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루쉰 연구 명가정선집(전 10권)
쑨위쓰 외 지음, 김언하 외 옮김, 한국주편 박재우·중국주편 거타오 l 소명출판 l 각 권 2만1000원~3만원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 1881~1936)의 첫 소설은 1913년 4월25일 <소설월보>에 실렸다. 이때부터 헤아리면 중국의 ‘루쉰 연구’ 역사는 이미 100년을 넘어섰다. 100년을 맞은 2013년 중국 허페이 안후이대학출판사는 루쉰 연구자 가운데 ‘명가’로 꼽힐 만한 학자 10명의 논문들을 모아서 펴냈는데, 최근 국내에서도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됐다. 박재우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한국 쪽 주편을 맡고 국내 연구자 11명이 번역한 결과물이다. 다만 전체 10권 가운데 마지막 권인 첸리췬(82)의 <살아 있는 루쉰>만 출간이 조금 미뤄졌다.
루쉰 연구는 굴곡 많은 중국 현대사만큼이나 출렁였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요소가 루쉰 연구의 역사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곤 했다. 대체로 중국 학계에서는 ‘문화대혁명’ 10년 동안을 문화대혁명 담론의 선전물로 루쉰을 활용하는 등 루쉰 연구가 정치적 목적에 동원됐던 침체된 시기로 본다. 반면 이를 쇄신한 1980년대는 루쉰 연구의 절정기로 평가한다. 연구 활동을 재개한 원로 전문가들과 쑨위스, 류짜이푸, 왕푸런, 첸리췬, 양이 등 1930~40년대생 전문가들이 쏟아져나온 시기다. 그러다 80년대 말 역시 정치적 이유로 루쉰 연구가 당국에 의해 주변화됐고, 그 뒤 분화·심화 등이 진행되어 왔다고 한다.
정선집에 이름을 올린 학자들은 대체로 절정기 때에 성과를 내기 시작해 꾸준히 활동한 학자들로, 쑨위스, 양이, 왕푸런, 장멍양, 황젠, 쑨위, 장푸구이, 양젠룽, 가오쉬둥, 첸리췬 등이다. 이들은 각자의 관점과 연구를 통해 루쉰으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자원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원저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했던 <중국은 루쉰이 필요하다>를 쓴 왕푸런은 부국강병과 정치혁명보다도 ‘입인’(立人·사람을 세운다)을 중시한 루쉰의 면모를 부각하고, “물질을 배격하고 정신을 내세우며, 개인에 의존하고 다수를 배제한다”는 그의 말을 되새긴다. 쑨위스는 루쉰 연구에서 “어떻게 단일한 정치사상적 해석, 또 다른 단일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을 것인가” 하는 고민에 대해, “연구자가 주체적으로 부단히 스스로의 태도를 조정하는 것이야말로 연구 자체의 심화발전에 하나의 관건이 된다”고 말한다.
한국어판으로 완간된 <루쉰 전집>(그린비)에 이어, 국내에서 루쉰 연구의 깊이를 한층 더 두텁게 해줄 시리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