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에 사는 상자해파리는 뇌가 없더라도 과거 경험을 통해 행동을 수정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킬대학교/얀 비알레키 제공
카리브해에 사는 상자해파리는 뇌가 없더라도 과거 경험을 통해 행동을 수정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킬대학교/얀 비알레키 제공

뇌가 없는 해파리도 과거의 경험을 통해 행동을 수정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5억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한 해파리의 학습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과 다른 동물의 뇌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은 22일(현지시각) “카리브해에 사는 상자해파리는 신경 세포가 1000개에 불과하고 중앙 집중식 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한 수준의 학습을 할 수 있다. 단순한 신경계를 가진 해파리도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고 행동을 수정할 수 있다”고 보도자료에 밝혔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과 독일 킬대학이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맹그로브 뿌리 피해 사냥하는 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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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해파리는 독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해파리로, 이름처럼 몸통이 투명한 상자처럼 생겼다. 각 모서리에는 팔처럼 쓸 수 있는 촉수가 많게는 15개까지 달려있어서 사냥할 때 자유자재로 늘여서 먹잇감에 독을 주입한다.

연구진은 카리브해 맹그로브 숲에 서식하는 손톱 크기만 한 상자해파리를 연구했다. 이 해파리는 몸통 중앙 있는 24개의 눈을 이용해 물 속에서 맹그로브 뿌리 사이에 사는 요각류(절지동물류)를 먹잇감으로 사냥한다. 맹그로브의 뿌리는 그물망처럼 좋은 사냥터지만 연약한 젤라틴 몸체를 가진 해파리에게는 위험한 장소이기도 하다. 뿌리에 근접하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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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상자해파리는 뿌리에 가까워지면 부딪히지 않도록 헤엄쳐 도망친다. 그러나 너무 빨리 방향을 바꾸면 먹잇감을 잡을 수 없고, 너무 늦게 방향을 바꾸면 뿌리에 부딪힐 위험성이 있다. 연구진은 이렇게 물속에서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는 일이 해파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코펜하겐대학 앤더슨 감 부교수는 “상자해파리는 시각을 이용해 물과 뿌리가 얼마나 어두운지 평가하고 거리를 예측한다. 흥미로운 점은 빗물, 조류, 파도의 영향으로 거리나 명암 대비가 매일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상자해파리는 매일 새로운 사냥이 시작될 때마다 시각과 감각을 이용해 뿌리 회피 동작을 학습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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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산호, 말미잘을 포함하는 자포동물들도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기본적인 형태의 학습은 할 수 있다. 가령 동일한 자극에 덜 반응(습관화)하거나 더 많이 반응하는 것(민감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자극 유형을 연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비연상 학습으로 분류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로 다른 유형의 자극을 연결해 행동을 수정하는 것은 연상 작용이 필요한 더 고급 수준의 학습으로 여겨진다.

여러번 충돌한 뒤 달라졌다

연구진은 상자해파리가 연상 학습을 통해 뿌리를 회피하는 동작을 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진은 야생의 맹그로브 숲과 비슷한 수조 환경을 조성했다. 회색과 흰색 줄무늬가 늘어선 형태로 칠한 양동이를 넣었다. 특히 흰색 줄무늬는 멀리 떨어진 맹그로브 뿌리 모양을 모방했다.

해파리들은 처음엔 착시 효과로 인해 양동이 벽면에 부딪혔다. 그러나 실험을 7분 30초간 진행한 결과, 12마리의 해파리들은 3~5번의 충돌을 경험한 뒤 벽을 피하기 위해 양동이 앞에서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10여 차례 반복된 실험이 끝날 무렵 해파리들은 충돌 횟수를 절반으로 줄였고, 선회 성공률도 4배로 높아졌다. 앤더슨 감 부교수는 “해파리가 이렇게 행동을 수정하는 모습은 쥐나 초파리가 실패를 통해 행동을 학습한 횟수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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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해파리의 몸통에는 로팔리움이라는 시각 뉴런이 달려있다. 4개 로팔리움에는 6개의 눈이 달렸는데 연구자들은 이 시각 뉴런들이 일종의 소형 뇌로서 기능할 거라고 추정한다. 킬대학교/얀 비알레키 제공
상자해파리의 몸통에는 로팔리움이라는 시각 뉴런이 달려있다. 4개 로팔리움에는 6개의 눈이 달렸는데 연구자들은 이 시각 뉴런들이 일종의 소형 뇌로서 기능할 거라고 추정한다. 킬대학교/얀 비알레키 제공

나아가 연구자들은 해파리의 신경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로팔리움’이라고 불리는 해파리의 시각 뉴런을 따로 떼어 실험했다. 상자해파리에게는 4개의 로팔리움이 있는데, 각 로팔리움에는 6개의 눈이 달려있다. 과학자들은 맹그로브 뿌리에 충돌하는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로팔리움에 줄무늬 이미지를 보여줬다. 로팔리움에 처음 인공 구조물을 보여줬을 때는 전기 신호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구조물을 보여준 뒤 인위적으로 전기 자극을 가해 충돌한 것 같은 효과를 반복하자, 로파리움에서도 구조물을 장애물로 인식하는 고주파 전기 신호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뇌가 없더라도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이를 학습하고 회피 행동을 하는 것이다.

24개 눈이 뇌 구실

연구진은 이러한 발견은 해파리의 시각 뉴런이 일종의 소형 뇌로서 기능하며 학습 센터의 역할도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논문 주저자인 킬대학 얀 비엘레키 박사는 “이번 실험 결과는 학습이 신경세포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아마도 초기에 진화해 여러 동물 종에 걸쳐 보존됐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말했다.

그는 “학습은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진화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을 바꿀 수 없는 동물은 치명적인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설명했다. 해파리는 고생대 캄브리아기부터 살아남은 세계서 가장 오래된 동물 중 하나고, 그 생존력만큼 학습 능력도 갖췄을 거라는 뜻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