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에피소드 중의 하나로 화타(華陀)가 관운장의 팔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장면이 있다. 전투 중 팔에 독화살을 맞은 관운장은 정신을 잃고 말에서 떨어질 정도로 위중한 상태가 된다. 상처를 살펴본 화타는 독이 뼈에까지 침투했으니 살을 째고 뼈를 칼로 긁어 독을 제거해야 하는데,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칠 테니 몸을 묶고 시술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관운장은 껄껄 웃으며 그냥 하라고 말한다.
약초에 대한 방대한 지식의 보고 아유르베다. 여기에는 조상 대대로 전해져온 비법이 그득했다. 유럽인들은 현지 전문가들이 채집-분류해 온 약재를 화가들이 그리게 하고 거기에다 여러모로 수집한 각종 정보를 담아 학문으로 숙성시켜 나갔다.화타가 칼로 관운장의 뼈를 긁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색이 되었으나 정작 관운장 자신은 태연하게 바둑을 두었다. 이것은 물론 관운장이 얼마나 용맹스러운 장군이었는지를 강조하기 위한 과장된 이야기이다. 제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한들 생살을 째고 칼로 뼈를 긁어대는데 바둑에 몰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화타는 일종의 부분 마취를 하고 외과수술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중국의 기존 의학 전통과는 다른 시술 방법을 구사하는 화타는 아마도 인도의 전통 의술인 아유르베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 아니었겠느냐고 추론하기도 한다. 아유르베다는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웰빙 의학’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주로 식이요법, 기름과 약초 요법과 같은 ‘얌전한’ 측면만 소개되어 있지만 원래의 아유르베다 의술은 이미 고대부터 뇌수술을 비롯한 각종 처치법을 발전시켜온 복합적인 의학 체계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화타는 조조의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두개골을 열고 뇌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의심을 받아 처형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특히 관심을 두고 살펴보려는 것은 유럽의 의사나 학자들이 인도의 전통 의학을 접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아유르베다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인도 서해안의 고아(Goa) 지역이 1510년에 포르투갈인들에게 점령된 이후 유럽인들에게 아유르베다 의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유럽인들이 인도의 현지 의사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우선 유럽인 의사 수가 매우 부족했을 뿐 아니라, 현지의 열대병에 대해서는 전통의가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1543년에 인도에 극심하게 유행했던 콜레라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포르투갈 지사는 의사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는데, 이때 인도 의사들이 전통 약재를 써서 많은 환자들을 구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다. 이후 인도 의사들이 예수회 병원에서 서양 의사들과 함께 일하였고, 일부 유능한 의사들은 유럽에까지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서구 학문과 아유르베다의 만남이 의학보다는 식물학 분야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는 점이다. 아유르베다 체계에는 약초 식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누적되어 있었다. 여기에 눈을 뜬 일부 유럽인 학자들은 열대 식물학 체계를 세우는 데에 이 지식을 이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서 네덜란드인 헨릭스 판 레이더를 들 수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위촉을 받아 의학 연구를 시작한 레이더는 곧 열대병의 진단과 처치에서는 유럽이나 아랍의 전통적인 지식 체계보다는 아시아 현지의 지식이 훨씬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런 열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말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대개 자신이 배운 학문 체계를 고집하고, 특히 유럽 학자들은 서구 문명의 우위를 전제로 삼기 때문에 아시아의 전통 의학이라면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레이더는 인도의 약재에 대한 풍부한 지식들을 배우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때 또 한 가지 그가 깨달은 점은 현지의 의학 지식에서도 상층의 브라만 카스트 학자들은 과거의 성스러운 텍스트의 문구에만 매달려 있어서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이론적이기만 한 데 비해 정말로 유용한 실제적인 지식은 오히려 하급 카스트의 하인들이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광범위한 식물학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에즈하바 카스트 사람들이었다. 약재 채집 전문가인 이들은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서 꽃, 잎, 열매를 수집했고 또 그것들을 분류하는 데에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레이더는 이들이 보유한 무궁무진한 식물학 지식의 가치를 깨닫고 이들을 고용해서 체계적으로 식물 지식을 쌓아갔다. 자신의 저서 서문에서 레이더는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이 사람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서 숲으로 보냈다. 그리고 늘 서너 명의 화가들을 대기시켜 놓았다가 그들이 채집해 오는 식물들을 곧바로 정확하게 그려놓았다. 그 다음에 내가 보는 앞에서 그림 속의 식물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하나씩 축적한 지식들을 다시 2년에 걸쳐 현지 의사들에게 보이며 교정을 받아서 정확성을 높였다.

레이더에게 도움을 준 이 의사들은 약초들의 의학적 효능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진 명망 있는 아유르베다 의사들이었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 내용은 브라만 카스트가 독점하고 있는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하급 카스트들이 사용하는 콜레주투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책과 문서들은 수백 년 동안 내려오는 것들로서, 대단히 귀중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레이더는 이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여 학문적으로 숙성시킴으로써 <호르투스 말라바리쿠스>(Hortus Malabaricus, ‘말라바르의 정원’이라는 뜻)라는 식물학 대저를 쓸 수 있었다. 이 책은 열대 식물학의 기초가 되었고 더 나아가서 유럽의 식물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컨대 린네가 수립한 세계의 식물 분류 체계 중에 열대 식물들에 대해서는 레이더가 인도에서 가져온 지식체계가 그대로 채택되어 들어갔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유럽만이 과학적인 지식 체계를 발전시켰으며, 17세기의 소위 ‘과학혁명’ 이후 유럽 과학이 보급됨으로써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비로소 과학 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설명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아유르베다는 오히려 다른 문명권의 경험 지식 및 지식체계가 유럽에 전달되어 유럽의 과학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둘째, 근대 초에 유럽인들이 세계 각지에 나가서 그 지역의 자연 환경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파악하면서 점차 세계 자원을 유리하게 이용하는 방식을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이다.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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