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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소고기 개방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10대 학생들이 환하게 웃고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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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10대에 자리 내주고 ‘골방’
“집회 참여가 경력 되나” 취업이 최우선
“광장 나가도 변하는 게 없더라” 냉소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는 촛불 문화제의 맨 앞자리에는 10대들이 있다. 휴대전화 문자로 집회를 알리고, 카페와 블로그는 광우병 토론장이 되었다. 온라인에서 조직된 10대들이 오프라인 광장에 나와 “미친소 너나 먹어”를 거침없이 외친다. 온-오프라인에서 그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광장에 나온 10대’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집단적 자각 없는 끝장세대” 비판
반면, 20대는 갑자기 좀 머쓱한 세대가 되었다. 10대에 비해 소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지금의 20대를 두고, 일부에선 “치열하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씨는 지난 8일 <한겨레> 칼럼에서 10대를 ‘막장 세대’로 지칭하고, “10대만큼의 자각도 집단적으로 하지 않은 20대는 ‘끝장 세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끝장세대’ 20대는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광장세대’ 또는 ‘월드컵세대’로 불리며 우리 사회를 놀라게 만든 주인공들이었다. 2002년 ‘효순·미선 촛불집회’를 제안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이끈 누리꾼들은 당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탄핵 반대’를 외치며 개성 넘치는 인터넷 패러디물을 만든 이들도 평범한 20대 중반의 대학생이었다. 이들은 당시 ‘머리띠’도 두르지 않고 광장을 붉게 물들인 세대로 평가받으며,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역동적 세대로 평가받았다.
그런 그들이 광장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 자리를 10대들이 이끌고 있다. 20대 ‘광장세대’들은 어디에 있을까? 촛불 문화제 현장과 대학가 주변의 20대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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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여 거대한 촛불의 파도를 이뤘다. 당시 집회엔 일반 시민을 비롯해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20대 누리꾼의 참여가 두드러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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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옛날엔…”, 하지만 생각뿐…“부끄러움 스치기도”
조현민(24·성공회대)씨는 최근 싸이월드를 검색하다 한 10대 학생의 미니홈피를 들렀다. 그곳엔 광우병 카툰이 올라와 있었고, 누리꾼들은 댓글을 달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조씨는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부끄러웠다.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10대 학생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댓글만 달고 있으면 안바뀔 것 같아 참여했어요.” 당당한 후배의 말에 머리 속에서 문득 6년 전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얘들처럼 ‘효순·미선 추모집회’ 있을 때 열심히 시청 앞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그러나, 생각 뿐이었다. ‘미국소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가 도심 한복판에서 11번째까지 열렸으나 조씨는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조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만 집회에 갈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다”며 “취업이 우선이라 거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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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6월 15일 효순·미선 양 5주기를 추모하는 집회에 참여한 고교생들의 모습. 2002년 12월 효순·미선 양 압사사건 집회엔 10대와 20대 학생들의 참여가 두르러졌었다. 누리꾼 ’앙마’가 대규모 광장 촛불시위를 제안한 후, 촛불시위는 한국의 독특한 시위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 한겨레 블로그 바오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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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광장세대들이 사회참여에 뜸한 바탕에는 취업문제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대학 새내기건, 졸업반이건 한결같은 고민은 ‘취업’이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20대들도 ‘취업’은 가장 첫째가는 고민거리다.
정지만(24·성남시)씨는 “불황기에 취업문이 좁아지다보니 모든 신경이 취업에 쏠려 있다”며 “관심은 있지만 집회 나갈 시간을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이한나(25·의정부시)씨도 “사실 집회 나가는 게 이력서에 써넣을 수 있는 경력은 아니지 않느냐”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정씨와 이씨는 6년전 ‘효순·미선 추모집회’에 참여해 밤새 촛불을 들었고, 그 해 월드컵 땐 광장을 붉게 물들인 ‘붉은악마’이기도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20대 후반은 ‘아이엠에프 경제’의 직접적 타격을 받은 세대로, 취업을 생존의 최우선 조건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사회에 불만이 있어도 취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광장에 나가는 것은 어렵다”고 분석했다.
