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로그인
컨텐츠

등록 : 2007.10.05 16:42 수정 : 2007.10.05 18:06

3일 밤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주최 답례만찬에서 노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판소리 공연을 보고 있다. 안숙선 명창(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전통예술원 음악과)이 단가인 ‘벗님가’, 춘향전의 ‘사랑가’ 등을 불렀고 특별수행자로 함께 방북한 도올 김용옥 선생이 고수를 맡았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특별수행원 자격 방북인사들이 전하는 방북 소감

2007 남북정상회담을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따라갔다가 온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이번 방북은 어떠했을까?

정부의 공식 수행원이 아닌, 정치권·경제계·문화계·종교계 등의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된 특별수행원들이 전해주는 북한의 모습과 정상회담 주변 모습들을 100자 메모 형태로 전달한다.

예상보다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남북 정상간 합의에 대한 의미와 전망에 관한 뉴스들과 달리, 이들 특별수행원들이 전해주는 정상회담 주변의 모습들과 평양의 변화상은 눈길을 끈다.

작가 조정래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대해 “전혀 이상이 없었다. 김 위원장과 두 번 악수를 했는데 마지막 백화원 초대소에서 악수를 할 때 ‘태백산맥’ 작가라고 소개를 하니까 피곤했던 표정이 밝게 변해서 잡았던 손을 더 힘주어 잡는데 제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힘이 강했다”며 “목소리도 초대소 큰 홀이 꽝꽝 울릴 정도로 높고, 포도주를 끝없이 계속 마시는 등 건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식사 자리에서 북한 사람들은 ‘원샷’을 ‘끝내기’라고 말하고 있다라며 남쪽의 영향으로 생겨난 변화를 전하기도 했다. 또 김 회장은 “북한 여성들 가운데 쌍꺼풀 화장을 한 사람이 많았고, 대부분 화장이 곱게 먹혔다”라고 전했다.

특별수행원들이 보고 들은 북한의 표정을 <한겨레> 기자들의 취재를 통해 묶었다. 이 가운데 조정래씨와 이상열 민주당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각각 문화방송과 연합뉴스를 통해 보도된 내용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특별수행원들이 보고온 북한의 모습

△배기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국회 남북평화통일특별위원장)

김정일 위원장은 방송국 총감독 같은 느낌이었다. 열심히 작업을 하다가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것 같았다. 김양건 통전부장 한 명 옆에 앉혀놓고 회담도 본인이 다 했다.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 피로감은 좀 느껴지더라. 그래도 악수할 때는 손에 힘이 ‘빡’ 들어가고, 목소리도 컸다.

△김낙성 국민중심당 정책위의장

국회의장과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과 회담을 해보는데, 굉장히 남측에 대해서, 약속을 안 지킨다는 걸 자꾸 얘기하니까 회담이 진전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6·15 공동선언을 남측이 지킨 게 뭐 있냐’, ‘개성공단 부진하다’, ‘김일성 주석궁을 왜 참관 못하게 하느냐’ 등을 그쪽 의회 사람들이 얘기하더라. 일반인들도 그렇고. 한국 사람들이 생각할 때 북한을 점점 변화를 가져오고 개방이 될 것으로 생각을 하잖나. 금방 북한이 개방 사회로 갈 것으로 쉽게 생각하는데, 가서 느끼는 것은 의식이, 안 그렇다는 것이다.

“평양시내 대로변의 승용차 광고판, 30대 여성이 ‘내 가슴을 설레게 하네’”

△이상열 민주당 정책위의장

둘째날 저녁 노무현 대통령 답례 만찬에 참석한 북측 인사들이 남한 민주당이나 신당 경선, 한나라당 후보 등에 대해 우리보다도 소상히 알고 있더라. 판세가 어떻고 후보단일화가 어떻다는 등 남측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

2001년 8월15일에 갔었는데, 그땐 먹도시였다. 이번에 가니 굉장히 밝아졌다. 개성~평양 터널이 18갠데, 안에 불을 다 밝혀놨고. 가로수에도 우리 연말 분위기처럼 작은 등으로 불꽃 장식을 많이 해놨다. 평양시민들 표정도 훨씬 밝아졌더라. 세 번째 방북인데 예전엔 묘향산 가는 길에 농민들말고는 평양 밖에서 사람을 잘 못봤는데. 이번에 남포갑문 가는 길에 주민들을 봤는데 평양보다 밝고 활기차더라. 벽이나 현수막에 적힌 구호들도 정치적인 것보다는 경제적인 것들이었고. 눈에 띄는 건, 평양시내 대로변에 평화자동차 광고하는 커다란 입간판이 있더라. 30대 중후반의 여성이 모델이고, 광고 문구가 ‘내 가슴을 설레게 하네’였다.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평양에서 개성까지 차로 1시간40분 밖에 안걸려서 놀랐다. 그런데도 마음의 거리가 그렇게 멀었구나를 실감했다. 귀로에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거리를 달려오다가 개성공단에 이르니 불빛이 환했다. 어둠을 밝히는 불빛을 보면서 남북간 협력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새삼 느꼈다.

