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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코로나 뉴노멀’이 진짜 ‘노멀’이 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익숙해진 것은 마스크만이 아니다. 위험과 불안이 일상이 되었다. 감염, 실직, 빈곤, 파산 등 다양한 위험이 중첩된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가 사라진 시대가 아니라 위험과 불안이 항구화된 시대다.

아마 이 새로운 시대에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안전’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공공의 안전을 책임진 중요한 주체는 국가였다. 고대부터 국가는 대외적 방어와 내부 질서 등 신체적 안전 보장으로 정당성을 얻었다. 이후 시장경제 발전으로 사유재산과 신용, 계약관계 등 경제적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일이 되었다. 복지자본주의 시대에는 보건·의료·고용·소득 등 사회적 안전 보장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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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는 이 모든 위험을 포함한다. 방역은 일차적으로 신체적·사회적 안전의 문제다. 그것은 즉각적인 생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공공행정과 보건의료 역량의 시험대다. 방역 대응은 다른 사회경제 안전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엄격한 방역은 경제 위축과 실업, 소득감소를 발생시킨다. 반면 느슨한 방역으로 질병이 퍼지면 경제마비와 대량실업 등 경제재난뿐 아니라 치안과 기본 질서의 붕괴까지 초래한다.

이렇게 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감염병 위험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부문으로 전파되는 위험 확산의 연쇄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방역 체제는 지속되어야 하고, 그 비용을 치르는 계층을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 그러한 종합적 공공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투자한 사회만이 사회시스템의 정상 가동이 지속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세계의 자본주의 사회들이 어떤 국가를 갖고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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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서 국가 책임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해왔다. 근대 시장경제 발흥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시장의 자율성과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믿음이 컸다. 그러나 1차 대전, 대공황, 2차 대전을 겪으며 국가가 커졌다. 파시즘, 공산주의, 민주적 복지국가와 같은 상반된 유형의 강한 국가가 탄생했다.

그 후 다시 국가가 수축한 것은 대처와 레이건 시대가 열린 1980년대부터였다. 이때부터 소유와 시장, 경쟁 우선의 사회변동이 진행됐다. 공공기관을 없애거나 외주를 주고, 정부 역할을 축소하며, 노동자를 보호하는 지원과 규제를 줄였다. 바로 그 역사 위에 코로나가 습격했다. 그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코로나는 자연의 작품일지라도, 그 사회적 결과는 인간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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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산실인 미국과 영국은 현재 각각 사망자 수가 약 12만명, 4만명으로 세계 1위와 3위 최대사망국의 오명을 얻었다. 이 참사는 정치의 실패, 국가의 실패다. 폴 크루그먼은 미국 정부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있고 미국 민주주의는 죽어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의 정치적 리더십과 정부 조직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방임국가는 무력했다.

이에 반해 독일 정부는 초기부터 방역, 경제지원, 고용보호 등 전방위적 대응을 하고 있다. 기민련-사민당 연정 정부의 지지율은 70%를 넘었고,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폭락했다. 어떻게 유능한 국가가 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독일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코로나 대응책을 ‘독일을 위한 방패’로 부르고 있다. 총체적 안전 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방패국가 모델이다.

최소국가, 작은 정부를 칭송하던 시대는 갔다. 우수한 인력, 효율적 조직, 강력한 재정이 없는 미약한 정부가 이 시대의 총체적 안전 위험에 대응할 수는 없다. 이제 쟁점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가 아니다. ‘어떤 큰 정부냐’의 선택만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가는 국민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방역과 경제, 민생을 위한 긴급대응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코로나 시대의 총체적 위험에 대응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긴급하다. 디지털 뉴딜, 정보·생명·제약산업 육성으로 국민을 위한 낙수효과를 약속할 수 없다. 이번엔 1997년 금융위기 때와 달라야 한다.

충격의 시간이 지나면 펀더멘털의 시간이 돌아온다. 강한 복지국가들은 기존의 사회안전망을 확대하여 체질을 개선할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더 넓은 연대, 더 큰 공공의 힘으로 제도와 사회구조를 업그레이드해야만 긴 불안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 팬데믹의 시대에 국가도 진화해야 한다.