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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친구를 갖고 싶어

등록 :2020-05-22 13:29수정 :2020-05-2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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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손가락 소설-전삼혜 작가]
사촌 동생 선물로 시작한 스위치 게임 ‘요정의 마을’
내 세계 이름은 ‘월급날’… ‘이곳에서 나는 한가하다’

밤 열한시쯤 되면 어슬렁어슬렁 집에서 걸어 나온다. 가게도 문을 닫았고 마을에 사는 요정들도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혼자 걷다가, 나무를 흔들어 보다가, 건초 침대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기도 한다. 풀벌레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고 하늘에 현실과 똑같은 반달이 뜬다. 여기는 월급날 랜드. 나의 요정 마을.

‘내일 친구가 놀러 올 거야. 그러니 수공예점은 하루 쉴게!’ 출근 전에 내가 마을 게시판에 써놓은 글에 요정들이 ‘축하해!’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이곳에서 나는 한가하다.

겨울 끝 무렵이었나. 지희 대학 입학 선물 하나 사주라며 이모는 인터넷 뱅킹으로 오만원을 보냈다. 사촌 중에 너희 둘만 여자애잖니. 친하게 지내. 밥도 같이 먹고. 이모와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나와 지희의 나이 차이는 열한살이다. 내가 스무살 애들 취향을 어떻게 알아. 나는 고민을 하다가 지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입학 선물 뭐 받고 싶어? 읽음 표시가 뜨고 침묵. 삼십분 뒤에 답장이 왔다.

―피키피키 갖고 싶어.

피키피키가 대체 뭐야. 나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쇼핑몰 링크 보내. 읽음 표시는 재깍 떴는데 답장이 없었다. 그 대신 전화가 왔다. 드문 일이었다.

“쇼핑몰 링크 보내라니까.”

발신자에 ‘유지희’가 떴기 때문에 나는 본론부터 툭 뱉었다.

“언니, 친구 있어?”

“뭐?”

선물 대신 짜증을 보낼 뻔했다.

자초지종을 듣고야 알았다. 피키피키는 요즘 유행하는 스위치 게임, ‘요정의 마을’의 캐릭터였다. 어, 그래. 게임 캐릭터가 갖고 싶은 거지? 게임머니로 넣어주면 되나?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어디 가서 잡아 오면 돼?”

한참 회사 사람들이 포켓몬 잡는다고 점심시간마다 우르르 몰려다니던 게 생각나서 한 말이었다. 회사 옥상에 희귀 포켓몬이 떴을 때 팀장님이 달려나가던 스피드가 잊히질 않는다.

“아냐. 게임을 하는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네 마을 요정을 내 마을에도 초대할 수 있거든.”

으음. 어쨌든 돈으로 때울 수 있는 게 좋다. 나는 그냥 시세를 부르라고 했다. 제주도 당근마켓에선 방금 잡은 물고기도 판다는데 게임 캐릭터 하나 못 사랴. 그러자 지희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

이 녀석이.

지희가 보낸 인터넷 링크를 보고 나는 지희가 왜 주저했는지 납득했다. 피키피키의 시세는 무려 십팔만원이었다. 야, 이건 너무하지. 이런 너구리 꼬리에 토끼 귀 달린 요정이 십팔만원이라니. 지희는 ‘예쁘다고! 예쁘단 말이야!’라고 말했지만.

“언니 아니면 이거 사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없어. 응?”

아, 어쩐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열한시반. 내일 출근하려면 자야 하는 시간이었다. 오분 늦게 자면 십분 늦게 버스를 타게 된다. 언니이이. 길게 늘어지는 지희의 투정을 듣다가 나는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지희야.”

“응?”

“그냥 내가 게임 깔아서 그거 잡아 올게. 그럼 되지? 끊는다!”

“아니, 잠깐만, 언니!”

어떻게든 되겠지.

다음 날 아침, 십오분 일찍 일어난 나는 회사에서 공구 때 얼결에 산 스위치를 옷장 구석에서 꺼냈다. 판교 사람들은 왜 이런 걸 공동구매하는 거지. 나는 게임 다운로드를 실행시켜 놓고 머리를 감으러 갔다.

“요정의 마을 플레이 도움이요?”

그다음 스텝은 사람을 찾는 것. 나는 옆 팀 대리님에게 커피를 사겠다며 불러냈다. 대리님은 페이스북에 ‘요정의 마을’ 스크린 숏을 잔뜩 올리는 분이었다. 레벨 업을 빨리하려면 고수의 도움을 받는 게 최고니까. 조각 케이크 기프티콘 정도는 쏠 생각을 하며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 레벨 업 좀 시켜주세요.”

대리님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퇴근하고 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레벨 업을 안 하는 게임이 어디 있어? 쓰리매치도 레벨은 있다고! 레벨 업 시켜서 그 요정인지 하는 거 잡아 오려고 했는데.”

