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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국어 지문, 모르는 단어 없는데 독해 어려워요”

등록 :2015-10-05 20:17수정 :2015-10-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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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떨어지는 아이들
청주의 한 고교에서 ‘모범생’으로 통하는 2학년 이아무개군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다. 글을 읽는 것이 두렵다. 내신 전교 최상위권에 과학 동아리 회장까지 맡고 있지만 영어와 국어 점수는 다른 과목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 누구에게나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이 있지만, 이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문제 잘 풀어 성적은 나오지만
글의 의도·주제 모르는 아이들 늘어
교과서 중심 일제식 수업 하느라
학교서 작문·독서 제대로 못한 탓
대학서 뒤늦게 읽기 공부하는
‘문해맹’ 대학생도 많아

“지문을 보면 모르는 단어가 하나도 없고 대충 뜻도 이해가 가요. 등장인물의 의도나 핵심 주제를 묻는 문제를 주로 틀리는데, 해설을 봐도 납득이 가지 않을 때가 많아요.”

이군을 가르치는 교사 문아무개씨도 이군의 고민을 알고 있었다.

“보통 글의 주제나 글쓴이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성적이 좋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이군처럼 공부는 곧잘 하는데 글을 읽고 그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꽤 많습니다.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몰라 계속 열심히 문제집을 푸는데, 좀체 해결되지 않아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학교 공부만으로는 접하기 어려운 긴 호흡의 글일수록 이군은 어려움을 느낀다. 이제라도 호흡이 긴 책을 많이 읽는 연습을 하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수험생활이 코앞이다 보니 막상 책읽기를 시작하기 어렵다. 그는 “평소 국어 지문보다 훨씬 긴 글을 봤는데,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됐어요. 끝까지 집중해서 읽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글쓴이가 이런 글을 썼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라며, “짧은 글은 10문제 풀면 그래도 6개 정도는 맞는데, 글이 길어지니 정말 막막했어요”라고 말했다.

‘문맹’, 스마트폰 탓만은 아냐

이군의 경우는 ‘기능적 문해력’이 부족한 대표적인 사례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유네스코는 1956년부터 문해력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는 기초적인 능력을 말하는 ‘최소 문해력’과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인 ‘기능적 문해력’(Functional Literacy)이 그것이다.

지난 5월부터 6월초까지 <교육방송>(EBS)에서 20부작 보도특집으로 내놓은 <한글 교육의 불편한 진실> 역시 기능적 문해력에 주목한 시도다. 초등학생들의 읽기 부진 문제를 다룬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문맹률은 낮지만, 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는 문해력이 낮은 국민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배에 가깝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제대로 된 한글 교육을 실시하기 어렵다. 한글 교육을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제대로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있어도, 교사가 일대일로 그들을 도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은 읽기에서 멀어지고, 자연히 전반적인 학습에도 문제를 겪게 된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글을 잘 읽지 못한다는 것을 당장 납득하기는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매년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한국은 늘 상위권에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문맹률을 자랑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영어도 아니고, 학생들이 한국어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생소한 사실이다.

어른들은 흔히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로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꼽지만 이도 오해다. 핀란드교육연구원의 카이사 레이노는 2014년 ‘문해력과 정보통신기기 사용의 상관관계’라는 연구논문에서 “컴퓨터 사용이 전통적인 문해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혔다. 만 15살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수행한 이 연구에서 레이노는 “오히려 디지털 기기가 다양한 상황에서의 문해력을 키우는 데 좋다”고 했다. 연구에서 아이티(IT)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다른 청소년보다 읽기 실력이 뛰어났으며, 특히 이런 결과는 여학생들에 비해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남학생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문해력이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는 개념인 만큼 온라인 환경은 기능적 문해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온라인에 있는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며 학생들은 ‘사회적 맥락 속 읽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공교육 현장에서 찾는다. 교과서 이외의 독서나 글쓰기 경험을 학교에서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우리교육)의 저자 청주교대 엄훈 교수는 학생들의 읽기 부진 원인을 “교과서 중심의 일제식 수업 때문”이라고 손꼽았다. 그는 중학교의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읽을 줄 알아도 그 뜻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읽기 부진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교사들에게 교과서는 사실상 교육과정이지요. 교과서를 중심으로 일제식 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들의 수준에 맞춘 일대일 상호작용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어떤 학생에게 심각한 읽기 문제가 있어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도움을 주기 어렵습니다. 또, 교과서에 제시된 대로 가르치다 보니 막연히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가르칠 뿐 깊이 있는 독서와 작문 경험은 주지 못합니다. 이런 수업을 계속하다 보면 교사들 역시 독서와 작문 교육에서의 전문성을 점점 잃고 말죠.”

대학생도 ‘제대로 독해’ 버거워

중등 교육에서 제대로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대학 교육에 적응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읽기와 쓰기 능력 사이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단순한 읽기를 넘어 저자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자신의 견해와 비교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쓰기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꾸준히 읽기 능력을 개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학생들은 뒤늦게 대학 첫 2년을 ‘적응기’로 보낸다.

한 명문대 영문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아무개씨는 “자습서 없이 글의 중심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일단은 텍스트를 제대로 읽는 법을 대학에 와서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교과서를 많이 읽는다 해도 전체적인 주제나 소재에 대한 정리를 참고서에서 다 해줬기 때문에 그냥 그걸 믿고 글을 읽었지요. 3학년이 된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친구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인터넷에서 찾은 요약노트 없이는 저자의 생각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노혜경 시인은 <국어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창비)에서 대학 국어교육 강사로 일하면서 느낀 학생들의 읽기 문제점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읽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한 줄로 아는 ‘문해맹’이 대학에도 제법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대학생들에게 ‘철수가 미자를 두고 영희와 만나는 것이 사실이라면 철수는 바람둥이다’는 문장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상당수가 “철수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니 나쁘다”거나, “철수는 바람둥이다”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문장에서 철수가 영희와 만나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일임을 명시하고 있는데도 곧잘 틀린 읽기를 하고 만다.

동국대학교 파라미타칼리지 이윤빈 교수도 “학생들이 교수가 과제를 내는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주장이 잘 드러난 학술 에세이를 쓸 것을 기대하고 과제를 주었는데, 학생들은 자료를 공들여 요약한 뒤 독후감식 견해를 덧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들여 썼지만, ‘빗나간’ 글쓰기를 하게 되지요. 대학 입학 전후의 읽기, 쓰기 교육 간 일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학생들은 ‘정답을 찾아라’ 혹은 ‘정답에 맞춰라’는 요구를 받죠. 논술을 하더라도 ‘정답이 있는 글쓰기’ 훈련을 하고 오기 때문에 ‘너의 정답을 말해보라’는 대학 교육의 요구는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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