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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서울 여중생 현아의 한숨

(하) 정착 힘쓰는 경기 청명고경기도 수원시 청명고 3학년에 재학중인 김하늘(가명)군은 아침 6시30분께 잠자리에서 일어나 7시30분에 등교한다. 교문 앞에 학생부 선생님들이 서 있지만 머리 길이나 복장 문제로 학생들을 불러 세우는 일은 드물다. 물론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오거나 신발주머니를 안 가져오는 학생들은 예외다. 이런 학생들은 선생님의 경고를 받는다. 파마를 하거나 염색을 하면 처음엔 경고를 받고 두번째는 벌점을 받지만 김군은 그런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 학교에서 남학생 앞머리가 눈썹을 덮는다거나 여학생 치마가 무릎 위로 조금 올라온다고 해서 불려가거나 맞는 일은 없다. 1시간 동안 자율학습을 한 뒤 8시30분에 1교시를 시작하는데, 그 전에 학생들은 주머니나 가방 속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거나 진동으로 설정을 바꾼다. 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휴대전화를 한꺼번에 걷어가는 일은 없다. 다만 수업 시간에 전화기를 열어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하다 걸리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운 좋으면 구두경고이지만 최악의 경우 압수당할 수도 있다.학생들, 체벌규정 등 논의 참여선생님들과 관계 개선에도 도움“자발성 끌어내는데 초점맞춰”일부 자유 이용한 ‘방종’에교사들 간혹 ‘멘붕’ 경험도“혁명처럼 갑자기 던져진 탓”

오후 4시10분쯤에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을 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야간자율학습(야자)을 하거나 그냥 집에 간다. 이 학교에서 야자는 그야말로 자율이다. 김군은 학원에 가는 수요일만 빼고는 야자를 하는데, 김군 스스로가 결정했다. 김군은 “선생님이 일부 성적이 안 좋은 친구들에게 ‘어차피 집에 가서 공부 안 할 텐데 야자나 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하기도 하지만, 강제 야자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군이 이 학교에 입학하던 재작년 3월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셈이다. 경기도에서 유일한 학생인권조례 시범학교로 선정된 당시만 해도 남학생들의 머리모양은 거의 스포츠형에 가까웠다. 그러나 시범학교 선정 뒤 학생회와 선생님들이 함께 두발 규제를 놓고 회의를 열었다. 앞머리가 눈썹을 덮지 않는 선까지 기르도록 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나마 얼마 뒤 그 규정마저 사라졌다. 현행 청명고 교칙의 학생 용의·복장규정은 “두발은 모양새가 자연스러우며 균형을 이루는 단정한 형태로 한다”고 되어 있다. 염색과 파마는 규제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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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길이 제한이 사라지자 학생들은 감격했다. 김군은 “‘내게도 기를 수 있는 자유가 있다니…’라며 머리를 길게 기르고 왁스 바르는 친구들도 처음엔 꽤 됐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덥고 거추장스러우니까 도로 조금씩 짧아졌다”고 말했다.

변화는 체벌에서도 찾아왔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중죄’를 저지르다 걸리면 학생부 선생님에게 맞았지만, 이제는 벌점을 받거나 봉사활동에 처해질 뿐 체벌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또한 학생회와 선생님들의 회의에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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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결핍된 때 그 필요를 느끼는 법이다. 반대로 2년 전 찾아온 자유를 이제 이 학교 학생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전국 최초로 인권조례의 세례를 받은 ‘학생인권조례 1세대’이지만 스스로가 가진 자의식은 약한 편이다. 어쩌면 학생인권조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학생이 학생인권에 무관심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김군은 “평상시 내가 인권조례 1세대라는 의식을 하지 않는다”며 “다만 선배들에게서 옛날 얘기 들으면 다른 걸 알겠다”고 말했다. 학생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3학년 김병기군도 “우리 사이 대화에서 인권조례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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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자연스러워지고 아이들이 밝은 웃음을 찾게 된 게 조례 시행 뒤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라고 증언한다. 이 학교의 김기현 연구부장은 “예전엔 교사가 한마디 하면 애들이 ‘네’ 하고는 대화가 끊겼는데, 지금은 ‘왜요, 선생님?’ 하고 물어보는 등 자기표현이 신장됐다”며 “교사들도 전에는 그냥 ‘안 돼’라고 할 얘기를 이제는 왜 안되는지 설명하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변화도 거저 오는 법은 없다.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 학교가 조례에 따라 학교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온 과정도 그랬다. 어떤 학부모는 시범학교 초창기에 학교를 찾아와 대학 진학률 하락을 우려하면서 “왜 우리 학교가 인권조례 시범학교를 해야 하느냐”고 항의했다.

