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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고집’ 안랩(안철수 연구소), V3 세계일류로 키웠다

등록 :2008-05-14 18:00수정 :2008-05-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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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20돌] 스무살 이야기
[한국 SW산업 산증인 안철수 연구소]

1988년 6월, 당시 의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안철수씨가 개발해 공개한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 소프트웨어 ‘V3’가 올해로 개발 20돌을 맞는다. V3를 개발·판매하고 있는 안철수연구소는 세계 10위권 보안업체로, 대형 다국적기업 3~4곳이 지배하는 이 분야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대표적 소프트웨어 업체다. 시만텍·맥아피 등 다국적 보안기업의 공세를 따돌리고 국내 업체가 자국 시장의 60% 이상을 지키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국내 최장수 소프트웨어이자 정부 선정 ‘세계 일류상품’인 V3는 한국 소프트웨어산업의 산 역사이고, 안철수연구소는 한국 벤처기업사에서 빠질 수 없는 모범사례다.

한국통신 코넷을 통해 국내 인터넷 상용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1994년, 그보다 6년 전 한 전문직 종사자의 ‘호기심’과 ‘사명감’으로 한국에서 백신 개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컴퓨터 백신보급 20년

묵묵히 연구개발 투자


아시아 최다 국제인증

세계 10위권 보안업체로

1988년 안씨는 자신의 피시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알고 며칠 밤을 새운 끝에 치료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공개했다. 이후 7년간 안씨는 현업인 의사와 대학교수직을 수행하며,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고 무료로 보급하는 일을 지속했다. V3 덕분에 국내 컴퓨터 사용자들은 외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마다 요긴한 처방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새롭고 복잡한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치료 요구 또한 늘어나는 현실 앞에서, 안씨는 더이상 개인 차원의 무료봉사로는 효과적 대응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안씨는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고 V3도 상용화로 전환했다. 길을 열어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연구소 창립 멤버 3명 중 한 사람인 김현숙 안철수연구소 상무는 “채용공고를 냈는데 엔지니어는 아무도 안 왔다”며 “당시 바이러스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인데, 안씨가 쓴 책으로 교육을 시켰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안철수연구소는 ‘벤처답지 않은 벤처기업’으로 유명하다. 이사회 의장을 맡아 지금도 연구소의 주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안철수 현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독특한 경영철학에서 비롯한 연구소의 기업문화 때문이다. 안 의장은 투자와 회계처리에서 지나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보수적 태도를 지키며 정직과 신뢰를 강조하는 투명경영을 해왔다. 안 의장이 1997년 미국 맥아피의 ‘V3 1천만달러 인수’ 제안을 거부한 일과 연구소 주식을 직원들에게 무상증여한 일은 일부 벤처기업인들의 도덕적 해이와 대조되는 윤리경영 사례로 두고두고 거론된다.

원칙과 신뢰중심 경영

벤처들 ‘역할모델’ 삼아

연구개발에 집중하며 눈앞의 이익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경영은 세계 보안시장에서 국산 소프트웨어의 우수성으로 나타났다. 빚 없는 경영은 외환위기 때 진가를 발휘했고, 장기적 전망으로 연구개발에 치중한 결과 피시용 바이러스백신을 만들던 소규모 연구소는 인터넷·네트워크 환경에서 피시와 서버의 종합 보안솔루션을 제공하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안철수연구소는 매출 562억원, 순이익 165억원을 기록했다. 김현숙 상무는 “연구소가 버티는 힘은 원칙 중심의 경영”이라며 “중소기업과 벤처의 역할모델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시아권에서 최다 국제인증을 획득한 V3는 유럽·남미·북미 시장에서도 글로벌 브랜드로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앞길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외국 업체들은 안철수연구소보다 10배나 많은 연구개발 인력과 투자를 하고 있다. 연구소는 지난해 포털을 통한 무료백신을 놓고 입장을 번복해 혼란을 빚기도 했다.

