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의 고통을 자기 일로 여기며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여전히 공무원이나 교사·변호사 같은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어찌 보면 ‘충성스러운 신민’ 말고는 다른 길이 허용되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에서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을묘년(1915) 3월에 나온 잡지 <청춘>을 보면 “‘너는 앞으로 장차 무엇이 되려고 하니?’라고 물으면 나오는 대답이 ‘모르겠어요’나 ‘글쎄요.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 해요’ ‘변호사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영 쉽지가 않아요’”라는 대목이 나온다. 근래에 만난 한 수학 영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교사 자격증 따면 중학교 선생 노릇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라고 답하였다. 저마다 영웅이나 위대한 학자가 되겠다며 공상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젊은이들이 현실적이고 안전한 길만 가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권상실의 시대, 이러한 젊은이들의 세태를 비판하는 신문 잡지의 논설이 수년 동안 계속된 이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젊은이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은 ‘건전한 국민’을 양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을 뿐인데다, 문·사·철 같은 기초학문보다 산림업이나 광업, 농업 등 기능지식이 더 우대받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불온하다’는 딱지와 함께 배를 곯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라가 망한 시대에 어른들이 가지지 못하는 새로운 목표와 포부를 학생들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학생들이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직업을 좇는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나라까지 일본에 빼앗기게 만든 어른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포 오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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