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범국민대회’ 이튿날인 11일에도 ‘민주주의의 퇴보’를 걱정하는 교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원광대와 아주대 교수 164명이 이날 시국선언에 동참함으로써, 지난 3일 서울대에서 시작된 교수 시국선언 참여자는 전국적으로 93개 대학, 4500명을 헤아리게 됐다.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을 살펴보면, 구체적 표현은 다르지만 핵심 내용은 한 지점으로 수렴된다. 현 정부가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등 지난 20여년간 일구어놓은 민주주의를 일거에 퇴행시키고 있으니 이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또 국민과 소통하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을 쇄신하라는 촉구도 빠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기본적인 수준’의 요구인 만큼, 지역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 유례없이 많은 대학교수들이 참여했다. 서울·경기 지역은 물론 충청, 강원, 영남과 호남, 제주 지역까지 전국적으로 빠진 지역이 한 군데도 없다. 1960년, 1987년에도 시국선언이 나왔지만, 규모 면에서는 이번이 가장 크다.
특히, 그동안 사회참여에 소극적이었던 교수들이 목소리를 더했다는 점이 이번 시국선언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보수언론들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 일부 교수 단체가 주도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게 많은 교수들의 얘기다. 민교협 회원은 6월 현재 800여명에 불과하고, 실제로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은 이보다도 적다. 이번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수들은 4500여명으로 5배가 넘는다.
숭실대의 경우, 64명의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으나 학내에 민교협 회원은 한 명도 없다.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는 “민주주의가 퇴행한다는 데 교수들이 공감했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교수 몇몇이 전자우편을 돌려 시국선언 서명을 받았다”며 “전체 교수의 15%가 시국선언에 동참한 것은 이념과 무관하게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확산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민교협 회원이 5명에 불과한 이화여대도 이번에 52명이 시국선언문에 서명했다. 소속학과를 밝히지 말라고 당부한 이아무개 이화여대 교수는 “평소에 귀찮아서라도 정치적 발언은 삼가는 편인데, 자기와 다른 생각을 인터넷상에서 표현했다고 미네르바 등 누리꾼을 구속하는 등의 행태는 너무나 비민주적이어서 서명하게 됐다”고 말했다.
종교·문화적으로는 진보적이라고 일컬어지지만, 사회참여면에서는 적극적이지 않던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도 전체 교수 35명 가운데 17명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송순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현실에 대한 참여나 발언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참여는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수들이 첫발을 뗀 시국선언은 법조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학생, 청소년,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 전역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날도 원로 철학자와 전국 대학 철학교수, 대학원생 505명이 ‘전국철학앙가주망네트워크’라는 명의로 시국선언문을 냈다. 이규성 이화여대 교수 등은 시국선언문에서 “대통령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통치스타일을 버리고, 민주적 소통과 절차적 합의를 거쳐 모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시국선언 교수, 민교협 회원의 5배
이념 넘어 “민주주의 퇴행” 공감…원광대·아주대 164명 동참
박수진기자
- 수정 2009-06-11 20:44
- 등록 2009-06-11 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