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가이아나의 열대림에 사는 한 개미(학명 Azteca andreae)는 나뭇잎 가장자리에 떼 지어 매복하다 자기 몸집에 견줘 엄청나게 큰 먹이를 사냥하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실험에서 이 개미는 주둥이로 자기 체중의 5700배까지 견뎠고 무리 지어 사냥한 메뚜기 무게는 19g에 이르러 개미 한 마리 체중의 1만3000배가 넘었다.
사회성 곤충인 개미는 사냥하거나 채집한 먹이, 먹이를 재배할 잎사귀, 둥지 재료 등을 집으로 물고 끌어 나르며 새끼와 동료, 장애물 등도 거뜬히 들어 운반한다. 가이아나 개미처럼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개미는 종종 자기 체중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물체를 어렵지 않게 나른다.
개미는 왜 이렇게 힘이 셀까? 초고해상도 분석기술을 이용해 개미 내부의 근육과 뼈대를 상세히 들여다본 연구결과가 이런 궁금증에 해답을 제시했다.
크리스천 피터르 프랑스 소르본대 곤충학자 등은 과학저널 ‘동물학 최전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일개미는 날개를 잃음으로써 땅에서 강력한 힘을 내도록 뼈대와 근육을 리모델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개미는 날아다니던 말벌의 조상에서 갈라져 진화했지만 벌과 달리 일개미는 모두 날개를 잃고 땅에서만 산다. 연구자들은 개미가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로 꼽히는 요인으로 흔히 분업과 협동 등 사회성을 꼽지만 지상에서의 노동에 최적화한 일개미 계급의 형태적 특징은 잘 알려지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람은 흔히 비행을 꿈꾸지만 동물 진화에서 비행은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날아다니는 곤충의 가슴에서 비행 근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비행하려면 몸의 다른 부위를 담당할 근육은 단단한 외골격 안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비행을 포기한 일개미의 가슴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개미 집단에서 여왕개미와 수개미만 짝짓기 비행을 위해 날개가 달려 있다.
연구자들이 엑스선 단층촬영과 3차원 모델링 기술로 일개미 가슴 속 내부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여왕개미와 일개미의 가슴구조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주 저자인 고 피터르 박사(논문이 출간되기 직전인 9월 숨졌다)는 “비행을 위한 근육 자리에 일개미의 목, 사지, 배를 지탱하는 근육이 팽창해 더 큰 힘을 쓸 수 있도록 재배치됐다”라고 공동 연구기관인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 대학원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구체적으로 비행 근육이 달리지 않은 일개미의 가슴 등판은 단단한 상자 모양으로 바뀌어 머리, 다리, 배를 움직이는 근육을 튼튼하게 지탱하게 됐고 근육이 힘을 잘 쓰도록 키틴질 내부구조도 달라졌다. 또 무거운 물건을 드는 사람의 팔 구실을 하는 목 근육과 무게를 버티는 다리 근육이 현저히 커졌다. 침을 쏘거나 개미산을 분비하기 위해 배 끝을 외적에 재빨리 조준할 수 있도록 배를 움직이는 근육도 강화됐다.
결국 일개미가 나는 능력을 잃은 것이 더 강력한 힘을 지니도록 혁신하는 진화를 촉발한 셈이다. 그러나 비행능력 상실이 모두 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말벌의 일종은 비행을 포기했지만 비행 근육이 들어있던 자리를 더 큰 배의 근육으로 채웠다. 이 말벌은 외톨이 생활을 해 먹이를 운반할 필요가 없고 다른 곤충에 침을 쏘아 번식하는 기생벌이다.
인용 논문: Frontiers in Zoology, DOI: 10.1186/s12983-020-00375-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