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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일반

노회한 두 정치인의 마지막 싸움

등록 :2020-05-25 07:12수정 :2020-06-0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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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2화 홍준표와 김종인

한겨레 아카이브 노회한 두 정치인의 마지막 싸움
한겨레 아카이브 노회한 두 정치인의 마지막 싸움

2020년 4월, 홍준표 대 김종인

2020년 4월15일의 국회의원 선거. 보수의 대선주자라 불리던 이들 가운데 국회로 돌아온 사람은 홍준표뿐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대선. 홍준표는 김종인에게 손을 내민다. “이순신 할아버지가 와도 질 선거였다.” 4월17일 아침에 시비에스(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홍준표는 말했다. 김종인이 패배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비상대책위원장에 김종인이 맞춤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김종인은 홍준표의 손을 뿌리친다. 4월22일에 같은 방송에 나와 “다음 대선 후보는 40대가 좋겠다”고 밝힌다. 홍준표는 화가 났다. 아니, 화난 시늉만 했을지도 모른다. 4월25일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종인을 쳤다. “1993년에 김종인을 취조한 검사가 나다.” 30년 다 된 기억을 버르집어 진흙탕 싸움을 만들었다. 선거를 마친 지 달포가 지나도 ‘김종인 비대위’는 제대로 첫발을 떼지 못했다. 홍준표의 복당 역시 마찬가지지만. 홍준표와 김종인, 둘의 오랜 악연이 궁금하다. 한국현대사를 엿보는 마음으로 나는 한겨레 아카이브를 뒤적인다. 해설/김태권

이 사진이 내 눈길을 끈다. 언제나 이를 악물 것 같은 홍준표가 거울 앞에서 편하게 웃는다. 2008년에 강창광 기자가 찍었다. 이때도 빨간 넥타이를 좋아했다. 홍준표는 대선이 있는 2022년에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이 사진이 내 눈길을 끈다. 언제나 이를 악물 것 같은 홍준표가 거울 앞에서 편하게 웃는다. 2008년에 강창광 기자가 찍었다. 이때도 빨간 넥타이를 좋아했다. 홍준표는 대선이 있는 2022년에 다시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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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대 흙수저

김종인은 금수저였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잘나갔다. 그래도 여느 금수저와는 달랐다. 흙수저의 삶이 무너지면 사회 또한 무너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김종인이 일찍부터 경제민주화에 뜻을 둔 것은 그래서였다고 한다. 적어도 김종인쪽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홍준표는 흙수저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군사정권 때 잘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너졌다. 홍준표는 이때 검사였다. 금수저를 잡는 흙수저로 눈길을 끌었다. 1993년의 슬롯머신 사건 때 전정권 실세들을 거꾸러트린 사람이 홍준표다. (고집스럽게 우리말을 쓰던 <한겨레>는 '슬롯머신' 대신 '투전기'라는 말을 썼다.) 군사정권 시절에 숨죽이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홍준표는 사회개혁과 검찰개혁의 아이콘이었다.

이 무렵 무너진 인물 가운데 김종인이 있다. 1993년에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종인이 잡혀갔다. 그러나 정작 의심받던 거물급 인사는 법망을 빠져나갔고, 세상은 곧 사건을 잊었다. 그런데 홍준표가 그때의 기억을 2020년에 되살렸다. "1993년에 김종인한테 자백을 받아낸 사람이 나다." 자기가 담당검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홍준표의 주장은 사실일까? 두 사람의 악연이 정말 이때 시작했을까?

노태우 정부 때 경제수석이던 김종인이 정주영과 악수한다. 1990년에 곽윤섭 기자가 찍었다. 재벌기업들의 맏형 노릇을 하던 현대는 재벌개혁을 주장하던 김종인과 수시로 충돌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김종인이 장관이 되지 못한 것은 재벌 쪽의 반대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노태우 정부 때 경제수석이던 김종인이 정주영과 악수한다. 1990년에 곽윤섭 기자가 찍었다. 재벌기업들의 맏형 노릇을 하던 현대는 재벌개혁을 주장하던 김종인과 수시로 충돌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김종인이 장관이 되지 못한 것은 재벌 쪽의 반대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1993년 5월31일치 &lt;한겨레&gt;에도 ‘검찰개혁’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때만 해도 홍준표는 검찰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보통때 같으면 10년 이상 걸릴 변화를 검찰 조직에 몰고 왔다”는 것이다. 여현호 기자가 썼다.
1993년 5월31일치 <한겨레>에도 ‘검찰개혁’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때만 해도 홍준표는 검찰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보통때 같으면 10년 이상 걸릴 변화를 검찰 조직에 몰고 왔다”는 것이다. 여현호 기자가 썼다.

