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고등학생부터 6살까지 4남매를 키우는 엄마를 인터뷰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4남매라니, 사교육을 시키기도 만만치 않을 테고, 그렇다고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곁에 두고 키워내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다. 주말 오후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박경아씨 집 안에 들어서자 개다 만 빨래들이 거실 가득 눈에 들어온다. 셋째 지훈이가 그 빨래들 틈에서 자신의 옷을 찾아내 익숙한 솜씨로 개어 챙겨든다. 혼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둘째 성민이도 역시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스로 알아서 밥상을 치운다. 잠깐이지만 아이들 각자 야무지게 ‘일처리’를 하는 솜씨들을 감상하고 있자니, ‘4남매’라는 말이 주던 중압감이 슬며시 사라진다. 첫째 주수군이 약속시간에 맞춰 귀가하고 아담한 식탁 앞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교육을 거의 안 시킨다고 들었는데 4남매를 교육하는 일이 많이 힘들 것 같네요. 혹시 가정 안에서 세워 둔 교육관 같은 게 있나요?
엄마 “주변에 사교육 많이 시키는 엄마들 보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아이들을 그저 기관에 맡겨 버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는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체능 사교육은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종종 했지만 본인이 재밌어하고 성실하게 하는 것 위주로 했고, 한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아요. 공부와 관련된 사교육도 본인이 원하고 성실하게 하는 경우에만 짧게 다니기도 해요. 우리 집은 뭐든 본인이 성실하게 안 하면 다 잘라요. 잘리면 그걸로 그냥 끝이에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스스로 해 보겠다고 하면 그때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지요. 아이마다 운동이나 미술, 음악, 이렇게 좋아하는 게 다 다른데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은 조금씩은 그 맛을 보여 주려고 노력은 해요.”
-고2인 큰아들은 영화배우가 꿈이고, 중3인 둘째는 요리사 지망생이라고 들었는데.
첫째 주수 “영화를 전공하려고 얼마 전에 진로를 확고하게 정했는데 영화전공 학과에서 영어와 국어 내신 성적을 위주로 본다는 걸 알아서 지금 막 영어학원에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어요. 학원을 오래 다닐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제가 아는 게 아예 없어서, 내가 혼자 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다니려고요. 학원에 물들지 않을 정도만.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그러는데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학원에 물들면 헤어나질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하고 싶은 게 확고하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니까. 시험공부하고 열심히 살고 있죠. 내신을 올려야 하거든요.”(웃음)
둘째 성민 “저는 학원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잠깐 학원에 다녔는데 그때도 학원에서 숙제 내주고 그런 데 스트레스 받았고 잘하는 애들 못하는 애들 나뉘니깐 싫더라고요. 공부는 되도록 혼자 하려고 했고.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잘하는 것은 아니고 늘 어중간하게 하죠. 시험 때만 주로 하고. 그룹과외를 해 본 적도 있는데 성적이 딱 그때만 잘 나오더라고요.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특성화고 조리코디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알아보니 성적이 좀 간당간당해서 그때 약간 공부 안 한 게 후회가 되긴 했어요. 성적이 안정권이 안 되니까 불안해서 원래 가려던 곳 말고 다른 곳도 알아보고 그랬는데,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그냥 처음 하고자 생각했던 대로 한번 해보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냥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을 지원했고, 이번 주에 합격자 등록하러 갈 거예요.”(웃음)
-연기나 요리 같은 재능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일이 흔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좋아하고 잘하는 일들을 찾아주는 일이 힘들지 않습니까?
엄마 “네 명이라서 더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오히려 하나나 둘인 분들이 더 힘들 것 같아요. 아이한테 마음을 더 쓰고 많이 해주고 싶고, 해준 만큼 결과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일단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으니깐 아이들이 원한다고 다 해주지도 못해요. 그래도 형제가 많아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게 많아요. 부모인 우리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요즘 첫째 주수가 중1인 셋째를 붙잡고 30분씩 공부를 시키더라고요. 자기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동생한테는 더 도움을 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고맙기도 하고, 세상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서로 주고받는 걸 보면 뿌듯하죠. 아이들이 꼭 이것저것을 다 해봐야 자기 적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어릴 적 어느 시점에 꼭 적성을 찾아야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서도 필요하면 찾을 수 있는 거고, 적성이라는 게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내가 하기 싫더라도 부모들이 강제로라도 공부를 시키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아요?
