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간병 가족들의 이야기
유영규 외 지음 l 루아크(2019)

“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그런 것 같아요….” 2016년 9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 중년 남성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신고했다. 89살 남편 정수천씨가 86살 아내 이일자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자신은 수면제 30알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실패한 뒤 경찰에 체포되어 가며 혼잣말로 “임자, 잘됐어…. 이제 나도 죽어야겠어” 나지막이 읊조렸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노동, ‘간병살인’이었다.

2018년 <서울신문> 탐사기획팀은 벼랑 끝에 내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간병 가족의 현실을 취재해 8차례에 걸쳐 기획기사로 내보냈고, 못다 한 이야기들을 엮어 2019년 책으로 출간했다. 간병살인에 대한 국가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2006~2018년 12년 동안의 간병살인 가해자 총 154명과 희생자 213명을 취재했다. 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가해자인 간병인도 뒤따라 숨져 ‘공소권 없음’으로 집계하지 않는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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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평균 연령은 64.2살, 가해자는 56.9살, 가해자의 35.2%가 우울증 이외에 다른 질병을 앓고 있었다. 간병 기간은 평균 6년5개월, 부부간 살해가 가장 많았고 대부분 우발적 범행이었다. 가해자는 가족 중 아들이 37건(35.2%), 남편이 25건(23.1%), 아내와 딸은 각각 14.8%와 2.8%였다. 이들 10명 중 6명은 ‘독박’ 간병인으로 간병살인 가해자들 중 48.1%(52건)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살인까지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간병인의 45%가 우울증을 호소했다.

남성 간병인에 대한 관심 역시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남성 간병인의 수치를 공식적으로 집계하고 있지만, 그릇된 성별분업 인식 때문에 간병의 세계에서 남성은 도리어 고립되기 쉽다. 자신이 처한 신체적, 심리적 어려움과 갈등을 털어놓거나 간병에 대한 정보와 도움을 얻을 기회가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전체 간병인의 80%가 여성이지만, 간병살인의 가해자 중 74%가 남성이다. 남성 간병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자조 모임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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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은 육아와 더불어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이다. 오랜 시간 아픈 가족을 돌보며 환자 못지않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지만 노동의 대가 따윈 없다. 돌봄이란 점에서 육아노동과 흡사하지만,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아니기에 환자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간병을 위해 직장도 그만둬야 할 판이지만, 하루하루 의료비 부담은 쌓여가고, 경제적으로 현실을 감당할 능력은 점점 줄어든다. 여기서 오는 절망감과 경제적 압박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된다. 25년간 ‘식물인간’ 아들을 돌보던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지르고 함께 숨진 사건을 담당한 소방관은 “발견된 시신은 한 구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꼭 끌어안은 채 한 몸처럼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영화 <더 파더>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보는 내내 영국의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부러웠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지만, 가족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간병의 사회화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가족이 환자를 돌볼 경우에도 보호자의 간병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적절한 시설과 요양보호사, 돌봄전문가 등 간병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 간병살인은 산업재해와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적 살인이다.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