김종인이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체포되었지만 ‘몸통’은 따로 있다는 말이 당시에도 있었다. 1993년 7월23일치 &lt;한겨레&gt;에 실렸다. 촬영 장철규 기자.
김종인이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체포되었지만 ‘몸통’은 따로 있다는 말이 당시에도 있었다. 1993년 7월23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촬영 장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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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정계 입문

인기 폭발 홍준표. 검사를 그만두고 정치인이 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어느 당으로 갈까?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기 힘들지만 지금 생각은 민자당에는 가기 싫다는 것이다." 1995년10월19일치 <한겨레21>에 홍준표는 속내를 밝혔다. 그때 홍준표는 개혁, 민자당은 보수를 상징했다.금수저 김종인, 흙수저 홍준표 1993년, 흙수저가 금수저 잡았다? 둘의 오래된 악연이 다시 화제다박근혜도, 문재인도 도왔던 김종인 선거불패의 신화는 깨졌다 살아 돌아온 홍준표도 상처 입었다그런데 199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이 묘수를 냈다. 재창당과 혁신공천. 당 이름을 갈고 새 사람을 뽑았다. 아직도 먹히는 방법이다. 당 이름은 신한국당. 홍준표를 영입했다. 또 이회창과 이재오와 김문수를 데려왔다. 그때 이들은 '개혁인사'였다.홍준표는 송파에 출마한다. "강남벨트"라는 말은 그때도 있었다. 지금과 의미는 다르다. <한겨레> 1996년1월31일치 기사에는 정당이 아니라 "인물로 승부가 갈라지는 곳"이라 했다. 같은 해 2월24일치 기사를 보면 보수나 진보나 한쪽만 지지하는 대신 "개혁과 보수의 양날개가 먹혀들어가"는 지역이라 했다. 그땐 그랬다.

젊은 홍준표. 이 사진을 보고 나는 홍준표가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지인에게 보이니 “지금 홍준표하고 똑같다”고 말한다. “민자당에는 안 간다”던 1995년의 홍준표는 2020년의 홍준표와 다를까, 같을까?
젊은 홍준표. 이 사진을 보고 나는 홍준표가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지인에게 보이니 “지금 홍준표하고 똑같다”고 말한다. “민자당에는 안 간다”던 1995년의 홍준표는 2020년의 홍준표와 다를까, 같을까?

1996년에 홍준표와 이재오와 김문수는 신한국당의 개혁적인 초선 의원이었다. 2003년에 홍준표와 이재오는 당 지도부가 되었다. 그때는 당 이름이 한나라당이었다. 촬영 윤운식 기자.
1996년에 홍준표와 이재오와 김문수는 신한국당의 개혁적인 초선 의원이었다. 2003년에 홍준표와 이재오는 당 지도부가 되었다. 그때는 당 이름이 한나라당이었다. 촬영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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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이 돌아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바뀌었다. 야당의원이 된 홍준표는 김대중 정부를 공격하는 '저격수' 역할을 맡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잠시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2000년대가 되었다. 세상은 변했다. 홍준표는 더는 개혁의 상징이 아니었다. 의원인데도 검사처럼 군다는 말을 들었다. 2004년에 김어준은 홍준표를 만나고 와 2월20일치 <한겨레>에 이렇게 쓴다. "그는 아직도 '수사'하고 아직도 '기소'한다. 그에게 정치는 사건이고 정적은 피의자며 폭로는 기소다."

그러는 동안 김종인이 돌아왔다. 김대중 정부는 그를 재경부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2003년1월14일치<한겨레>를 보면 김종인이 노무현 정부의 초대 총리가 될 뻔했다는 사실도 나온다. 결국 장관도 총리도 되지 못했지만, 민주 정부가 들어서도 김종인의 이름값은 여전했다.

2004년에 김종인은 또 국회의원이 된다. 비례대표로만 4선째였다. 홍준표는 지역구에서 3선이 됐다. 두 사람은 국회에서 다시 마주친다.

