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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의 중류 지역에서는 강 모래를 퍼내는 포클레인들의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강 모래를 팔아 경부운하 건설자금의 절반을 댈 계획이다. 경북 칠곡군 금산 골재장의 모습.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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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낙동강의 주요 지점 답사 통해 미리 본 이명박 ‘회심의 카드’의 운명
수량 유지를 위해 곳곳에 댐과 보를 만들면 영남 젖줄에 치명적 타격
낙동강은 가난한 강이다.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출발한 물줄기는 영남 내륙 1300리를 휘돌아 적시고 부산 을숙도 하구에서 남해에 몸을 섞는다. 가파른 태백 골짝을 내리닫던 강은 1977년 건설된 안동댐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상주·구미·김천·칠곡·대구·창녕·함안·김해를 스치고 지나 부산으로 접어든다.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인 1950년 대구의 인구는 31만3705명, 부산은 84만4134명이었지만 반세기가 흐르면서 두 도시의 인구는 각각 240만 명과 370만 명으로 늘었다. 충주호를 출발해 서울까지 별다른 대도시를 지나지 않는 한강과 달리 낙동강은 가냘픈 강줄기에 32개 시군 1천만 명을 주렁주렁 달고 영강·감천·금호강·황강·남강·밀양강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부산에 와 닿는다.
조령산 터널을 뚫어 뱃길을 잇는다
낙동강과 한강을 하나의 물줄기로 이어 배를 띄우면 물류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처음 언론에 소개된 것은 1995년 11월이었다. 주명건 세종연구원 이사장은 그해 11월29일치 <매일경제>를 통해 “서울~부산 사이에 경부운하를 만들고 이를 수도권 운하망으로 연결하면 2000년대 우리나라 예상 물동량 40억t 가운데 6억~7억t은 내륙 운하를 통해 수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주 이사장의 착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는 이명박 당시 신한국당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1996년 7월1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강 충주댐에서 낙동강 지류인 조령천을 연결하는 20.4km의 터널을 만들면 물류비를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현대 CEO 출신’ 초선 의원은 야권의 유력한 대선 예비후보로 거듭났고, 대선을 위해 ‘그때 그 카드’를 뽑아들고 나섰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꿈꾸는 경부운하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강의 그림은 그릴 수 있다. 이 전 시장 쪽 관계자는 “운하의 밑그림은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며 “11월께 (이 시장의 경부운하 계획을 지원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의 이름으로 청사진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 쪽은 100여 명의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지난 1년 동안 1996년 발표된 세종대학교 쪽의 경부운하 구상을 갈고 다듬어왔다.
‘경부운하’ 계획의 뼈대는 낙동강과 한강을 가로막는 조령산맥에 터널을 뚫어 한강과 낙동강을 잇고, 그 물길을 통해 서울과 부산 사이의 화물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충주에서 한강으로 접어드는 지류인 달천을 따라 조령산(1017m)에 터널을 뚫어 낙동강의 지류인 경북 문경의 영강을 잇는다는 밑그림을 그려둔 상태다. 터널의 길이는 애초 세종대학교 안보다 3~4km 늘어난 24km, 크기는 조령산 중턱 10에 높이 20m, 너비 22~23m로 설계됐다. 터널은 양 방향의 배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복선으로 만든다. 운하의 총 길이는 한강 행주대교 부근 신곡수중보에서 낙동강 하구둑까지 530여km, 수심은 6m, 그 수심 유지를 위해 자연 하천인 낙동강과 한강을 대규모로 준설해 물길을 만들고, 수위를 확보하기 위해 높이 1짜리 보(洑)를 13~14개 설치해 물을 가둔다. 건설비는 17조~18조원으로 추산되지만, 골재 판매와 민자 유치로 사업비 대부분을 충당한다. 