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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순례기

‘겉멋 든’ 바람둥이 내면에 깃든 ‘청빈한 사랑’

등록 :2009-11-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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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성인

“왜 종을 섬기느냐” 음성 듣고 180˚ 달라진 ‘탕자’의 삶

정욕 이기려 고통 감내…걸인과 친구하며 무소유 강조

 

 

로마에서 아시시로 향하는 길엔 초원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 국토가 골프장인 듯한 초원과 멋진 집들이 영국의 풍경과 닮았다. 다만 산을 찾아보기 어려운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태백산맥에 비견할 만한 아펜니노 산맥이 등줄기처럼 뻗어 있고, 하얀 눈이 얹힌 설산이 푸른 초원 끝에 걸쳐 있다.

 

‘폐문 종’ 울리면 ‘신데렐라’ 되는 수도승들

 

로마에서 세 시간을 달려 아시시 옆에 있는 움브리아 지방에 도착할 무렵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늘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영국에서도 비 한 번 맞은 적이 없는 순례단이 처음 맞는 비였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프란치스코 성인이 머물던 곳이다.

 

나도 세상의 많은 순례지 가운데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깃든 아시시였다. 영국에서 만난 성공회 조황식 신부도 아시시에서 보낸 며칠 간을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아시시에서 열린 축제엔 프란치스코 성당의 수도사들도 수도원 담장 밖으로 나와 일반인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더란다. 그런데 어느덧 수도원의 폐문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수도사들이 길게 늘어뜨린 치마를 걷어올린 채 한꺼번에 수도원을 향해 달려가더라는 것이다. 그 모습에 춤을 추던 이들이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보슬비를 맞으며 다가오는 순례단을 성모 마리아가 반겼다. 성모상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지붕 위에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순례단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신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1182년에 이 지방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마흔네 살의 나이로 이 성당 자리에서 선종했다. 성당 안 프란치스코가 숨을 거둔 자리 벽면에 펼쳐진 대형 그림엔 누운 프란치스코 옆에서 공동체 형제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가운데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부유한 포목상의 맏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이 마을 골목대장이었다. 술 마시고 여자들과 놀기 좋아하던, 바람기 다분한 방탕아였다. 그가 스무 살 때 아시시와 페루지아 간 전쟁이 터졌다. 기사가 돼 폼을 잡고 싶었던 그는 이 전쟁에 나갔다. 그러나 전쟁 중 포로가 돼버렸다. 온갖 고초를 겪다가 다음해 평화조약이 체결돼 간신히 풀려났지만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청년 프란치스코는 포로로 고생했던 후유증으로 병석에 누우면서 심경에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물세 살 때 다시 기사가 되기 위해 어느 백작의 군대에 입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시 속에서 “왜 주인을 섬기지 않고 종을 섬기느냐?”는 메시지를 듣고 불현듯 집으로 돌아왔다.

 

재산 돌려달라는 아버지에게 겉옷까지 벗어줘

 

다음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을 순례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가 징그럽다고만 여기던 나환자들을 만나 끌어안고, 고름 투성이인 나환자들의 상처에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밀려왔다. 희한한 체험이었다. 이제 프란치스코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마을의 건달들 대신 거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고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 성당 인근 성 다미아노 소성당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인도해달라고 예수님에게 기도했다. 그때였다.

 

“프란치스코야,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

 

프란치스코는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종교적 체험이 깊어진 프란치스코는 더욱 더 자신이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를 보다 못한 그의 아버지가 아시시의 주교에게 그를 데리고 가 재산 상속권을 포기시키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되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이에 저항하기는커녕 몸에 걸친 옷까지 홀라당 벗어주고 알몸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감격한 주교가 프란치스코를 끌어안고 자신의 외투로 그의 몸을 감싸주었다.

 

그때부터 프란치스코는 일체의 소유를 거부하고 남루한 옷을 걸친 채 거친 음식을 먹으며 살았다. 아시시에선 어디서나 청빈한 형제애적 사랑을 실천한 프란치스코의 기운이 느껴졌다.

 

프란치스코는 수도회를 상하 관계가 아니라 형제애적 사랑을 나누는 형제회로 만들었다. 그는 형제들에게 금이나 은, 동전도 지니지 말고, 길을 떠날 때는 속옷 두 벌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했다.

 

방탕아의 삶을 접은 청년 프란치스코는 이곳에 움막을 짓고 수도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건장한 젊은이였던 프란치스코는 육체적 욕망을 견디기 어려웠다. 한겨울 미칠 듯한 정욕에 휩싸인 프란치스코는 장미의 가시 넝쿨 위를 구르며 정욕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장미 가시에 찔려 온몸이 피투성이 되면서 정욕을 이겨냈다. 그때부터 이 정원의 장미에선 가시가 사라지고, 장미 향기가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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