김어준이 “문제적 인간” 홍준표를 인터뷰했다. 2004년 2월20일치 &lt;한겨레&gt;에 실렸다. 홍준표는 노무현 정부 때에도 저격수 노릇을 했다. 본바탕은 여전히 검사 같다고 김어준은 썼다. 홍준표도 김어준도 젊었다. 촬영 윤운식 기자.
김어준이 “문제적 인간” 홍준표를 인터뷰했다. 2004년 2월20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홍준표는 노무현 정부 때에도 저격수 노릇을 했다. 본바탕은 여전히 검사 같다고 김어준은 썼다. 홍준표도 김어준도 젊었다. 촬영 윤운식 기자.

2004년에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아닌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되어 김종인은 국회에 돌아온다. 김봉규 기자가 조순형과 김종인을 나란히 사진에 담았다.
2004년에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아닌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되어 김종인은 국회에 돌아온다. 김봉규 기자가 조순형과 김종인을 나란히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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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과 경제민주화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 김종인은 정말 일찍부터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나? 군사정권 시절의 일은 확인이 어렵다. 밀실에 모여 자기들끼리 일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궁금하다. 나는 <한겨레>의 옛날 기사를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종인의 주장은 근거가 있다. 다만 옛날에는 '경제민주화' 대신 '재벌개혁'이라는 말을 썼다. 김종인 스스로는 그 말을 안좋아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1990년6월10일치 <한겨레>를 보면 김종인과 재벌이 갈등한 이야기가 나온다. 노태우 정부 때였다. 김대중 정부 때인 <한겨레21> 2000년8월24일치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김종인씨는 일찍부터 재벌개혁을 주창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나섰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학계나 시민단체에서는 재벌개혁의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지금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고 그의 경제총수 임명을 적극 주장했다." 결국 이때 장관이 되지 못한 것도 재벌의 반대 탓이었다고 한다. 김종인은 일관된 자기 주장이 있다. 그가 단순한 '철새 정치인'으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자주 당을 바꾸었는데도 말이다.

한편 <한겨레>는 김종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한계도 지적했다. 1990년12월29일치 기사는 김종인을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하다고 보는 "성장우선론자"로 분류했다. 스물여섯해가 지나 <한겨레> 2016년8월24일치에는 경제학자 김공회의 글이 실렸다. "김종인표 경제민주화에는 노동이 없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김종인은 어떤 사람인가. “노태우 정부에서 재벌개혁의 칼을 휘둘렀던 김종인은 집행력과 개혁철학을 고루 갖췄다. 다만 업무추진 방식이 권위주의적인 게 흠이라는 지적도 있다.” 흥미로운 평가가 &lt;한겨레&gt; 2000년 1월12일치에 실렸다. 김대중 정부가 김종인을 장관에 앉힐지 말지 고민하던 때다.
김종인은 어떤 사람인가. “노태우 정부에서 재벌개혁의 칼을 휘둘렀던 김종인은 집행력과 개혁철학을 고루 갖췄다. 다만 업무추진 방식이 권위주의적인 게 흠이라는 지적도 있다.” 흥미로운 평가가 <한겨레> 2000년 1월12일치에 실렸다. 김대중 정부가 김종인을 장관에 앉힐지 말지 고민하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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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홍준표와 김종인

한때 홍준표는 별명이 "야생마"였다. 그런 그가 2011년에 보수여당의 당 대표가 된다. 몇 달 후 낡은 정치세력으로 지목돼 자리에서 밀려난다. 바뀐 상황이 홍준표도 당황스러웠나 보다. "내가 부정부패를 저질렀나. 나만큼 서민입법 발의를 많이 한 사람이 있느냐. 그런데 나를 쇄신 대상으로 몬다." (<한겨레> 2011년12월19일치)

홍준표가 물러난 다음 비대위를 이끈 것은 박근혜다. 이때도 당 이름을 바꾸고 혁신공천을 했다.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지었다. 공천권을 휘두른 사람은 오랜만에 보수정당으로 돌아온 김종인이다. 홍준표에 따르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나 홍준표에게 공천을 주지 말자고 김종인이 주장했다. 나는 내가 조사한 뇌물사건의 피의자에게 공천심사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았다." 사실일까? 모르겠다. 2020년의 주장이다. 어쨌거나 홍준표는 동대문에 공천을 받고 낙선했다.