이 시장 쪽은 운하가 완성되면 2500t에서 5천t급짜리 바지선이 수백 개의 컨테이너선을 잇고 운하 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운하 건설사업은 국민 1인당 소득을 1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지금도 간장 냄새 나는 매리 취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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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성군 화원유원지 꼭대기에 올라서면 구미에서 내려오는 낙동강과 대구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금호강, 진천천이 합수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대구 시민들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한때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 100ppm을 넘었던 금호강은 2005년 현재 2급수 수준인 4ppm으로 떨어졌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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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상동면 매리 취수장에서 취수된 물이 정수 시설을 통과해 부산으로 공급될 수돗물로 거듭나고 있다. 부산 사람들은 낙동강에서 하루 쓰는 물의 94%를 취수한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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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수 한강물환경연구소장은 “모래가 하천 생태계를 유지하며 물의 자정작용을 돕는다는 것은 너무 상식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낙동강공동체가 지난 2004년 10월 펴낸 <낙동강 생명찾기 백서>를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낙동강 중류를 끼고 있는 지자체에서는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너도너도 골재 판매에 나서 해마다 200만 루베의 골재를 파내갔다”고 적고 있다. 그로 인해 낙동강 수위가 낮아져 대구 시민들의 젖줄인 강정취수장에 새로 보를 만드느라 210억원의 돈이 들었고, 하천 중류 생태계가 교란됐다. 상주에 이른 답사팀은 강의 본류를 버리고 문경에서 흘러드는 낙동강의 지천인 영강으로 접어들었다. 하류 구포에서 시작된 낙동강 700리 뱃길은 이곳 상주 낙동 나루터에서 끝난다. 조선 삼남의 세곡은 여기에 모여 새재를 넘어 한강을 따라 도성으로 운반됐다. 문경시 청사에는 “경제도약, 일등농촌”이라고 쓰인 펼침막이 바람에 나부끼는데, 화려했던 옛 광산 도시의 인구는 1970년대에 견줘 절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김석태 <문경시민신문> 편집인은 “운하 개발로 경기 활성화를 기대하는 게 문경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강 상류와 하류 사람들은 수질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끊임없는 다툼을 벌여왔다. 대표적인 싸움은 1990년부터 대구와 부산, 경남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위천공단’ 논쟁이다. 공단은 경기 침체로 인한 고통을 떠안은 대구 사람들에게는 숙원사업이겠지만, 공단 하류에 있는 부산과 경남 사람들에게는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할 일이었다. 두 도시 사이의 다툼은 결국 2002년 낙동강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낙동강 사람들은 이제 강의 각 지점에 목표 수질을 정하고 그 한도 내에서 오염 물질을 방출해야 한다. 김상화 대표는 “운하가 지어지면 특별법의 체계가 무너지고 잠복해 있던 물싸움이 다시 터질 것”이라며 “그 정치적 책임은 누가 지겠냐”고 물었다. 산을 뚫어 태고 이래 한 번도 섞인 적이 없는 한강과 낙동강을 하나로 잇고, 강의 자정을 돕는 모래를 7조~8조원어치나 퍼내고, 부영양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길을 거대한 보로 막아 배를 띄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김상화 대표는 “운하 건설 계획은 대한민국 인구 절반을 판돈으로 건 대단히 위험한 사업”이라며 “청계천 추진하듯 밀어붙이기에 한강과 낙동강이 가진 생태적·문화적·산업적·환경적 가치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명박과 황우석은 쌍둥이” 9월20일 답사를 끝내고 대구 지역 환경단체 관계자들과 모여앉은 자리에서 류승원 영남자연생태보존회장은 “어떤 점에서 이명박과 황우석은 쌍둥이”라고 말했다. “황우석이 줄기세포만 만들면 모든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듯, 이 전 시장은 경부운하를 만들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출구 없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만병통치약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토목 전문가들은 “수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운하를 만드는 토목공사는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쪽에서는 “5년 임기 안에 공사를 끝낼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이 시작되면 경부운하는 새만금이 그랬고 경부고속철도가 그랬듯, 합리적인 토론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부운하를 막을 수 없다. 그게 두렵다.” 류 회장이 신음하듯 말했다.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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