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 모두 3953기의 표지석이 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 모두 3953기의 표지석이 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제주4·3 당시 섬을 떠난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주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는 주홍 글씨처럼 ‘빨간 딱지’가 붙었다. 당시 갓난아기였던 70대 중반의 자녀들, 남편을 찾는 100살 할머니가 나섰다. 내 남편, 내 아버지, 내 형제가 어디 있느냐, 국가에 묻고 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지난 6월8일 70여년 전 내란죄나 국방경비법 32·33조 위반(적에 대한 구원통신 연락 및 간첩죄)으로 수형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된 14명에 대한 첫 심리를 진행했다. 4·3 행방불명인(행불인)에 대한 재심 청구인은 모두 349명에 이른다. 국내 재심 청구소송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 수가 많아 비교적 명확하게 증언할 수 있는 청구인을 선별해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 4·3 행불인은 누구인가 4·3 당시 제주 사람들은 중산간 들녘에 숨어 지내거나 피난생활을 하다 당국의 권고에 따라 귀순했다. 밭에서 농사를 짓다가 군경에 끌려간 이들도 있다. 이들은 집단수용소에 수용된 뒤 1948년 12월(1차)과 1949년 6~7월(2차) 열린 군사재판(군법회의)을 받고 육지 형무소로 이송됐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죄명이나 형량을 몰랐다. 심지어 재판의 존재를 몰랐던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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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한 ‘수형인 명부’에는 1차 871명과 2차 1659명 등 모두 2530명의 인적사항과 수형 장소 등이 나와 있다.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형이 집행된 384명을 제외한 이들은 전국의 형무소로 흩어져 수감됐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불순분자로 몰려 상당수가 학살되거나 형무소 문이 개방되면서 행방불명됐다. 당시 부친이 행방불명된 김필문(75)씨는 “내가 3살이던 1948년 12월 군사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로 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했다.

지난 6월8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행불인 재심 청구소송 첫 심리에 행불인 유족들이 모여들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지난 6월8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행불인 재심 청구소송 첫 심리에 행불인 유족들이 모여들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 재심 청구 소송 쟁점은 이번 재심 청구 소송은 행방불명된 당사자들이 숨졌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이 때문에 청구인과 변호인 쪽은 70여년 전 행방불명된 이들의 사망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이름이나 주소가 다른 행불인의 경우 ‘같은 사람’(동일인)이라는 것도 입증이 필요하다. 재심 청구 소송을 맡은 문성윤 변호사는 “형무소별로 당시 수감자들을 총살했다는 기록이 명확하게 나온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다. 재심에 앞서 행불인들이 사망했는지를 증명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변호인 쪽은 정부가 2003년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에 따라 대전, 대구형무소 재소자들의 사망 입증은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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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변호사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형무소들에 대해서는 4·3평화공원에 행불인 표지석이 설치돼 있고 유가족들이 수십년 동안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그동안 소식을 전해온 바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입증에 주력하겠다. 또 행불인들이 당시 가족들이 피해를 볼까 봐 이름이나 주소를 고의로 다르게 말한 경우가 있어 동일인 입증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3 당시 불법적으로 제주도민들을 끌어가 국가시설에 수감했다. 이들이 행방불명됐다면, 이의 입증 책임도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 재심 절차 어떻게 지난해 1월 이른바 ‘수형 생존자’들이 제기한 재심 청구 소송에서 무죄 판결이나 다름없는 ‘공소 기각’ 결정을 받아낸 것과는 달리 이번 소송은 당사자들의 부재로 배우자나 직계 유족들이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 행불인들의 사망이 입증된 뒤에야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문제는 당사자가 없기 때문에 행불인들의 상황에 대한 법정 증언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망 사실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그 뒤에는 ‘수형 생존자’들에 대한 재심과 같은 순서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법원은 4·3 수형 생존자 18명이 낸 재심 청구 소송 재판에서 무죄 취지의 공소 기각 판결을 했다. 이들의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재판에 회부한 만큼 공소 제기 자체가 무효라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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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결 방안은 이번 재심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면 또 다른 행불인 유족들의 재심 청구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6월 열린 첫 심리에서 재판부가 변호인에게 “4·3특별법의 국회 처리가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국회 입법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제주 지역구 오영훈 위성곤 송재호 의원은 지난달 27일 희생자 보상과 군사재판 무효화 등이 담긴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던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지 주목된다. 김광우 제주4·3행불인유족협의회장은 “이번 재심 청구 소송이 원활히 이뤄져 우리 유족들이 맺힌 한이 풀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