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은 쿠르드인 수십만명을 학살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21일 후세인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날 쿠르드인들이 이라크 북부 라즈카리에서 희생자 영정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라즈카리/AFP 연합
1980년대 후반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은 쿠르드인 수십만명을 학살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21일 후세인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날 쿠르드인들이 이라크 북부 라즈카리에서 희생자 영정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라즈카리/AFP 연합
광고

“우리들은 터키 정부의 차별정책에 의해서, 여성억압적인 이슬람 종교의 가르침에 의해서, 가난에 의해서, 또 쿠르드족 남성들의 가정폭력에 의해서 다중적으로 억압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독립국가가 아니라 모든 생활 속에 스며들어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피케이케이(PKK:Kurdistan Workers Party)의 여성운동가

피케이케이의 여성들을 만나는 과정은 마치 첩보영화 속에 들어가 예기치 않은 모험을 하나하나 겪어가는 긴 여정 같았다. 한국의 사회운동가에게 받은 정보를 가지고 피케이케이의 여성에게 전화를 했으나 아무도 영어를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쿠르드족 사람중에 피케이케이에 동조하는 사람을 찾아 몇 번이나 통화 시도를 한 끝에야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아직도 터키에서는 피케이케이에 대해서 물어보면 터키인들은 대체적으로 아주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피케이케이를 터키의 국토를 나눠가지려는 위험한 쿠르드족의 게릴라들이라고 규정한다. 반면에 쿠르드족 사람들은 피케이케이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려는 터키 사람들에 대해서 정부와 미디어의 조작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광고
나라없는 쿠르드의 여성터키로부터의 민족차별을남성한테선 가정폭력을 받는이중적 피억압자 신세

쿠르드족은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강대국들에 의해 국토를 점령당하고 시리아, 이란, 이라크, 터어키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독립적인 국가가 없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차별대우와 박해를 받고 살아왔다. 그들의 나라를 찾으려는 염원이 터키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치열하게 일어났던 독립국가 형성 분리주의 운동으로 표현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쿠르드족들은 3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고 오랜 기간 감옥에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보내야했다.

내가 만난 여성들 중에도 10여 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여성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아직도 터키의 정보원들의 관찰대상이기 때문에 나와 인터뷰를 할 때도 그들의 이름을 밝히거나 사진을 찍는 것을 꺼려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날 때에도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조용한 골방들을 찾아 만나야했다. 이스탄불과 디아르바커에서 내가 만난 피케이케이 여성들은 매맞는 여성들을 위해 일하거나, 쿠르드족 문화운동을 하거나 쿠르드 언어 신문에서 일하는 기자들이었다. 이른바 쿠르드족 안의 엘리트 여성들인 셈이다. 오랜 운동 경험을 통해 성장한 열정적이고 속 깊은 여성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옛 속담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그들은 넬슨 만델라 같은 영웅적인 정치 지도자로 부상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속한 공동체 속에서 일상 속의 자유의 영역을 넓혀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국의 눈을 피해, 같은 종족들의 삶과 밀착한 운동을 하고 있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그들 하나하나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그 대신, 여러 여성들의 목소리를 종합해 가장 중요한 이슈들만 보고하려 한다.

광고
광고
이슬람 순례의 저자 현경 교수
이슬람 순례의 저자 현경 교수
“감옥은 가장 좋은 학교”그들은 독립국가 대신민족 정체성 유지하면서인종·성별·계급차별 없는‘깊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 여성들은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터키 상황에서 쿠르드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이 원하는 것은 터키라는 국가의 시민권을 가지고도 쿠르드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며 살 수 있는 자유와 권리이다. 거의 최근까지 터키 정부는 공립학교에서 쿠르드 언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쿠르드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그들의 축제들을 터키의 축제인 것처럼 몰아갔다. 예를 들면 쿠르드족의 신년축제를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는 터키의 동쪽 코너의 도시 이름을 따서 ‘디아르바커 축제’ 라고 명명하면서 쿠르드 문화의 정체성을 터키 문화 속으로 귀속시키려 하였다. 쿠르드족들은 터키라는 나라 안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자유롭게 쓰고 그것으로 다음 세대를 교육할 수 있는 자유, 쿠르드 언어로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쿠르드 텔레비전 채널을 활성화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려고 애쓰고 있다. 지금 터키에서는 쿠르드 언어 텔레비전 방송이 일주일에 30분, 1번만 허락 되기 때문에 쿠르드족 거의 대부분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돈을 주고 브뤼셀에서 공중파로 쏘는 쿠르드족 위성방송을 사보고 있다.

피케이케이 여성들은 오랜 운동 과정을 통해 가부장적 국가체제가 아니라 터키인들을 포함해서 모든 소외된 사람들이 국가, 인종, 계급,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생활속에 체화된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를 원한다. 그들이 바라는 일상 속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일어나는 문화운동, 시민운동이다. 이것이야말로 개개인 일상의 패턴을 바꿀 수 있는 삶의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오랜 감옥생활에서 페미니스트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면서 “감옥이 우리들의 가장 좋은 대학교였다”고 말했다. 감옥 속에서 여성들은 함께 고민했고 공부했고 서로를 자매애로 치유했다고 고백한다.

광고

그들이 원하는 평화는 어떤 것이냐고 묻자 그들은 인권과 여성의 권리와 정의가 존중되는 그런 평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터키에 머무는 종안 그들을 몇 번 만나 저녁도 같이 먹고 차도 함께 마셨다. 언어가 잘 안 통하기 때문에 우리는 통역자를 통해 인터뷰 대부분을 이어갔다. 터키를 떠나기 전날 그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통역자를 구할 수 없어 온갖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피케이케이의 여성들이 안되는 영어로 내게 뜨거운 포옹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Free Woman. We love you!”(자유로운 여자,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자유로운 여성들로부터 받은 귀한 선물이었다.

글·사진 현경 교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cafe.daum.net/chunghyunk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