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인 독수리가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반도 농경지의 전봇대 위에 앉아 까마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박경만 기자
천연기념물인 독수리가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반도 농경지의 전봇대 위에 앉아 까마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박경만 기자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국토부 계획대로 임진강 하구 준설이 시작됐으면 모래톱과 주변 농경지가 훼손돼 재두루미나 철새들이 찾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때이른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선 안 임진강 하구 주변 농경지에는 재두루미 수십마리가 고개를 곧추 세우고 불청객을 경계하면서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임진강 하구 준설을 앞장서 막아낸 ‘임진강지키기 파주시민대책위원회’ 노현기 집행위원장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정부와 경기도, 파주시의 장단반도에 대한 지속적인 개발 욕망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는 북한과 최접경 지역인 장단반도의 약 330만㎡(100만평) 가량의 논과 갈대습지, 초지에 남북 경제협력형 특구 등 개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노 위원장은 “준설은 막았지만 국회에 파주평화경제특구법안이 제출돼 있고 문 대통령의 선거 공약과 국정운영계획에 포함돼 조만간 논란이 재연될 소지가 크다”며 “장단반도의 논을 메워 개발을 진행하면 환경파괴는 물론 홍수예방 유수지 구실도 할 수 없게 된다. 또 전쟁과 분단의 상처로 보존된 비무장지대(DMZ)의 역사적 상징성도 훼손되므로 함부로 건드려선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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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영하의 쌀쌀한 날씨인데도 임진강 하구 초평도와 장단반도 일대에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와 독수리가 각각 30마리가량 관측됐다. 2~4마리씩 가족 단위로 짝을 지은 재두루미는 농경지에서 먹이를 찾거나 강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인근 군부대 사격장에서 쉴 새 없이 총소리가 들렸으나 별로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독수리는 전봇대 위에서 까마귀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았다. 파주지역 환경운동가들은 “10월 말~11월 초 100마리 이상의 재두루미가 관측됐으나 일부는 먹이를 보충한 뒤 주요 월동지인 순천만이나 일본 이즈미 등으로 이동하고, 현재 남은 재두루미들은 이곳에서 월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진강 일대에서 10년 넘게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온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한강하구 교사모임’은 임진강 하구는 생물다양성이 매우 높지만 최근 개발로 인해 개체수가 급속히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병삼 한강하구교사모임 대표는 “10여년 전만 해도 이동기때 공릉천과 문산천, 산남습지 인근에 개리가 1천마리 이상 왔는데 출판단지와 새도시 개발 등으로 지금은 10분의 1로 줄었다. 공릉천 하구 농경지는 해마다 재두루미 10여마리가 월동했는데 도로가 생기고 사람 이동이 잦아지면서 올해는 아예 실종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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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두루미 한쌍이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하구 초평도 인근 모래톱 위에서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박경만 기자
재두루미 한쌍이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하구 초평도 인근 모래톱 위에서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박경만 기자

인근 한강하구 고양 장항습지도 주변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장항습지에서는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재두루미 30마리와 개리 60마리가 관측됐다. 특히 천연기념물 325호인 개리는 15년 전 수준으로 개체수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한동욱 공주대학교 겸임교수는 “장항습지 새섬매자기 군락이 안정화돼 개리가 많이 늘었다. 재두루미는 월동 개체군이 다 내려온 것 아니어서 다음달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항습지의 재두루미는 2012년까지 100여마리가 겨울을 났는데 지난해에는 10여마리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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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문가들은 야생조류가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일부 의혹에 대해 근거없는 얘기라며, 먹이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동욱 박사는 “야생조류가 간 뒤에도 조류인플루엔자가 계속 발병한 것을 보면 야생조류 탓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불량한 환경의 가금류에서 발병돼 야생조류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더 크다. 먹이터가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철새도 규칙적으로 이동하므로 에이아이의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기 위원장은 “장단반도의 넓은 들판에 볏짚을 존치하면 농가나 철새에게 모두 좋을텐데 지원이 적어 아쉽다. 하천 주변 막개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임진강 하구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조속히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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