2011년 제헌절 행사, 넥타이 매느라 애먹는 홍준표를 김형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건너다본다. 홍준표와 김형오는 2008년부터 부딪칠 일이 많았다. 2020년 공천 파동 때 둘의 악연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른다. 촬영 탁기형 기자.
2011년 제헌절 행사, 넥타이 매느라 애먹는 홍준표를 김형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건너다본다. 홍준표와 김형오는 2008년부터 부딪칠 일이 많았다. 2020년 공천 파동 때 둘의 악연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른다. 촬영 탁기형 기자.

2011년의 당대표 시절은 짧았다. 의원총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넥타이를 고쳐 매는 위기의 남자 홍준표. 촬영 탁기형 기자.
2011년의 당대표 시절은 짧았다. 의원총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넥타이를 고쳐 매는 위기의 남자 홍준표. 촬영 탁기형 기자.

박근혜와 홍준표가 사진기 앞에서 친한 척 보이려고 애를 쓴다. 풍자만화 같은 두 사람의 어색한 표정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2008년에 강재훈 기자가 찍었다.
박근혜와 홍준표가 사진기 앞에서 친한 척 보이려고 애를 쓴다. 풍자만화 같은 두 사람의 어색한 표정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2008년에 강재훈 기자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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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 김종인, 마지막 싸움

박근혜는 김종인의 도움을 받아 2012년 국회의원 선거도 대통령 선거도 이겼다. 그 다음 김종인을 쫓아냈다. '팽'을 당했지만 김종인은 몸값이 올랐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 때는 문재인을 도와 더불어민주당을 지휘한다. 중간에 잠시 칩거도 했지만 선거 결과는 예상 밖 승리. 김종인이 "비례대표만 5선"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도 이때다. 그런 다음 또 물러났다. '선거불패 신화'는 2020년에 깨졌다. 김종인은 황교안을 도와 미래통합당의 선거를 이끌었지만 결과는 아는대로다.

홍준표도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다. 2012년 총선에 낙선한 홍준표는 경남지사 보궐선거로 겨우 살아났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박근혜 탄핵 정국은 박근혜와 서먹하던 홍준표로서 기회였다. 박근혜와 친하던 사람들이 몸을 사리는 동안 홍준표가 앞에 나섰다. 2017년 대통령선거는 질 선거를 졌다며 넘어갔다. 2018년 지방선거도 지는 바람에 홍준표는 다시 물러났다. 공천을 받지 못한 채 2020년 총선을 치렀다.

다시 2020년 이야기로 돌아오자. 홍준표와 김종인의 싸움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김종인은 흠집이 났다. 홍준표에게 대응을 해도 하지 않아도 손해다. 김종인 비대위가 설령 출범한대도 삐걱댈 가능성이 있다. 한편 홍준표도 타격이 크다. 삼십년 된 악연을 버르집는 모습은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당 안팎의 반발을 사 복당도 불투명한 상태다.

두 노회한 정치인의 마지막 싸움은 서로에게 상처인 것 같다. 아니,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현대사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었다. 두 사람의 파란만장한 행보가 증거랄까.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여한 김종인. ‘선거불패 신화’는 이때가 시작이었다. 이상돈과 김종인과 이준석이 나란히 찍혔다. 이준석은 이때 앞머리를 내렸다. 촬영 강창광 기자.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여한 김종인. ‘선거불패 신화’는 이때가 시작이었다. 이상돈과 김종인과 이준석이 나란히 찍혔다. 이준석은 이때 앞머리를 내렸다. 촬영 강창광 기자.

김종인이 자기 집에 머물며 몸값을 높인 일은 2016년 선거 때도 있었다. 이때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김종인을 집까지 찾아가 달래야 했다. 촬영 김태형 기자.
김종인이 자기 집에 머물며 몸값을 높인 일은 2016년 선거 때도 있었다. 이때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김종인을 집까지 찾아가 달래야 했다. 촬영 김태형 기자.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준표. 자신만만한 미소다. 선거 직후인 2020년 4월20일에 대구 사무실 앞에서 강창광 기자가 찍었다.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준표. 자신만만한 미소다. 선거 직후인 2020년 4월20일에 대구 사무실 앞에서 강창광 기자가 찍었다.

▶ 2회 해설자인 김태권 작가는 만화가입니다. 글도 쓰고 일러스트도 그립니다. 요즘은 주로 관악산 자락에서 두 아이를 떠메고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시대> 등의 만화책을 그렸고, <불편한 미술관>과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등을 썼습니다.



기획 팩트스토리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 실화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2017년 설립 이후 6편의 르포, 웹소설을 개발했고 2편이 영상 판권계약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 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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