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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청와대

새벽 4시 “지금 잠이 오세요?”…‘일방통행’ 대통령에 누구도 토 달지 않았다

등록 :2017-03-17 19:16수정 :2017-03-1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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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청와대 출입기자가 복기하는 ‘박근혜 정권’ 실패사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새누리당(당시) 후보의 주변에서는 “대통령이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박근혜 후보의 생각이나 리더십이 시대에 비해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선거에 승리해 집권한 뒤 대통령직을 매우 불성실하게 수행했을 뿐 아니라 비선 실세 “최서원(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기도 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어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결정을 내린 이유다. 입으로는 원칙과 신뢰를 강조했던 정치인, 국민대통합을 외쳤던 지도자가 ‘두번째 들어간’ 청와대에서 중도에 쫓겨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민간인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을 오는 21일 오전 소환하기로 했다. ‘피의자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하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글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새누리당(당시) 후보의 주변에서는 “대통령이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박근혜 후보의 생각이나 리더십이 시대에 비해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선거에 승리해 집권한 뒤 대통령직을 매우 불성실하게 수행했을 뿐 아니라 비선 실세 “최서원(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기도 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어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결정을 내린 이유다. 입으로는 원칙과 신뢰를 강조했던 정치인, 국민대통합을 외쳤던 지도자가 ‘두번째 들어간’ 청와대에서 중도에 쫓겨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민간인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을 오는 21일 오전 소환하기로 했다. ‘피의자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하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글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92일 만에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됐습니다. 오는 21일엔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뒤늦게 진실이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1차 원인입니다. 하지만 ‘피의자 박근혜’를 만든 뿌리는 훨씬 깊습니다. 비선실세에 의존한 대통령의 비밀주의는 결국 정권의 몰락을 자초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가 그 과정을 복기해봤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뒤 무주공산 청와대는 적막하다. 평소 직원과 방문객들로 붐비던 청와대 연풍문은 고요하고, ‘인증샷’을 위해 청와대 앞길을 점령했던 중국 관광객마저 ‘금한령’으로 줄어들었다. 임기 반환점을 돌고도 서슬 퍼렇던 박 전 대통령의 위세는 권력의 무게만큼이나 신속하게 몰락했다. 지난해 9월20일 <한겨레>의 첫 보도로 ‘최순실’ 이름 석자가 세상에 알려지고, 한달 뒤 <제이티비시>(JTBC)의 태블릿피시 보도로 ‘최순실 국정농단’이 실체를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은 그 뒤 46일 만에 대통령 직무정지, 다시 92일 만에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임기도 채우지 못한 대통령이 된 것은 1차적으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원인이다. 하지만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것은 ‘비선실세’를 알 수도, 통제할 수도 없게 만든 박 전 대통령의 ‘비밀주의’와, 그에서 비롯된 정권 전체의 무책임한 태도였다.

■ 청와대, 비밀 속에 또다른 비밀

박 전 대통령에게 버려진 것은 9마리 강아지뿐만은 아니다. 청와대에는 수석비서관급 이상 정무직과 비서관, 행정관, 행정요원 등을 합쳐 직원 44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 인사들과 학계·언론계 출신 등으로 청와대에 합류한 ‘어공’(어쩌다 공무원) 별정직 공무원, 각 정부 부처에서 파견 나온 ‘늘공’(늘 공무원)인 직업 공무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고 해서 이들까지 자동 면직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공’들은 5월9일 이후의 예비 실직자들이다. ‘박근혜 부역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재취업이 가능하겠냐며 하나같이 한탄한다. ‘늘공’이라고 해서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통상 청와대 근무는 승진의 보증수표였지만, ‘박근혜 청와대’ 근무는 주홍글씨가 됐다.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서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은 “택시기사에게 ‘청와대 가자’는 말도 못하겠다”(한 직원)는 한탄으로 변했다. 대통령 취재를 담당해온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출입처’를 잃고 하나둘 춘추관(청와대 기자실)을 떠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깜깜이’와 ‘보안’이었다. 참여정부의 취재선진화 조처 이후 기자들은 청와대 경내 출입이 차단됐다. 대신 대변인과 수석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춘추관을 찾아와 수시로 기자들과 만났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대통령이 두번 바뀐 뒤엔 ‘출입금지’만 남고, 정작 수시 브리핑은 사라졌다. 기자들이 청와대 내부를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등 일부 행사에 풀(pool·대표 취재) 기자로 10여분 배석하는 길 외에는 없었다. 지난해 ‘서별관회의’라는 밀실협의체에서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춘추관 안에선 ‘(보도용) 그래픽을 그려야 하는데, 서별관이 대체 어디냐’며 집단지성을 모은 적도 있다. 취재 통로라고 해봤자 간혹 있는 취재원들과의 식사자리를 빼고는 전화통화가 유일했다. 전화는 상대가 안 받으면 그만이다.

