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군항으로 설계한 제주해군기지에 15만t급 민간 크루즈선박이 입·출항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면서 공사를 강행하려고 설계변경이나 선박조종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하지 않고도 공사를 할 수 있도록 기술검증위원들에게 자료 조작을 요구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민주통합당)은 10일, 정부가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건설하겠다는 제주해군기지의 크루즈선박 입·출항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지난 1~2월 4차례 가동했던 ‘총리실 크루즈선박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기술검증위)의 회의록 전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기술검증위는 국회(여야), 정부, 제주도가 추천한 6인으로 구성됐다.

2월14일 4차 회의에서 한 위원은 15만t급 크루즈선박의 안전한 입·출항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관련해 “정부가 그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고 바로 공사를 할 수 있는 그런 데이터를 우리보고 만들어달라고 그러는데…”라고 말해, 정부가 데이터 조작을 요구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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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월26일 1차 회의에서 위원들은 ‘제주해군기지가 애초부터 해군기지로만 설계됐고, 민항에 맞는 설계 변경은 없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다.

1월30일 2차 회의에선 민항에 맞는 설계 변경을 하지 않아 정부 약속이 사실상 거짓이었음을 보여주는 발언들이 잇따랐다. 한 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왜 화끈하게 15만t을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은 “배의 규모를 줄여야지, 그 지역에 맞지도 않는데 억지로 15만t을 갖다가 2척이나 넣어서 거기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또다른 위원은 “정부에서 해군기지로 건설하다가 설계 검토 없이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을 접안할 수 있는 민·군 복합항 건설을) 공약해버렸다. 충분한 검토를 했으면 아마 15만t (크루즈선 2척 동시접안 논의가) 안 나왔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또다른 위원은 “크루즈 부두를 하면 거기에 맞게 가장 먼저 해야 될 게 수역시설이다. … 그런데 그 배(15만t 크루즈선)가 들어오는데도 바뀐 게 (설계) 평면 쪽은 하나도 없다. … 왜냐하면 안 바꾼다는 전제가 다 깔려 있고…”라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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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기술검증위원들에게 ‘해군기지 공사를 계속하고 설계 변경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을 내건 정황도 나타났다. 한 참석자는 “여기(기술검증위를) 구성할 때부터 전제조건은 공사가 계속 진행되는 전제에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설계 변경이 일어나지 않는 방법에서 기술적 대안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또다른 위원은 “지금 정부 측에서 (시뮬레이션 때문에) 공사기간이 연기되는 것을 많이 우려한다”며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것을 (총리실에) 건의하기는 하는데, 공사기간에 지장을 안 주는 것으로 조금 문구를 추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라고 말했다.

기술검증위원은 전준수 서강대 교수(위원장)와 박진수·김세원·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 이병걸 제주대 교수, 유병화 대영엔지니어링 전무 등 6명이었고, 간사는 임석규 총리실 제주도정책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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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례 회의 뒤 기술검증위는 “현 항만 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항만 구조물 재배치와 예인선 배치를 반영해 선박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는 것으로 결론짓고 해산했다.

기술검증위의 부실한 논의와 강제성 없는 결론이 나온 뒤, 정부와 해군은 지금까지 시뮬레이션이나 설계 변경을 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현재 공정률 22%(해군 쪽 주장)이다.

장 의원은 “기술검증위 회의록을 통해 정부와 해군이 군항을 설계해놓고 대통령이 발언한 15만t급 크루즈선박 문제를 끼워맞추기 식으로 추진해왔다는 그간의 의혹이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며 “해군기지 공사를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