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배구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경기 도중 김호철(52) 현대캐피탈 감독이 코트 한편에 자리잡은 한 여인과 눈을 맞춘다. 그 여인이 손짓으로 뭔가 ‘사인’을 보내자, 김 감독이 이내 눈빛으로 화답한다. 이 사인은 김 감독을 거쳐 코트로 전달되고, 선수들은 삼성화재의 허를 찔러 빈 공간에 강타를 뿌려댄다. ‘코트의 여인’은 1970~80년대 여자배구 국가대표 명세터 출신인 임경숙(48)씨. 바로 김 감독의 아내이다.
챔피언 등극에 1승 만을 남긴 김호철 감독이 ‘승리 도우미’를 자처한 아내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김 감독이 선수와 감독생활을 한 이탈리아에서 자녀들과 같이 살고 있는 임씨는 지난 23일 남편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골퍼인 아들의 식사 등을 옆집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온 한국행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자신이 오지 않아 삼성화재에 졌다며 기어코 왔다”며 웃음을 지었다.
임씨는 단순히 남편의 얼굴 만을 보러온 것이 아니다. 임씨는 지난해 김 감독이 영입한 이탈리아 출신의 전력분석관 도메니코 라사로(54)가 챔피언전 상대인 삼성화재는 물론 현대캐피탈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일을 옆에서 돕고 있다. 임씨는 통역을 할 뿐 아니라, 세터 출신답게 분석관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경기상황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전력분석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분석관은 경기장면을 찍은 영상을 통해 상대팀과 현대의 공격루트 허점 및 강점을 수치화한 뒤 코칭스태프 쪽에 배치된 컴퓨터로 실시간 전송한다. 하지만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전달사항이 있을 때 임씨의 활약이 빛난다. 임씨는 분석관과 나눈 대화내용을 선수들에게 전하기도 하고, 아예 직접 사인을 통해 남편 김 감독과 ‘1대1’ 접선을 시도한다.
김 감독은 “컴퓨터를 통해 받는 기록 외에 분석관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아내가 대신 전달해주니 편하다”며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보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이를 짚어주니까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내에게 직접 부탁을 했는데 지난해보다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