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요즘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이더군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지요. 오죽 답답하고 화가 났으면 기자를 쓰레기라고 부를 생각을 했을까요. 이 말은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널리 쓰이게 되었지요.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언론인들도 이 말을 많이 썼습니다. ‘엠비시(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는 2014년 12월 출범 선언문에서 “엠비시는 땡전뉴스나 다름없는 기레기 방송으로 몰락했다”고 비판했고,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피디연합회 등 언론단체들은 2015년 4월 세월호 1주기 기자회견에서 “영원한 기레기가 된 우리를 규탄합니다”라고 외쳤지요.

언론,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비판하면서 개혁을 이뤄냅시다. 저도 더욱 애쓰겠습니다. 기레기라는 욕이 언론의 성찰과 개혁에 도움이 된다면 더 많이 사용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레기 사용법’은 그게 전혀 아니더군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기사 내용에 대해 무조건 기레기라고 욕하는 게 법칙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않은 채 다른 것조차 틀리다고 말하는 게 언어 습관이 돼버린 다혈질 국민이라곤 합니다만, 이건 좀 곤란하지 않나요?

당신은 모든 기자와 언론을 기레기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당신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라고 여기는 논객 또는 선동가들과 그들의 주장이 발설되는 매체엔 뜨거운 지지를 보낼 겁니다. 우리 국민 절반이 유튜브를 언론으로 여기는 것도 우연이 아니지요.

“누가 나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가?” 이 기준에 따라 ‘의인’과 ‘참언론’의 여부가 결정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기능에 충실한 ‘해장국 언론’을 갈망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당신은 이미 스스로 정해놓은 답을 찾는 ‘답정너 언론’을 열망하는 건 아닌가요? 물론 ‘진실에 대한 갈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실 추구의 기본적인 자세는 확신을 유예한 가운데 다양한 정보를 많이 접하면서 냉정한 분석에 임하는 것이지요. 당연히 기레기라는 욕도 자제해야겠지요.

기레기라는 욕이 난무하자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전 의제 선정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해장국 언론’을 원하는 국민이 많은 상황에선 언론개혁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비난하는 언론의 어떤 문제점은 민주화와 더불어 이른바 ‘촛불 혁명’에 큰 기여를 한 동력이기도 했지요. 우리는 자신의 선호에 따라 그런 언론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내로남불’의 자세를 취하는 건 아닐까요?

왜 우리는 언론이건 정치건 늘 ‘공급’의 문제만 다룰 뿐 ‘수요’의 문제는 외면할까요?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마케팅 구호에 현혹된 탓일까요? 이런 구호는 소비자의 갑질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의심의 대상이 되었건만, 왜 우리는 여전히 언론 수용자의 문제엔 눈을 감는 걸까요? 우리도 수용자로서 성찰해야 할 점은 없을까요?

‘해장국 언론’에 대한 강한 수요는 디지털 혁명의 산물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엔 누구건 사회적 발언을 할 때엔 진영논리에 충실할망정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었습니다. 무조건 내지르고 보는 막말을 했다간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정도의 경계심은 있었지요. 그러나 이젠 적에 대한 증오를 맹렬히 부추기는 막말과 궤변일수록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선동가들도 ‘갑’은 아닙니다. 당신의 열정을 북돋우는 치어리더일 뿐이지요. 그들이 나름의 고뇌와 성찰 끝에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자제와 냉정을 요청했다가는 순식간에 변절자로 추락할 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그런 문제에서 면책될 수 없는 사람인지라 꾸지람은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우리 모두를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과 같은 ‘기레기 사용법’은 언론개혁을 더 어렵게 만들거니와 그 어느 쪽도 완승을 거둘 수 없는 파멸적인 싸움입니다. 그런 싸움을 지속하는 건 나라만 골병들게 만듭니다. 당신이 기레기라고 욕하는 언론인이나 언론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당신 못지않게 선량한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더불어 같이 사십시다. 진영논리에 따른 정파적 투쟁을 하더라도 “누가 더 나쁜가”를 따지기보다는 “누가 더 잘하나”를 따지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해보십시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에겐 그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자꾸 해장국만 찾는 당신, 술을 좀 줄여보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