‘깜깜이와 ‘보안’이 관통하는 열쇳말
출입금지만 남고 수시 브리핑은 사라져
대면보고 극구 피하는 박 전 대통령
참모들, 대통령 전화 안 놓치려 전전긍긍
일방적 지시뿐, 제안·토론은 완전 실종

핵심 뺀 수석들도 ‘미르’ 존재 뒤늦게 알아
“인터넷 검색했더니 우주정거장 나오더라”
임기 내내 ‘수첩인사’·‘밀실인사’ 꼬리표
우병우 발탁·고속승진 등에 최순실 그림자
정호성조차 “저희도 묻는 것 이외엔…”

기자들만 전화에 매달려 있던 건 아니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대통령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대면보고 대신 서면보고를 선호한 탓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전화로 문의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전화를 놓칠까봐 한 참모는 바지 허리춤 안쪽에 휴대전화를 끼워넣기도 했고, 화장실·목욕탕에 갈 때도 반드시 옆에 둔다고 했다. 또다른 참모는 기자들과 1시간 남짓 식사하는 동안 절반 이상을 박 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느라 밖에 서 있었다. 한 참모는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 토요일 오전인데, 이때도 혹시 대통령 전화가 올까봐 부인에게 전화기를 맡겨둔다”고 털어놨다. 인사 파동이 한창이던 정권 초기, 사정기관의 고위 인사는 박 전 대통령과 밤늦게까지 통화한 뒤 깜빡 졸다 일어나 보니 전화기에 박 전 대통령의 ‘부재중 전화’ 3통이 찍혀 있었다. 급히 전화해 “죄송합니다.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지금 잠이 오세요?”라고 날을 세웠다고 한다. 그때 시간은 새벽 4시였다.

하지만 전화는 일방적인 소통수단이다. 대통령의 지시는 통신선을 타고 참모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해졌을 뿐, 제안이나 토론은 쉽지 않았다. 참모들은 묻는 것에만 답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가뜩이나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박 전 대통령을 만날 기회는 적었고,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서 스스로 강경해지고 고립되어 갔다.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도 ‘대통령이 너무 강하시다. 말씀 좀 드려달라’고 부탁을 하더라”며 “직접 말씀드리라고 했더니 ‘저희는 묻는 것 외에는 말씀 못 드리는 것 잘 알지 않습니까’라며 걱정이 많았다”고 전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모든 내용이 공유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설립은 박 전 대통령과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김상률 교육문화수석 등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이란 순방을 앞두고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미르재단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고 한다. 당시 한 참석자는 “처음 들어보는 곳이어서 인터넷에 ‘mir’를 검색했더니 러시아 우주정거장이라고 나오더라. 다시 한글로 ‘미르’를 쳤더니 기사가 몇개 나왔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대통령이) 용띠인데다 문화재단에 왜 용이 들어가나 싶었다”고 나중에 털어놨다. 미르는 ‘용’의 순우리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직무정지를 당한 지 92일 만에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됐다. ‘피의자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하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직무정지를 당한 지 92일 만에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됐다. ‘피의자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하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 ‘최순실’을 넣으면 이해되는 것들

최순실씨 국정개입의 실체가 한꺼풀씩 벗겨지던 지난해 11월 ‘김상률 수석 미스터리’가 풀렸다.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은 2014년 11월 임명된 뒤 2016년 6월까지 1년 7개월 동안 청와대 교문수석을 지냈다. 김 전 수석은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출신으로 ‘흑인 문학’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김 전 수석은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는 등 진보적 성향을 띤데다, 자신의 저서에서 “북핵은 약소국이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라고 밝힌 전력 등으로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다. 성향과 이력을 종합했을 때, 박 전 대통령이 공을 들였던 국정교과서와 문화융성 정책을 추진할 ‘실무형 적임자’는 아니었던 셈이다. 김 전 수석은 사석에서 청와대 입성 배경과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전에 (대통령이) 숙명여대를 방문했을 때 스치며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라고 설명하곤 했다. 알고 보니 김 전 수석은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의 외삼촌이었다. 춘추관에선 “김 전 수석이 ‘카이저 소제’(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 나오는 전설적인 갱)였다”는 한탄이 터져나왔다. 김 전 수석은 지난 1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나와 “(차씨에게서) 교문수석 후보를 추천하고자 하는데 관심있냐”는 제안을 들었다고 시인했다.

