토마토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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