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리아에서 근무하는 파병군인이에요. 전역을 앞두고 있는데 전 세계 친구를 사귀고 싶어요.”

ㅇ(50)씨는 지난달 중순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미군이라는 앨버트(가명)의 친구 요청을 받았다. ㅇ씨는 앨버트와 매일 문자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이달 초 앨버트는 ‘곧 전역하는데 고아라서 미국에 가족이 없다. 한국에서 당신과 결혼해 살고 싶다’고 청혼했다. 이어 ‘이곳은 국제거래가 되는 은행이 없다. 모아둔 월급을 보낼 테니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ㅇ씨는 앨버트를 잘 아는 외교관이라는 미카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에 오는 길에 앨버트 부탁을 받았심더. 가방 통관비는 줘야 할 꺼 아입니꺼?” 미카엘은 경상도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뭔가 찜찜했지만, 그간에 쌓은 앨버트와 정을 생각해 송금했다. 그리고 며칠 뒤 ‘가방에 든 물건이 달러여서 세금을 내야 한다’는 말에 또 돈을 보냈다. 송금액은 지난 10일까지 1억원에 달했다.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 수법으로 ㅇ씨 등 41명에게 통관비 등 명목으로 6억4천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미카엘(42·가명·나이지리아 국적)씨를 구속하고 범행에 사용한 컴퓨터, 휴대전화, 대포통장, 5145만원을 압수했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은 세계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통용하자 이런 서비스망을 통해 알게 된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처럼 속인 뒤 도움을 청하는 수법으로 금품을 가로채는 국제 사기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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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씨는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로맨스 스캠 유인책들이 보낸 한국인 인적 등을 보고 200여명에게 연락해 “전해줄 물품을 가지고 왔다. 공항에서 나가려면 통관비 등이 필요하다”고 속여 41명으로부터 한차례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200만원에서 최대 1억3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올 초에 아는 친구가 제안해 돈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기로 하고 말레이시아의 유인책들이 보내준 정보에 따라 시키는 대로 하고 수수료를 받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는 2009년 단기 비자로 입국해 불법체류하면서 한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해외 유인책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이름과 사진은 도용한 것으로 보이며, 파병군인, 거액의 유산상속자, 사업가 등이라고 밝힌뒤 피해자들을 믿게 하려고 현지 사진과 달러·귀중품이 가득 든 가방 사진 등을 보냈는데 모두 인터넷 등에서 내려받아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범행에 사용된 대포통장은 단기간 취업했다 귀국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사들인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유인책들이 활동한 말레이시아 등에 사법공조를 요청하는 한편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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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선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은 “로맨스 스캠은 올 초에 미국 연방수사국이 주의보를 내릴 만큼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국제 사기범죄다. 일단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우므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전혀 관련이 없는 낯선 이들이 친구 요청을 하고 배송 관련 부탁을 하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