내 목소리에 다소 짜증이 묻어났다. 지희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언니, 그것도 모르고 게임을 샀어?”

“너 같으면 십팔만원짜리 게임 캐릭터하고 육만원짜리 게임 중에 뭘 사겠니. 아참, 이모가 오만원 준 거는 내가 게임 사는 데 썼다.”

“아휴, 왜 그리 성격이 급해.”

지희가 이모랑 똑같은 말투로 한숨을 쉬었다.

“근데 왜 게임 배경이 계속 밤이야?”

“언니, 그거 현실이랑 시간이 똑같이 흘러. 여기가 밤이면 거기도 밤이야.”

세상에. 그러면 전국의 직장인들은 모두 밤에만 마을에 나타나는 건가.

지희가 ‘요새 언니 힘들지? 엄마가 그러는데 얼마 전에 비타민 보냈더니 안 먹는다고…’라며 주절주절 말을 풀어놓았다. 내가 화나서 입을 다문 줄 아나 보다. 갓 스무살 된 애가 걱정할 정도였나. 나는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알겠어. 그런데 난 게임에서 뭘 하면 돼?”

지희는 대리님과 똑같이 대답했다.

“언니가 하고 싶은 거.”

지희는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멍해졌다.

성인이 된 이후 ‘하고 싶은 걸 해도 되는 기간’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게임 안에서 갑자기 자유라니.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소주나 마시고 토하던 스무살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데 게임에서 술을 마실 수도 없잖아.

어쩌지.

어쩌라는 거지.

자정을 넘겨도 내 캐릭터는 기본 의상을 입은 채 마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며칠 후, 대량으로 확진자가 나온 코로나19(COVID19) 때문에 나는 재택근무자가 되었다. 지희는 원격으로 수업을 들었다. 지희는 종종 메신저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녀석 수업 중에 딴짓하는구먼. 마을은 어때? 이름은 뭐로 지었어? ‘월급날’이라고 대답하자 지희는 우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언니, 제발 힐링을 해.”

힐링이라.

그런 건 배운 적이 없는데.

재택근무는 대책 없이 길어졌다. 일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주, 삼주가 지나갔다. 나는 한시간 일하고 오분씩 집안을 걸어 다니는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게임 정보를 모았다. 친구를 초대하려면 카페가 필요하고, 카페를 짓는 데만 사흘이 걸린다니. 요정의 마을은 한없는 기다림의 세계였다. 페이스북을 보니 대리님은 마을에 베이커리를 차리고 열심히 요정들에게 빵을 먹이고 있었다. ‘좋아요’가 삼십개가 넘었다.

이런 걸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걸까.

‘새로 고침’을 해도 변화가 없으면 짜증 내는 세상에서.

결국 나는 집 안에 친 거미줄을 치우다, 마을 대표에게 가서 ‘뭘 하면 될까?’라고 말을 걸었다. 그런 질문이 스크립트 상에 존재하다니, 어지간히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마을 대표는 ‘나뭇가지를 잘 모으니까 수공예점을 해 봐!’라고 했다.

나뭇가지는 주워서 팔면 돈 주니까 모은 건데. 음.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 보기로 했다.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이 시국에 내가 밖에 나가서 뭘 하겠어. 여행을 가겠어, 친구를 만나겠어. 나는 수공예점 주인이 되었다.

잡초를 모아서 건초로 만들고, 사과로 잼을 만들고, 현실에선 절대 안 할 것 같은 일들이 나의 게임 속 일상이 되었다.

사과잼이 잘 졸아들려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 요정의 말을 듣고 나는 게임기를 껐다. 해가 지려면 두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저녁을 먹고, 집을 정리하고 한밤중이 되어 접속하자 사과잼은 다 만들어져 있었다. 친구를 초대해서 티파티를 할까? 사과잼 만들기를 도와준 요정이 물었다. 티파티라. 바깥은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 상태였다.

나는 지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희야, 너 우리 마을에 놀러 와라.

지희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를 잔뜩 붙여 보내더니, 모레 가겠다고 했다. 지희가 보내 준 친구 코드를 입력하자 요정은 ‘그럼 내가 준비를 할게, 모레는 가게를 닫고 놀자!’라며 방방 뛰었다. 친구 만난다고 휴가라니, 현실에선 꿈도 못 꿀 일이네. 나는 피식 웃으며 알았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곧 종료될 것 같았다. 뉴스에선 학생들이 등교할 수 있도록 날짜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렇군. 다시 일상이 오겠지. 출근하려면 봄옷 세탁기에 돌려야겠네. 나는 데워 먹는 도시락을 뜯었다.

그래도 모레는 티파티를 해야지.

나는 기다린다.

글 전삼혜(작가), 일러스트 백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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