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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2년만 있으면 버마 민주화가 이뤄져 귀국할 줄 알고 한국에 왔는데 거의 20년이 흘렀습니다.”

버마(미얀마) 난민 마웅저(45)가 웃었다. 다음달 초 19년 만의 귀국길을 앞둔 ‘버마의 홍세화’ 마웅저를 19일 서울 마포구 ‘따비에’ 사무실에서 만났다. 따비에는 평화·행복·안녕을 상징하는 버마의 나무로, 버마 어린이·청소년 교육을 지원하는 단체다.

마웅저는 지난해 말 테인 세인 버마 대통령의 국외 망명자 귀국 허용 발언을 듣고 돌아갈 생각을 먹었다. 1994년 망명 이후 2008년 가까스로 얻어낸 난민 지위는 반납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난민 지위 반납 사례는 처음이다. 마웅저는 “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주역들과 시민단체 사람들을 만나면서 버마 현지에서 계속 민주화운동을 해나가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며 귀국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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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웅저는 고등학생 때인 1988년 8월8일 버마 수도 양곤에서 터져나온 ‘8888 민주화항쟁’에 뛰어들었다가 군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선배들이 10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을 때였다. 말이 망명이지, 브로커에게 3000달러를 쥐여주고 사업용 비자를 얻어 겨우 한국에 들어왔다. 마웅저는 한국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일본행 브로커 비용 1만달러가 없었다”면서도 “한국의 시민사회와 연대해 버마 민주화운동을 살리려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버마) 선배들의 ‘허풍’에 넘어간 점도 있죠. 한국이 87년 민주항쟁 이후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고들 했거든요.”

진짜 ‘허풍’이었다. 마웅저는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밑바닥’ 이주노동자로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 14년간 온몸으로 차별을 겪었다. 불법체류 신세일망정 한국 시민사회와 연대해 버마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겠다는 꿈도 난관에 부딪혔다. 1994년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은 ‘버마’를 ‘아웅산 폭발 사건’ 정도로만 기억할 뿐 정치상황에 대해선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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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군분투 끝에 버마 민주화운동과 한국 시민사회의 접점을 교육운동에서 찾았다. 2010년 마웅저가 세운 따비에가 고심의 열매다. 한국 민주주의의 변화상을 10여년간 지켜본 마웅저는, 민주화를 위해서는 정치운동 못지않게 시민들의 교육수준 향상이 중요하다고 결론내렸다. 버마는 무상교육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초등학교 졸업률이 40%에 그치고 있다. 가난과 민족분쟁 탓이다. 따비에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충분하지 못한 버마에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 등 한국 동화책을 번역해 공급하고 청소년 도서관을 설립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마웅저는 고국에서 버마와 한국 청소년들의 교류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그는 “한국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난민 마웅저 삼촌’ ‘버마 사람 마웅저 아저씨’로 불리게 된 것이 어떤 정치운동보다 효과적이었다. 이제 그 청소년들이 모두 ‘버마 민주화 대사’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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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비에는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환송회 ‘마웅저, 집으로 가는 길’을 연다. 그의 한국 경험을 담은 책 <난민, 마웅저의 꿈>(가제)도 내년 출간할 예정이다.

글·사진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