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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들은 옛 잠수복은 ‘토플리스’였나?

등록 :2018-10-25 16:04수정 :2018-10-25 21:31

고광민 전 제주대 교수, ‘잠녀복의 변천사’ 논문에서 소개

‘적신노체’ 단어 근거 조선 시대 ‘알몸 물질’ 주장은 오류
아랫몸만 가린 ‘반신 잠녀복’서 1930년 이후 ‘원피스형’으로
일본에서 건너 온 고무 잠녀복은 1971년부터 입기 시작
감포(경북 경주시 감포읍)에서 만난 ‘반신 잠녀복’을 입고 있는 제주도 해녀(1913년) 촬영 토리이 류우조오
감포(경북 경주시 감포읍)에서 만난 ‘반신 잠녀복’을 입고 있는 제주도 해녀(1913년) 촬영 토리이 류우조오
‘잠녀복’은 제주 해녀(잠녀)들이 바다에서 일할 때 입었던 노동복이다. 잠녀복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 민속문화 연구자인 고광민 전 제주대 교수는 목포대 용해캠퍼스에서 이 대학 도서문화연구원과 남도민속학회 공동 주최로 26~27일 열리는 공동 국제학술대회에서 ‘잠녀복의 변천사’라는 글을 발표한다. 고 전 교수는 제주도 해녀의 잠녀복이 ‘반신 잠녀복→원피스 잠녀복→고무 잠녀복’ 순으로 변해왔다는 것을 사료와 기록 등을 통해 꼼꼼하게 입증한다.

고 전 교수는 조선시대엔 ‘반신 잠녀복’을 입었다는 점을 사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반신 잠녀복은 가슴 부위가 드러나는 옷이다. 고 전 교수는 제주 잠녀들이 ‘알몸 물질’을 했다는 일부의 주장부터 반박한다. 조선시대 인조 6년(1628)부터 13년(1635)까지 7년 동안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이건이 남긴 <제주풍토기>에 나오는 ‘적신노체(赤身露體·몸에 옷을 걸치지 않음)라는 말 때문에 제주 잠녀들이 알몸으로 물질을 했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형상의 `병담범주(屛潭 泛舟)'(<탐라순력도>)에서 반신 잠녀복을 입고 있는 제주도 해녀.
이형상의 `병담범주(屛潭 泛舟)'(<탐라순력도>)에서 반신 잠녀복을 입고 있는 제주도 해녀.
이형상(1653~1733) 목사가 조선왕조 숙종 28년(1702년)에 남긴 <탐라순력도(耽羅 巡歷圖)> 안에 ‘병담범주(屛潭泛舟)’가 들어 있다. 고 전 교수는 “한 쪽 갯밭에서는 잠녀 5명이 전복을 따 고 있었는데, 모두 하반신을 가린 잠녀복을 입고 있었다”고 밝혔다.(그림1) 고 전 교수는 “어떤 이들은 이형상 목사가 제주도 잠녀들이 알몸으로 물질하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아랫도리 잠녀복을 제주에선 소중이라고 불렀다고 환다. 김만덕 기념관에 전시된 소중이.
아랫도리 잠녀복을 제주에선 소중이라고 불렀다고 환다. 김만덕 기념관에 전시된 소중이.
조선 영조 40년(1764년)에 잠시 제주도에 왔던 신광수(1712~1775)가 남긴 <잠녀가>엔 “제주도의 잠녀들은 ‘적신소고(赤身小袴)’를 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나온다고 한다. 고 전 교수는 “‘소고’는 반신 잠녀복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일본인 문화인류학자 토리이 류우조오가 1913년 경북 경주시 감포에서 제주도 출신 해녀가 가슴을 드러내고 아래옷을 입고 있는 사진을 들었다. 고 전 교수는 “반신 잠녀복은 ‘소중이’라고 불렸고 일상의 속옷이나 다름없었다”고 밝혔다.

원피스 잠녀복을 입고 있는 제주도 해녀(1939. 5. 29, 성산읍 성산리) 촬영 타카하시 노보루.
원피스 잠녀복을 입고 있는 제주도 해녀(1939. 5. 29, 성산읍 성산리) 촬영 타카하시 노보루.
원피스 잠녀복이 등장한 것은 1930년 전후로 추정된다. 원피스 잠녀복의 특징은 하반신과 가슴 부위를 옷 한 벌로 감싼다는 점이다. 일본인 농학자 타카하시 노보루가 1939년 5월24일부터 6월3일까지 제주도 농법을 조사하던 중 성산리에서 사진을 찍은 해녀 4명 다 원피스 잠녀복을 입고 있었다. 원피스 잠녀복은 모두 검은색이다. 고 전 교수는 원피스 잠녀복이 가슴 부위를 가릴 목적으로 고안되었는데 <일본지리풍속대계> 사진 속의 잠녀의 가슴이 노출된 것은 선정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 전 교수의 고향인 제주도 구좌읍에선 원피스 잠녀복을 ‘물소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원피스 잠녀복 입은 해녀 (<일본지리풍속대계> 중). 고광민 전 제주대 교수는 원피스 잠녀복이 가슴 부위를 가릴 목적으로 고안되었는데 사진 속에서 가슴이 노출된 것은 선정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피스 잠녀복 입은 해녀 (<일본지리풍속대계> 중). 고광민 전 제주대 교수는 원피스 잠녀복이 가슴 부위를 가릴 목적으로 고안되었는데 사진 속에서 가슴이 노출된 것은 선정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신 잠녀복과 원피스 잠녀복의 차이는 “허리 모양에 있다”고 한다. “반신 잠녀복 허리 상하 길이는 9.7㎝로 허리만 감싼다. 원피스 잠녀복 허리 상하 길이는 18.0㎝로, 가슴까지 감싸게 돼 있다. 반신 잠녀복엔 어깨에 걸치는 ‘멜빵(메친)’이 없지만, 원피스 잠녀복에는 ‘멜빵’ 있다. 반신 잠녀복이 일상의 속옷 겸용이었다면, 원피스 잠녀복은 일상의 속옷이 아닌 해녀들이 잠수할 때만 입었다는 점이 다르다.”

제주 해녀의 고무 잠녀복. <한겨레> 자료 사진
제주 해녀의 고무 잠녀복. <한겨레> 자료 사진

지금 제주도 해녀들이 입는 고무 해녀복은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다. 고 전 교수는 고무 잠녀복의 시작을 1971년으로 보고 있다. 그는 2004년 5월 7일 한림읍 귀덕1리 사무소에서 고무 잠녀복 분쟁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잠녀복 관계 회의록’를 발굴했다. 그 당시 이 마을 해녀 12명이 고무 잠녀복을 입고 물질을 하기 시작하자 형평성을 이유로 반발이 일었다. 고무 잠녀복을 입으면 장시간 작업이 가능해 생산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71년 3월 20일 밤 9시 20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무려 5시간 가까이 진행됐던 회의에서 찬반 논란이 일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고무 잠녀복은 오늘날 제주도 해녀들의 보편적인 노동복이 되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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