떠난 게 아니라 배회…“다시 세우려면 희망이 필요”
월드컵과 ‘효순·미선 사건’으로 누구보다 사회참여에 익숙했던 ‘광장세대’들을 광장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또 한가지는 ‘정치적 냉소주의’였다.
김한주(21·고양시)씨는 “기대했던 노무현 정권에서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지니 정치에 대한 실망은 더 커졌다”며 “‘우리가 거기(광장)에 나가도 변하는 게 없잖아’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4년전 온라인에서 ‘하얀쪽배’라는 아이디를 쓰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행동을 주도했던 누리꾼 신상민씨도 ‘미국소 수입반대 운동’에는 소극적이다. 신씨는 “한번도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적이 없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도 크게 좋아진 게 없어서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진 것 같다. 물불 안가리고 덤비던 때와 달리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광장세대의 활발했던 사회참여가 궁극적인 결실을 맺지 못하고 좌절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냉소주의로 변질했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커진 듯 하다”며 “바뀌는 게 없으니 도전하고 바꾸려는 개혁정신도 무뎌진 같다”고 분석했다. 우석훈씨는 “10대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던 사람들, 20대는 아직 성공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런 경험의 차이가 결국 한 집단은 움직이게 만들고, 한 집단은 머뭇거리게 만든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지난 날 광장의 주인공이었던 20대, 그들은 지금 광장을 떠난 것이 아니라 광장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그들은 갈 곳을 잃고, 불만 가득한 사회에서 생존 경쟁에 내몰렸다. 이처럼 광장세대들이 스스로 사회적 고립에 빠진 것을 놓고 20대들의 문제만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기성세대들의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다.
신광영 교수는 “20대는 기존 제도 전체를 불신하는 불신의 세대”라고 규정한다. 신 교수는 “20대가 지닌 굴절된 의식은 한국 정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며 “20대만의 탓이 아니라 (불신의 정치와 제도를 만든) 기성 세대에 책임이 더 있다”고 지적했다.
우석훈씨는 20대를 다시 광장에 세우려면 “희망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우씨는 “최소한 쇠고기 문제에서 작은 성과라도 있다면 이를 계기로 20대들이 다시 활발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허재현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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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과 학생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리랑’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날이 갈 수록 10대 학생들 뿐 아니라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는 20-30대 시민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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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 광장에서 만난 20대들은…
보수 ‘딱지’에 “정치적 갈 곳 잃었을뿐” 항변
“깃발 안 들어 눈에 안 뜨이지만 우리가 절반”
광장세대들의 주춤한 사회참여와 관련해 촛불문화제 현장에서 만난 20대들은 ‘10대들의 탁월한 주연 효과’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20대들도 현장에 10대 못지 않게 많이 나오고 있는데, 10대의 참여가 워낙 부각돼 20대가 상대적으로 조연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20대들은 10대처럼 교복을 입지도 않고, 예전처럼 학생회 깃발이나 한총련 깃발 등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지도 않는다. 20대들은 일반 시민에 섞여 있어 그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구분짓기가 더 어려워졌다.
여러 차례 촛불문화제에 친구들과 참석한 김민중(중앙대 기계공학부 4년)씨는 “깃발을 가지고 나오면 깃발에 소속되는 시민과 그렇지 않은 시민이 구별되는 것 같아 들고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소속 단체의 활동가 정종남(38)씨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아 10대가 눈에 들어오지만 ‘미 쇠고기 수입반대 서명’을 받다 보면 20대가 절반”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20대의 참여가 늘고 있는 추세” 라고 말했다.
17일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조세훈(21·서울대 국문학과)씨는 “지난 15일 서울대 축제에서 원더걸스가 공연한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지만, 다른 한편에선 ‘광우병 대책위’가 꾸려졌다”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20대들이 앞으로 촛불 문화제 현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20대들에게 ‘보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20대들은 자신들을 보수로 규정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정송아(21·남양주시)씨는 “20대가 보수화 된 게 아니라 10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보진(26·서울시 사당동)씨도 “20대가 보수적이라면 이명박 후보를 많이 찍었겠지만, 투표하지 않는 20대를 포함하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20대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김한주(21·고양시)씨는 “20대의 보수화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냉소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대가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갈 곳을 잃어버렸다’고 항변하고 있다.
허재현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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