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갈무리
국립국어원 갈무리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본격화된 각계 여성들의 ‘미투’(#ME Too) 캠페인이 뜨거운 가운데, 페미니스트를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라고 풀이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엉뚱한 설명 때문에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만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청년회원들로 구성된 청년참여연대는 지난 7일부터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표준국어대사전 내 페미니스트 정의의 2항 삭제 및 수정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바로가기)를 시작했다. 청년참여연대는 설문 결과를 모아 국립국어원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은 페미니스트를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는, 별도 항목으로 ‘예전에,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로 풀어쓰고 있다.

하지만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는 성평등과 아무 관련이 없다. 외려 남녀의 사회적 우열을 당연시하고, 그에 기반해 우월적 지위인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는 것으로 페미니즘을 오해하게 하거나 거꾸로 성차별을 조장하는 개념이다. 여성학계에선 이를 ‘유사 페미니즘’이라 부른다. 때문에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전 정의를 바로잡아야한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묻고 답하기’ 코너에 올라온 ‘페미니스트’ 뜻풀이에 대한 질문들.
국립국어원 ‘묻고 답하기’ 코너에 올라온 ‘페미니스트’ 뜻풀이에 대한 질문들.

실제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즘 항목을 보면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 ≒남녀동권주의·여권 확장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제대로 설명해놓고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보는 페미니스트를 엉뚱하게 풀어놓은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사전의 경우 페미니즘과 별개로, 페미니스트 항목에서도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 그리고 여성이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스트 뜻풀이 논란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5년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국립국어원에 페미니스트 정의를 바꿔달라는 의견서를 보내기도 했다.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국립국어원은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설명을 지난해 2월 ‘예전에, ~이르던 말’로 지금처럼 고쳐놓았을 뿐이다. 최정도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는 “과거 용례에서 페미니스트가 공처가 혹은 애처가로 쓰인 적이 있다. 예전 문헌을 읽을 때 참고하라는 차원으로 관련 정보를 남겨 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청년참여연대의 페이스북 계정 화면
청년참여연대의 페이스북 계정 화면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은 인쇄본 없이 누리집을 통해서만 서비스 중이다. 국립국어원은 1년에 4차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보보완심의위원회를 열어 정보수정 여부를 정한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말 수정 때엔 ‘미망인’에 대한 뜻풀이 가운데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설명을 삭제한 뒤 부가설명을 붙여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니,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라고 고쳤다.

한편 지난해 말 포털 네이버는 자사의 사전 서비스 이용자들이 한 해(2017년 1~11월) 동안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마이동풍’과 ‘페미니스트’였다고 밝힌 바 있다. 네이버 사전의 출처는 표준국어대사전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