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연구소가 펴낸 ‘4·3과 여성’ 생활사 총서 시리즈에 참여한 허영선 전 소장, 조정희 제주4·3평화재단 팀장, 양성자 제주4·3연구소 이사, 염미경 제주대 교수(오른쪽부터). 허호준 기자
제주4·3연구소가 펴낸 ‘4·3과 여성’ 생활사 총서 시리즈에 참여한 허영선 전 소장, 조정희 제주4·3평화재단 팀장, 양성자 제주4·3연구소 이사, 염미경 제주대 교수(오른쪽부터). 허호준 기자

“제주4·3 시기 가장 나약했던 존재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의 피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4·3의 무참함을 드러내는 중요한 근거로서 여성의 문제는 반드시 드러내야 합니다. 제주4·3연구소가 많은 증언을 채록했지만 4·3 때와 그 이후 여성들의 존재를 체계적으로 모아내지 못했어요. 생활사 총서는 그런 고민이 모여 세상에 4·3을 겪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이지요.”

28일 제주4·3연구소에서 만난 허영선 전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최근 4·3연구소가 ‘4·3과 여성 생활사 총서’ 시리즈 5권(도서출판 각)을 펴낸 기념으로 그동안 발간 작업에 참여했던 허 전 소장을 비롯해 5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양성자 연구소 이사, 조정희 제주4·3평화재단 팀장, 염미경 제주대 교수 등이 모여 여성 생활사 총서 발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4·3 관통한 여성들의 삶 오롯이 담아
“여성과 노약자가 가장 큰 피해자
그들의 목소리가 4·3 풀어갈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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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는 가족사·지역사이자 현대사
“살기 위해 투쟁한 여성들의 삶·기억
실증적 분석 통해 역사로 만들어야”

‘4·3과 여성 생활사 총서’는 2019년 1권 부제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을 시작으로 2020년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 2021년 ‘덜 서러워야 눈물이 난다’, 2022년 ‘눈물이 나도 바당 물질하며 살았어’에 이어 최근 ‘고통의 기억, 그 너머에서’까지 5권으로 펴냈고, 영어로 소개한 영문판 3권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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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 총서에 등장하는 여성은 모두 34명이다. 한 권에 적게는 6명에서 8명까지 그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냈다. 이 책의 기획에 참여한 이들은 당시 제주도내 모든 읍·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하고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녔다. 생활사 총서를 준비하면서 희귀한 사진들도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총서를 기획하고 주도한 허 전 소장은 7년여 연구소를 이끌다 지난 2월 소장직을 끝냈다. 허 전 소장은 “소장이 되면서 4·3의 가장 큰 피해자인 여성과 노약자에 대한 목소리를 우리가 집대성해야 4·3을 풀어가는 데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4·3을 관통하면서 살아온 여성들이 4·3 속에서 어떻게 살았고, 그 이후의 삶이 어떠했는지 개인의 생애사 전체를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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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겪은 제주 여성들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강인했다. 5권의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은 '살암시난 살아진다'(살다 보니까 살았다)를 넘어 살기 위해 투쟁한 여성들의 삶과 그들의 생활이 오롯이 담겼다. 4·3을 겪은 여성들의 생활사는 가족사이자 지역사이며 제주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구좌면 송당리 채계추는 김매고 와서 땀은 촐촐(뻘뻘) 나는데 아기는 젖만 먹으려고 매달려, 아기가 가슴에 매달린 채로 솥을 앉혀 불을 피워야 했다. 정봉영은 ‘폭도 가족’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군인이 돼서 아버지의 ‘빨간 줄’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해 군 생활을 했다. 송순자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동생이 배가 아프자 동네 어른의 권유에 따라 쥐를 잡아 먹이기도 했고, 간판을 보면서 글자를 깨쳤다.

남성이 희생되거나 도피한 마을에서 돌담을 쌓거나(축성) 보초를 서는 일에 여성들이 동원되는 것은 일상의 일이었다. 축성작업이 있을 때는 해안마을에서 중산간 마을까지 매일 지게에 돌을 이고 날라 성담을 쌓았다.

이들의 4·3 이후 삶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남편은 육지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되고 어린 딸은 굶어 죽은 김용렬의 어머니는 김용렬에게 입버릇 처럼 “두루(덜) 서러워야 눈물이 난다”고 했다. 12명의 대식구가 시국(4·3)이 끝난 뒤 자신과 남동생만 남은 김평순에게 4·3은 “두루 저퍼사 잊어버리지(덜 억울해야 잊지) 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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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바다는 생존의 공간이었고, 꽉 막힌 마음을 풀어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도리 해녀 세 자매 오희숙 오기숙 오계숙씨는 “가슴을 탕탕쳐도 바당에서 부끄난(바쁜 것처럼 몸을 놀리는 행위) 살았주”라고 했고, 육지 물질을 갔던 홍순공은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세 살 아기를 배에 태운 채 물에 들어야 했다. 바다는 위험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오홍자 해녀는 담대했다. “해녀들도 사고 난 쪽으론 절대 안 가. 마음 약한 사람은 놀래기도 해. 넋드리고 하지. 난 그게 없어. 난 죽은 사람이 무섭다는 건 없어.”

이날 양성자씨는 “한 명의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서 두세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며 “4·3 시기 여성들이 모두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4·3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조정희 팀장은 “한 분 한 분을 정리할 때마다 여러 차례 오랜 기간 만났는데 어떤 부분은 뺐으면 하다가 다시 만나면 또 집어넣었으면 하는 분들이 있었다. 할머니들의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며 “할머니들의 4·3 경험을 듣는 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하고 싶은 말, 심지어 하기 싫은 말까지 모두 공감해야 한다. 그분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염미경 교수는 “여성 생활사 총서는 그동안 4·3의 구술 증언에서 생애사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됐다”며 “개인의 구술을 넘어 생활사와 지역사를 모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허 전 소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있게 들여다봄으로써 새로운 사진을 발굴하고 자료를 발굴할 기회가 됐다”며 “그들은 당당했고, 담담하였고, 절대 눈물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들의 4·3 기억과 삶을 실증적 분석을 통해 역사가 되도록 하고, 그 삶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