성민 “엄마나 아빠가 공부에 대해서는 별로 터치를 안 하셔서 좋은 점이 많아요. 성적 안 나오는 것만 빼고요.(웃음) 친구들 말 들어보면 학원 가야 한다, 숙제해야 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없다고들 그래요. 또 학원 가도 공부 못하는 애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이 부럽지는 않아요. 사실 문제집도 사놓고 안 보는 것도 많은데 돈 아깝잖아요.”(웃음)
주수 “고등학교에 오니까 잘하는 애들이 학원을 더 다녀요. 더 잘해야지 더 잘해야지 하면서. 물론 그 친구들이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하는 거라 스스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원 다니면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친구들처럼 부모님에게 떠밀려 강제로 열심히 사는 걸 나보고 하라고 하면 좋겠느냐고요? 전혀요.(웃음) 강제로 시켰으면 제가 먼저 안 한다고 했을 것 같아요. 사실 중학교 때 잠깐 학원에 다녔는데 너무 다니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몇 번 빠지고 엄마한테 어떻게 말할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학원을 그만 다니라고 해서 오히려 고마웠어요.”
-집에서 부모님은 이해해 주시지만, 학교나 사회에서 부모님과 달리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힘들거나 불편한 적은 없었나요?
성민 “공부를 좀 하다가 놔 버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미술 같은 것에서 사람들이 잘한다고 해주면 뿌듯하거든요.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 다르다고 생각해서 별로 개의치 않아요. 공부를 못하면 다른 재능을 키워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주수 “저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스스로 ‘왜 나는 쟤네보다 공부를 못해야 하지?’ 하면서 자책을 하다가 다시 ‘쟤네가 공부를 잘하면 뭐하냐. 내가 쟤네들보다 나은 게 훨씬 많은데.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하면서 기운을 내요.(웃음) 부모님이 편하게 해줘서 나쁜 건 없었어요. 한때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기도 했지만, 이제 하고 싶은 게 생겼으니깐 지금도 늦지 않았고요.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인데요, 뭐. 지금 사회가 사실 어떤 분야든 줄을 세우죠. 거기에서 먼저 한 발짝 나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하고.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도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저는 꼭 성공을 바라서 배우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어릴 적부터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걸 보면 진짜처럼 하는 게 너무 신기하고 몸에 막 소름이 돋으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주연이 되면 좋죠. 그런데 조연이나 엑스트라처럼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나를 두고 순위를 세운다 해도 너희는 순위를 세워라 나는 이렇게 밑에서 열심히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겠다 뭐 그런 거죠. 아무리 돈을 못 벌어도 별로 불행할 것 같지는 않아요. 가장 밑에서부터 시작하려는 마음이 있거든요. ”
-4남매를 키우는 부모로서 다른 부모들 혹은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엄마 “아이들이 평탄하게 특별한 문제 없이 자라는 것보다 고민을 많이 하고 많이 흔들리면서 자라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부모 말고도 아이들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주변에 좋은 이웃을 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나름대로 세운 가치관을 지키고 사는 데는 지역아동센터와 교회공동체 같은 이웃들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아이들이 고민이 있을 때 부모보다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할 때도 있고, 다른 어른들은 부모보다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고요. 아이들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저와 아이들에게 힘이 많이 되었어요. 아이를 부모 혼자가 아니라 좋은 이웃과 그리고 나도 스스로 그런 이웃이 되어, 사회가 같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주수 “최근에 제가 어떤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해줬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잘하는 친군데, 언젠가부터 표정이 암울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기 힘들 것 같다는 현실을 알아서, 그래서 좌절감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해요. 그 친구도 그렇고 제 나이 또래나 저보다 어린 학생들이 현실을 알았다고 해서 현실에 너무 좌절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 현실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그걸 누군가와 함께 얘기를 해보고 기회를 얻어서 그 일을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맞벌이를 해야만 했던 박경아씨는 지역아동센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그런 좋은 이웃이 되어 지역에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듬어 주고 있다. 네 명의 아이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다는 부모의 이해와 이웃의 관심 속에서 각자의 재능을 찾아가며 속 차게 자라고 있었다.
만약 사람들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눈다면 이 가족, 분명히 비주류로 분류될 거다. 하지만 주류에 올라서고자 사교육에 병드는 아이들, 피폐해지는 학교와 가정, 몇 개의 기준에 맞춰 줄 세우며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이들은 이렇게 일상 속의 소소한 일들을 실천하는 평범한 비주류 사람들일 거다. 돌아오는 길 내내 맏형 주수군의 말이 머릿속에 구호처럼 계속 맴돈다. ‘너희는 줄 세우고 싶으면 세워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겠다!’
글·사진 김정주 <아이와 함께 제주도 배낭여행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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