박근혜 정부 4년의 난맥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인사 문제였다. 취임 첫 한 달 동안 장관 후보자 4명이 낙마했고 법무부 차관은 성추문으로 사퇴한 것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국무총리 후보자 가운데 김용준·안대희·문창극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전에 자진사퇴했고, 이완구 전 총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혐의가 제기되면서 스스로 물러났다. 어디서 추천됐는지 알 수 없던 ‘수첩인사’, ‘불통인사’라는 혹평은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세월호·메르스 겪으며 무능 기정사실화
대통령은 사과도, 책임도 지려 하지 않아
메르스 책임 장관은 ‘경질’ 뒤 ‘부활’시켜
공천파동 일으켜 총선 패배했는데도
“당이 총선 관리 잘못해서 생긴 일”

‘무책임 종합판’ 된 우병우 사태
‘정권 흔들기’라며 무시한 대통령이나
“잘못 없는데 왜 나가냐”던 우병우
“대통령이 정권의 위기 자초한 셈”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의 원인

임기 후반기에는 여기에 ‘오기 인사’가 추가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음주운전 전력으로 논란을 빚은 이철성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다.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찰의 수장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심지어 이를 덮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정치권과 언론 등의 비판을 무릅쓰고 청장 임명을 강행했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야당에 밀리지 않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고리’는 역시 최순실씨였다. 조카 장시호씨가 최씨의 핸드백에서 몰래 찍은 인사파일에서 이 청장의 인사자료가 발견된 것이다. 여기엔 이 청장을 포함해 정·관·금융계 고위직 10여명의 인사기록 카드 등 대외비 자료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청와대 입성 및 고속승진 배경에도 최순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2014년) 우병우 수석의 민정비서관 발탁, 청와대 입성은 최순실씨와의 인연이 작용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뒤, 8개월 만인 이듬해 민정수석으로 고속 승진했다. 연배를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고려할 때 파격적인 인사였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위에서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씨가 최순실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우 전 수석의 인사를 청탁했다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최순실씨가 청와대·장차관·외교대사·군·법조계·관세청·민간기업 인사까지 각종 인사에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최순실’이라는 퍼즐 조각이 박근혜 정부 인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였던 셈이다.

지난해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당시)이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당시)이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등을 거치며 박근혜 정부의 무능은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더 큰 문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했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말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향한 비판에는 항상 ‘유체이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역대 정부에선 국면전환용으로, 또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내각이 총사퇴하는 일이 한두번씩 있었지만, 유독 박근혜 정부에선 한차례도 없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세월호 참사 뒤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내각 총사퇴를 단행해야 한다”고 박 전 대통령에게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5년 8월 박 전 대통령은 메르스 늑장대응의 책임을 물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을 경질했다. 하지만 문 장관은 넉달 뒤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경질이 아닌 영전 인사였던 셈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원내 2당으로 전락하는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에게 내각 총사퇴를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정부가 무슨 죄가 있냐”며 거부했다. 총선 패배의 직접적인 책임은 ‘유승민 밀어내기’를 고집하며 공천판을 어그러뜨린 자신과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에게 있다는 비판이 나왔으나 박 전 대통령은 “당이 총선 관리를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며 청와대 인적쇄신도 미뤘다. 현기환 수석은 총선 두달 뒤에 다른 인사요인에 ‘묻어’ 슬그머니 교체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기 전 지난해 하반기 정국을 뒤흔들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태는 무책임의 ‘종합판’이었다. 우 전 수석이 횡령·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고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사퇴 요구가 쏟아졌지만, 박 전 대통령과 우 전 수석은 꿈쩍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정권 흔들기’로 받아들였고, 우 전 수석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가느냐’며 버텼다. 당시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우 전 수석을 내보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끝내 거부했다. 우 전 수석도 ‘정무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버텼다. 한 전직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이 우병우를 굳이 감싸고돌아 결국 정권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외려 박 전 대통령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언론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들어 ‘기밀누설’ 문제로 이를 호도하려 했다. 임기 전반기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흔들어 사퇴시키고, ‘정윤회 비선실세’ 문건 파동 때는 ‘문건 유출사건’으로 돌려치며 위기를 넘겼던 것과 같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모든 이슈를 일거에 묻어버리고 박 전 대통령을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으로 전락시켰다. 박 전 대통령을 오랫동안 봐온 전직 청와대 참모는 박 전 대통령의 몰락에 공동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예를 들어 택시기사에게 10시까지 서울역에 가자고 하면 기사는 골목길을 가든 강변북로를 타든 어떻게든 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손님이 ‘한남대교 지나서 요렇게 저렇게 가주세요’라고 하면 기사는 시키는 대로 가지만, 시간 내 도착하지 못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박근혜의) 청와대가 그렇다. 대통령 지시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고,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이 하루아침에 온 건 아니라는 얘기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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