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크레디트 조합 만든 동자동 사람들
박병욱(46)씨는 서울역 인근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지난달 20일 그의 통장에는 여느 때처럼 41만5000원이 들어왔다. 정부와 서울시가 매달 박씨와 같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돈이다. 한 달 방세와 식비를 대기에도 빠듯하지만 박씨는 이번달에도 과감히 2만원을 떼어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사랑방조합)에 냈다.
대다수가 기초생활수급자인 이 지역 주민들은 아무리 아파도, 당장 방세 낼 돈이 없어도 손 벌릴 곳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지난 3월부터 십시일반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종잣돈을 만들어, 돈이 없어 힘들 때 서로 돕자”는 생각에서다.
사랑방조합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 조합이다. 사랑방조합은 지난 3월1일, ‘주민협동조합(가칭) 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한 모임’을 열어 주민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 첫걸음을 뗐다.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개인 통장을 나눠 가졌고, 한 달에 5천(1구좌)~5만원까지 넉 달째 돈을 모으고 있다. 형편이 닿지 않는 달엔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출자금이 충분히 모이면 주민들은 긴급한 생활자금, 주거비 등의 용도로 10만~15만원 정도까지 소액대출을 받을 수 있다. 대출 금리는 연 2%로 정했고, 담보도 필요없다. 한번 빌려간 돈을 모두 갚으면 횟수와 상관없이 언제든 다시 돈을 빌려줄 계획이라고 한다. 박씨는 “은행은 우리가 돈을 갚을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생각한 탓인지 한 푼의 돈도 빌려주지 않는다”며 “그동안은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속수무책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애초 22명이던 조합원이 넉 달 만에 62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출자금은 첫달에 18명이 30만원을 내더니, 이후 매달 40명 안팎이 70만~90만원까지 돈을 내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5000원 이상은 적은 돈이 아니지만 여럿이 힘을 합치니 4개월 만에 어느덧 268만9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모였다. 가을께부터는 포장마차나 일일주점 등 수익 사업도 할 계획이다.
이태헌 추진위원장은 “일자리와 소득이 한정된 현실에서 힘든 일을 당해도 발만 동동 구르던 주민들이 자구책을 생각해낸 것”이라며 “쪽방, 고시원의 가난한 이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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