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유치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 의사를 묻는 국내 첫 주민투표가 정부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거부로 끝내 무산됐다. 강원 삼척시민들은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주민투표 추진기구를 꾸려 직접 주민들의 뜻을 확인하기로 했다.
삼척시선거관리위원회는 1일 회의를 열어 삼척시의 주민투표 요구에 대해 “원전은 국가사무로 주민투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삼척시선관위는 “주민투표법 제7조에 ‘국가사무에 속하는 사항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라고 명시돼 있고, 주민투표 대상에 대한 유권해석 권한을 가진 안전행정부도 원전은 국가사무여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앞서 삼척시의회는 지난 26일 열린 임시회에서 삼척시가 제출한 ‘원전 유치 신청 철회를 위한 주민투표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삼척시선관위의 결정만 남은 상태였다. 선관위 결정에 따라 애초 10월 초로 예정됐던 주민투표법에 의한 주민투표는 무산됐다.
‘반핵’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김양호 삼척시장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김 시장은 보도자료를 내어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의 정확한 의사를 확인하려 했지만, 법률적 판단과 해석 권한을 가진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가 원전 건설 당사자인 정부의 의견에 따라 주민투표 사무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삼척시는 법률 검토 결과 ‘원전 건설’은 안행부 해석처럼 국가사무가 맞지만, ‘원전 신청과 철회’는 지방사무라고 판단하고 주민투표를 추진해왔다. 2012년 10월 석탄화력발전소 유치를 추진하던 경남 남해군도 주민투표를 실시해 사업을 백지화했다.
삼척시의회 정진권 의장은 “이번 주민투표는 원전 유치에 대한 주민들의 직접 의사를 묻는 국내 첫 주민투표였다. 시의회까지 만장일치로 통과한 주민투표 요구를 선관위가 거부한 것은 주민들의 자율성을 막는 조처”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이달 중순께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삼척원전백지화 범시민연대’(가칭)를 결성하고 자체적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꾸려 주민투표를 강행할 참이다.
범시민연대 결성을 추진하는 시민 최승철씨는 “방폐장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전북 부안군에서도 2004년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해 방폐장을 막아냈다. 시민들의 모금과 자원봉사를 통해 비용 문제를 해결하면 10월 중순께는 주민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척시선관위 관계자도 “주민투표법에 근거한 주민투표는 실시할 수 없지만,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찬반 투표 등을 하는 것을 막을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광우 삼척핵발전소백지화투쟁위원회 기획홍보실장은 “삼척 원전은 전임 시장이 96.9%가 찬성했다는 조작된 유치 찬성 서명부를 근거로 추진됐다. 정부도 원전 건설은 ‘주민수용성’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주민투표는 막고 있다. 민간 주도로 주민투표를 실시해 원전 반대가 많이 나오면 이를 근거로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삼척시민들은 1993년 8월29일 대규모 원전 반대 궐기대회를 여는 등 원전 반대운동을 벌여 1998년 말 덕산원전 건설 계획 취소를 끌어낸 바 있다.
이를 기념해 삼척시민들은 1999년 말 원전 건설 예정지였던 근덕면 덕산리에 원전백지화기념탑을 세우고 8·29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삼척/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