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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경과 미라에게■

아버지처럼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상사가 거슬려요

[질문]: 저는 직장 생활을 9년 정도 하고 있는 여성입니다. 자의식과 정의감이 강한 편입니다. 회사에서 비양심적인 행동, 태만하고 이기적인 사람, 권위적인 사람을 그냥 못 봅니다. 유난히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남자(주로 상사)들과는 좋지 않은 관계로 발전합니다. 특히 지금 상사는 너무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고, 감정적이고, 못됐습니다. 그 상사에게 앙갚음 하고 싶은 마음이 솟고, 잘못된 것과 맞서 싸우지 않는 동료들의 비굴한 행동이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제 스스로 분석해본 결과, 원인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는 착하고 희생적인 어머니를 괴롭혔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도 폭력을 많이 행사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혼내고 어머니를 보호하지 못한 것이 억압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권위적인 남자들에게 반감을 갖게 된 원인은 알겠는데, 해결책을 모르겠습니다. 잘못하는 사람은 그 상사인데 제 성격이 이상해서 그와 부딪치는 거라고 여기는 주변 시선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는 어느 조직에 가든 만날 수 있는 남성의 한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 안티 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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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상사의 태도는본인의 내면에 억압된 기질… 분노 걷어내면 이해 뒤따를 것

[답변]: 이 지면에 글을 쓰면서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의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한 다음 “모든 문제는 본인에게 있으니 내면에 있는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고, 인정하고, 직면하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의식이 일곤 했습니다. 그 일이 말처럼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기’ 단계부터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에서 반복되는 심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고, 공연히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이유없이 자신을 비하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기질로 인해 삶을 망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다행히도 안티 권위주의 님은 자신이 상사와의 관계에서 과민하게 반응하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계십니다. 전문가들은 “내게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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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문제임을 인정하기’ 단계는 조금 더 어렵습니다. 문제를 자각하고 그 원인을 이해하게 되면 부모나 환경을 탓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합리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는 것은 그 상사인데 제 성격이 이상해서 그와 부딪치는 거라고 여기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더 깊이,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게 되면 유난히 거슬렸던 상사의 태도가 모두 본인의 내면에도 억압되어 있는 기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직장 상사는 그저 본인이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비춰주는 거울의 기능을 할 뿐이지요. ‘권위적이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고 감정적인 태도’들이 상사라는 거울에 비춰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고스란히 본인의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단계에서는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이미지가 깨어지는 고통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치유의 핵심은 ‘직면하기’에 있습니다. 직면한다는 말은 어린 시절에는 공포와 불안에 짓눌려 회피하거나 억압해 놓은 감정들을 이제라도 제대로 마주본다는 뜻입니다. 마주보고 표출하여야 합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아버지와 말씀을 나누어 보세요. 물론 대화는 금세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때 참거나 피하거나 물러서지 마시고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세요. 용암처럼 분출하는 감정들이 느껴지고 심장이 터질 듯한 전율, 살갗이 타버릴 듯한 뜨거움이 몸에서 감지될 것입니다. 그 모든 감정과 감각들을 체험하고나면 내면에 억압된 감정들이 약화되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그것은 반복이 필요한 지난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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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분노를 덜어내면 그 자리에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이해의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폭력을 휘두른 행위를 이해하라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고단한 성장 배경, 각박한 세상에서의 보상 없는 노동, 무거운 책임과 그에 따른 외로움 등을 헤아려볼 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려볼 수 있다면 상사의 입장도 헤아려볼 수 있고,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다면 아버지와 동일시해며 형성해 둔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타인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직면하고 넘어서기’의 단계는 방향을 잡아주고 지지해줄 전문가의 도움이 있으면 더 좋습니다. 심리 치료의 역할극이나 분석 치료의 전이 단계에서 이런 문제를 다룹니다. 세상에 서로 다른 소명을 가진 전문가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형경/소설가

『상담이 필요하신분은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의 오른쪽 하단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을 클릭한 뒤 상담글(http://happyvil.hani.co.kr)을 써주십시오.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 박미라씨가 수요일자 신문 지면으로 번갈아 답변을 드립니다. 비공개 상담요청이 폭주해 당분간 신문지면 공개 상담을 원칙으로 하며 비공개 상담은 원칙적으로 받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넓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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