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작고한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은 일제 시기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단죄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간도특설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지금껏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이 ‘공백’은 최근까지 학계에서 백선엽의 창씨명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납니다.(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2009년 보고서에도 그의 창씨명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던 백선엽의 창씨명이 밝혀진 것은 <한겨레> 대기자를 지낸 김효순이 2014년 저서 <간도특설대>를 펴낸 뒤였습니다. 이 책에서 김효순은 백선엽의 상사였던 옌지 헌병분단장 소네하라 미노루의 회고록을 인용해 그의 창씨명이 백천의칙(白川義則)이었다고 밝혀냅니다.
‘백천의칙’을 일본어 이름을 읽는 관행대로 읽으면,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됩니다. 시라카와 요시노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요?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홍구, 지금은 루쉰)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맞아 죽은 상하이파견군 사령관입니다. 둘의 이름이 한자까지 똑같이 일치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순 없습니다.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무언가 깊은 곡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1920년에 태어나 평양사범학교를 나온 ‘영명한’ 백선엽이 당시 동아시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윤봉길의 의거와 그 희생자의 이름을 몰랐을 리 만무합니다. 백선엽이 왜 자신의 이름을 백천의칙으로 바꿨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100살의 나이로 숨지는 순간까지 백선엽은 자신의 창씨명은 물론, 창씨명을 그렇게 정한 이유에 대해 철저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9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백선엽은 이듬해 만주국 장교가 될 수 있는 만주 펑톈군관학교에 입교합니다. 당시 똑똑한 조선인 청년에게 일본군 혹은 만주국 장교가 된다는 것은 신분상승을 의미했습니다. 박정희는 신징군관학교 입교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다”는 편지까지 썼습니다. 박정희도, 그보다 세살 어렸던 백선엽도 매우 출세지향적 인물이었던 셈입니다.
1941년 12월 2년제인 펑톈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1942년 만주국군 보병 제28단에서 견습사관을 거쳐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이후 1942년부터 1943년 1월까지 만주 북부의 자무스에서 신병훈련소 소대장으로 근무하다 1943년 2월 만주 간도성에 있던 항일독립군 탄압부대인 간도특설대에 배치됐습니다.
백선엽은 이후 여러 회고록에서 간도특설대 시절 생활에 대해 짧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선인(본문에선 한국인)으로 여러 민족적 모순을 느끼면서도,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던 젊은 시절 백선엽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백선엽은 대한민국 국립현충원이 아닌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합니다.
야스쿠니신사는 1868~1869년 보신전쟁 이후 일본 내외의 여러 전쟁에서 일왕을 위해 숨진 이들을 모시기 위해 만든 신사입니다.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일왕의 이름으로 수행된 여러 전쟁에서 숨진 이들이 합사돼 있습니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이들은 246만6000여명으로 이 가운데 2만1000여명이 조선인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백선엽은 자연사했으니 야스쿠니 신사의 합사 대상이 아닙니다. 재미 있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순직한 자위대 대원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성격의 신사인지 잘 보여줍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일왕의 이름으로 수행한 여러 침략 전쟁을 미화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이런 시설에 전후 순직한 자위대원들이 들어올 자리는 없습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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