“1시간40분 걸리는 평양-개성, 개성공단 이르러 불빛 환해져”

△국악인 안숙선씨.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리랑 공연이었다. 내용을 떠나서 그 많은 인원이 체계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장관을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흥미롭게 지켜봤다. 우리의 얼이 담긴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소리로 대통령을 도와드리고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한 점이 보람 있었다.

△안병욱 학술단체협의회 대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긴장과 갈등, 적대의 한 중심인 평양 도심에서 40여만 평양시민의 환영을 받았다. 이는 북과 남이 더이상 전쟁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적어도 북쪽 사람들에게 남한은 타도하고 붕괴시켜야 할 적대국이 아닌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 기간 동안 가장 극적이고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육로로 평양에 가는데 두 시간도 안걸렸다. 이렇게 가깝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갈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 거리가 차분한 가운데 정치구호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중공업관, 자동차공장 등을 보여주는 데서 북한의 경제협력과 개방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육로 방북이다 보니 음식 여기서 다 준비해갈 수 있어”

△이한호 광업진흥공사 사장

환영행사가 대단했다. 사람들 하나하나의 표정이 다 보이고 구호가 생생히 들리는데,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둘쨋날 우리가 주최한 만찬은 <아리랑> 공연이 끝난 뒤 시작해 밤 12시반에야 끝났다. 보통 국외에 나가서 하는 만찬은 그쪽 호텔에 주문하는 식인데, 육로로 갈 수 있다 보니 여기서 음식도 다 준비해갔다. 술병이나 음식을 가지고 옆의 좌석의 북쪽 사람들과 어디서 온 거다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북한 사람들도 우리의 정성에 고마워했다.

△조정래 작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김 위원장과 두 번 악수를 했는데 마지막 백화원 초대소에서 악수를 할 때 ‘태백산맥’ 작가라고 소개를 하니까 피곤했던 표정이 밝게 변해서 잡았던 손을 더 힘주어 잡는데 제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힘이 강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건강은 목소리와 악력, 손아귀 힘으로 대개 구분하고 있는데, 목소리도 초대소 큰 홀이 꽝꽝 울릴 정도로 높다. 포도주를 끝없이 계속 마시는 엄청난 주량을 과시하는, 건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회담 강행군에 수행원들 버스만 타면 졸아”

△김기문 중소기업협회 중앙회장

경협 중 개성공단 쪽이 상당히 현실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개성공단 3통문제, 물류문제가 얘기됐는데, 입주기업들이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대남창구 고위층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개선의지를 보였고, 앞으로 빠른 속도로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정상회담, 솔직히 효과가 있지 않았는가. 일정 자체가 정말 잠도 별로 못자고 다들 피곤해서 버스만 타면 졸았다. 상당히 강행군을 했다.

△이철 코레일 사장

그동안 한반도 남쪽에만 머물렀던 한국 철도가 이제는 한반도를 관통해 대륙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남북간 핏줄이 이어지는 중요한 변화로 실감했다. 철도 운송은 어느 쪽에도 해를 주지 않고 남북 양쪽에 모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뒤늦게 길이 열렸지만 마음이 든든하다. 이번으로 세번째 방북인데 이전에 비해 북한 주민들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졌다. 이전에는 등짐과 보따리를 진 사람들이 많았고 땔감용 나무를 실은 차량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식량이나 에너지 사정이 이전보다 좋아진 것 같이 마음 든든했다.

“북한 여성들 쌍꺼풀 한 여성 참 많더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북한에서 대장금 요리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육로 통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원샷’을 ‘끝내기’라고 말하더라. 그전에는 끝내기라는 말이 없었다. 남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웟샷’ ‘원샷’이라고 하자, 북한 사람들이 ‘웟샷이 뭐요’라고 자꾸 묻기도 했다고 한다. 끝내기는 원샷을 북한식으로 바꾼 것이다. 북한 여성들 가운데 쌍꺼풀 한 여성들이 참 많더라. 혹시 진짜 쌍꺼풀을 잘 못 본 게 아닌가 싶어, 옆자리에 있는 현정은 회장한테 물어봤더니 “요새 이게 유행이래요”라고 하더라. 화장 처음하면 잘 안 먹히는데 평양 여성들이 한결같이 화장 잘 먹히는 것 같더라.

“아리랑 보면서 일사분란함에 놀라. 조선업도 잘 할 수 있을 것”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리랑 공연이다. 공연을 보면서 그 많은 인원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대규모 종합조립산업인 조선업도 매우 잘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우리 민족인데 우리보다 머리도 못하지 않을 것이고 규율 등은 더 잘 잡혀 있을것이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평양으로 가는 길 주변은 인적과 차량이 드물고 거의 개발이 안 되고 버려져 있는 농토, 그리고 벌거숭이 모습을 한 민둥산을 볼 땐 북한의 경제 현실을 단적으로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평양은 보통강과 대동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깨끗한 도시였다. 세계 유수의 도시들을 방문해 보았지만 평양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아름다움에 비할 곳은 별로 없었다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