이 학교는 다행히 시범학교 선정 뒤 되레 대학 진학률이 올라 부모들의 저항을 피해나갈 수 있었다. 초반에는 야자를 완전 자율화한 뒤 학교 전체에 저녁때 남는 인원이 40여명에 불과했으나 올해 들어 크게 늘고 있다는 게 교사들의 증언이다. 이 학교 조도연 교장은 “인권조례가 성공하려면 아이들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이들을 계속 믿고, 자발성을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조례가 체벌을 금지하고 자신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학생들은 깜빡이도 켜지 않고 자유와 방종의 중앙선을 종종 넘나든다. 여전히 교사들은 간혹 ‘멘붕’(멘탈붕괴)을 경험한다. 교실에서 급식을 먹고는 식판을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는 학생, 등교 뒤 교실을 나갔다 점심때 들어와서 도시락만 먹고 다시 피시방에 가는 학생도 있다. 교사들은 예전엔 강력한 규율로 다스릴 수 있었으나 지금은 제도가 이를 금지한다. 그럼 그런 아이들을 포기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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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당혹스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교과서는 해설서라도 있지만, 학생인권조례는 혁명처럼 급작스럽게 우리에게 던져진 탓”에 “아이들은 자신의 인권만이 아니라 타인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상황”에서 “소수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 다수의 아이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는 부족”하다. 하지만 “체벌하면, 결국 그 아이가 커서 되물림될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체벌 없이 교육을 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학교의 권력구조가 해체된 자리, 학생인권조례 1세대가 머무는 공간에 새로운 질서가 정착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수원/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학생들은 자율 규제, 교사들은 의견 존중지역공동체 등은 ‘페이스메이커’ 역할해야인권 조례 뿌리내리려면?

학교라는 공간을 인권친화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출발을 알리는 총성에 불과하다. 결승점까지 닿으려면 페이스메이커도 필요하고 중간에 수분도 보충해야 한다.

우선 많은 권리를 보장받게 된 학생들은 스스로를 규율하고 집단적인 목소리를 학교 운영에 투영할 수 있는 틀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학생 자치조직의 활성화는 필수다.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먼저 시행한 경기도교육청이 올해 학생자치활동 활성화 사업에 중점을 둔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경기도에서 가장 낫다는 수원 청명고에서도 학생회 목소리가 묻힌다는 불만이 나온다. 부학생회장인 3학년 김병기군은 “지난해 학내 스포츠클럽 대회를 열기 위해 학생회 차원에서 의견을 모으고 학생부에 건의했으나 두세달 동안 아무 반응이 없어 교장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렸는데, 나중에 선생님들이 학생회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례가 현장에 뿌리를 내리는지 여부보다는 그 과정이 좀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에 수십년 동안 형성된 문화를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활동가는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현장에 올 때 구성원들에게 어떤 것으로 경험되는지가 중요하다”며 “서로 신뢰가 쌓이고, 재미있고 민주적인 과정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처럼 교사가 일방적으로 변화의 과정에서 감정적 소모를 감당하도록 두기보다는, 교사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때 지역 공동체와 교육청이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도 요구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전종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