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으로 만든 회사를 내놓으라며 동생과 조카를 상대로 소송을 낸 노태우(77)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74)씨가 법정 증인으로 나왔다. 와병 중인 남편을 대신해 나온 김씨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신문에 응하며, 입에 밴듯 남편인 노 전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러 눈길을 끌었다.
서울고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조희대) 심리로 22일 열린 재판에서 김씨는 “(노 전 대통령이 동생 노재우씨에게) 투자를 맡기며 (1988년과 91년에) 160억원을 건넨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쪽 변호인은 김씨가 돈의 입출 내역을 기록해놨다는 노트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준 비자금으로 노재우씨가 냉동창고 업체를 설립했으므로 노 전 대통령에게도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이 김씨에게 “돈을 준 게 사실이냐”고 묻자, 김씨는 “사실이 아니면 내가 이 자리에 왜 나왔겠냐”고 반문했고, “워낙 믿던 사이라 그 많은 돈을 주며 차용증은 안 받았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쪽 변호인은 “아들(노재헌씨)이 정치에 뜻이 있어 재정 기반이 필요해 부탁했고, 대통령의 자금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세탁한 뒤 사용해달라고 했느냐”고 김씨에게 물었고, 김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김씨는 1997년 냉동창고의 수익이 45억원에 이른 것을 뒤늦게 알고 노재우씨에게 1년에 2억원씩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노재우씨의 아들인 노호준씨 쪽 변호인은 이에 대해 “회사 전체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한다면 전체를 달라고 했을텐데 왜 2억원만 달라고 했냐”고 따졌다. 그러자 김씨는 “그건 노재우씨와 우리의 관계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돼 내가 지금 여기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쪽은 노재우씨한테서 1999년부터 7년간 해마다 2억원씩 받았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 1995년 검찰 수사 과정이 언급되기도 했다. 김씨는 돈이 오간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노트에 적었는데, 가택 압수수색이 이뤄질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노트를 없앴다고 말했다. 그래서 1995년 이전 노트는 수중에 없지만 시동생인 노재우씨와의 돈거래는 따로 낱장에 적어놔 일부 기록이 남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준 비자금을 둘러싸고 “(노 전 대통령이) 네가 먹었다 내가 먹었다 해서 노재우씨 집에서 녹음까지 하며 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동생 부자가 소유한 냉동창고 업체인 오로라씨에스의 실제 소유자가 자신이라며 동생 노재우씨와 조카 노호준씨를 상대로 지난해 28억9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주주지위 확인 청구소송 등을 냈다. 노 전 대통령은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정상적인 투자 위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난 1월 패소한 뒤 항소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씨, 남편 호칭은 ‘각하’
송경화기자
- 수정 2009-07-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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