■ 한국 소프트웨어산업의 현실 소프트웨어산업은 개발비의 대부분이 인건비인 만큼 내수 유발과 고용 창출 효과가 유달리 큰 지식집약적 산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매출 10억원당 고용창출 효과는 소프트웨어산업이 24.4명으로 제조업(2.04명)의 12배에 이른다.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은 상대적으로 좁은 시장과 불법복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1989년 ‘아래아한글’을 개발한 한글과컴퓨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맞서 안방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지켜냈지만, 기업으로서는 1998년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찬진 대표는 ‘한글 개발 포기’를 조건으로 엠에스와 2천만달러 투자계약 검토를 발표했다가 국민적 반발에 직면해 벤처업계와 손을 잡고 ‘한글 살리기’를 선언했다. 2003년 프라임그룹에 인수된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478억원의 매출과 132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등 국적 소프트웨어의 자존심 회복에 성공했다.


벤처거품 빠진 곳, 기술력 새살돋아

터보테크도 올해 4월 창립 20돌을 맞았다. 터보테크의 20년 역사는 심한 굴곡을 겪은 한국 벤처기업의 한 단면이다.

이민화 메디슨 전 회장과 함께 대표적인 벤처 1세대로 꼽히는 장흥순 터보테크 전 회장은 카이스트 박사과정을 밟던 1988년 4월 정밀기계제어장치 개발회사인 터보테크를 세웠다.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기계제작 기술인 수치제어장치의 국산화에 성공한 터보테크는 장영실상을 세 차례 수상하고, 과학기술부 선정 ‘한국의 100대 기술’에 꼽히는 등 대표적인 기술벤처로 불렸다. ‘기술 독립’을 역설한 장 전 회장은 1995년 창립된 벤처기업협회에서 10년간 회장과 부회장을 지내며 활발한 활동으로 벤처 기술입국론을 펼쳤다.

2000년 벤처 열풍 이후 터보테크는 교육사업·단말기 제조 등으로 사업분야를 넓혔다. 하지만 이미 벤처거품은 꺼지고 있었다. 터보테크는 적자의 늪에 빠졌고, 2005년 장 전 회장은 회사 손실 규모를 줄이기 위해 7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05년 당시 손실 규모는 1345억원이었다.

터보테크 등 시련 딛고

실력 재무장 ‘재기 몸짓’

벤처 ‘1000억 클럽’ 102곳

터보테크는 실패했지만 스러지지 않았다. 터보테크 경영전략실 홍욱선 부장은 2006년 1월 ‘사라질 줄 알았던 회사가 살아났다’며 소액주주들이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내온 목도리와 장갑을 사무실에 고이 간직하고 힘들 때마다 들여다본다. 홍 부장은 “손실 규모가 2006년 222억, 지난해 45억으로 빠르게 축소되고 있으며 올해는 흑자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며 재기를 확신했다.

터보테크만 이런 시련을 겪은 게 아니다. 2000년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뒷골목을 불야성으로 물들이던 벤처들의 화려한 시절은 거품이 걷히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옛 구로공단에 둥지를 튼 구로디지털단지에서는 벤처들의 새로운 시도가 움트고 있다. 기획서만으로 거액의 투자를 받을 수 있던 거품시대와 달리 이젠 창의력과 기술력을 믿고 도전하는 ‘모험기업’들이다. 1996년 말 3000억원이 안 되던 벤처업계 매출은 2006년 말 120조원으로 늘어났고 2003년 7700여개로 줄었던 벤처기업 수도 지난해 1만2천여개로 증가했다. 1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1000억 클럽’은 2005년 68곳, 2006년 78곳에서 지난해 102곳으로 늘어났다.

거품은 스러졌지만 한국 경제는 소중한 자양분을 얻었다.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낸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산업국가 한국이 아이엠에프를 거치고 나니 정보통신 강국으로 변모돼 있었다”며 명멸해 간 숱한 벤처기업들의 역할론을 말한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 과정에서 인력과 인프라가 형성됐다. 빠른 의사결정과 팀 중심 조직도 벤처의 영향이다. 연공서열 파괴와 연봉제도 벤처에서 시작돼 확산됐다. 반도체·휴대폰과 같은 대표적 수출품에는 벤처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모듈이 필수적이다. 1983년 창업해 ‘대학생 벤처 1호’를 기록한 조현정 회장은 “세상에 없던 기술과 아이디어로 만들어지지 않은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벤처”라고 규정한다. 김현숙 안철수연구소 상무는 “벤처는 벤처답지 않아 망한다”며 “벤처는 헝그리 정신이 힘”이라고 말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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